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이유

후각과 감정과 기억의 상관관계

2022.04.06 | 조회 1.2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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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좋군

알쓸신잡, 지대넓얕 그리고 존나좋군

킁킁
킁킁

사람마다 맡았을 때 기분 좋거나 설레는 감정을 느끼는 향기가 있습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느껴지는 샴푸 향... 같은 건 잘 모르겠고, 제겐 중고 서점의 헌책 냄새, 대학 졸업 후에도 종종 들르는 단골 술집 냄새, 비 오는 날 은은하게 올라오는 흙냄새가 그렇습니다. 아, 한동안 못 맡았던 지하철역 델리만쥬 냄새도요. (지금 어느 역에서 파는지 아시는 분들은 정보 공유 좀…🙏)

특정 냄새를 맡는 순간 왠지 모를 좋은 감정이 드는 건 무의식 속 추억이나 긍정적인 기억이 동시에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엔 더미로 쌓인 낡은 책들 사이에서 마음에 꼭 드는 한 권을 찾아낸 순간, 제일 싼 안주 하나에도 밤새 즐거웠던 날들, 옷이 젖든 말든 빗속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 같은 것이겠죠. 이렇듯 인간은 후각을 통해 기억과 감정을 저장하고 또 자극받습니다.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의 베스트 띵장면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의 베스트 띵장면 

향으로부터 특정 기억과 감정을 끄집어 내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이라 합니다. 프랑스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가 14년에 걸쳐 집필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작된 말이죠. 이 소설에는 유독 향과 기억을 소재로 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마들렌 에피소드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방황하던 주인공 캐릭터가 우연히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먹고서는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이를 계기로 예술가로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중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중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정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저(김희영 역), 민음사

향으로 떠올려진 기억은 과거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다른 감각 기관과 얽혀 있는 기억과 사뭇 다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향을 통해 감정과 기억을 저장하게 될까요? 향을 맡는 신경 구조는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변연계’라는 곳에서 처리됩니다. 음... 갑자기 좀 설명이 복잡한 것 같죠? 됐고, 이렇게만 기억하세요. 기억을 담당하는 대뇌까지 이르는 과정이 제일 짧고 단순한 게 후각 신경이다!

맡는 순간 기억. 끝.
맡는 순간 기억. 끝.

시각, 청각, 촉각 같은 감각은 대뇌에 이르기까지 시상(thalamus)을 거쳐야 해서 상대적으로 긴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보가 비교적 단순화되고요. 하지만 후각은 구조적으로 시상을 거치지 않는 유일한 감각이라 감정과 같은 자세한 정보까지도 그대로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고, 그 덕분에 기억과 감정이 향으로 잘 연결될 수 있습니다.

국내 한 화장품 회사에서는 후각을 이용해 감정을 조절하는 연구까지 진행했습니다. 2020년 국제학술지 ≪실험 신경생물학≫ 표지 논문으로 발표되기도 했는데요, 실험 방식은 이렇습니다. 자체 세포 실험을 통해 개발한 향과 이미 잘 알려진 라벤더 등 여섯 가지 향을 갱년기 여성에게 맡게 한 후 뇌파 검사를 진행해 강도 변화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우울감을 많이 느끼는 중년 여성일수록 향을 통한 뇌파 변화 정도가 크고, 우울감과 걱정도 줄었죠. 이 화장품 회사는 그 다음부터 여성용 건강기능식품에 가장 효과가 좋았던 향을 넣고 있다고 하네요.

최근까지 가장 빠져 있는 향. #광고일리가 #내돈내산
최근까지 가장 빠져 있는 향. #광고일리가 #내돈내산

얼마전 이사를 마치고 한창 꾸미기에 빠져 있을 가장 크게 신경 하나가 향이었습니다. 집에서 기분 좋게 시작하려 하니 역시 향을 없겠더라고요. 이것저것 알아보고 매장에서 시향까지 해봤는데, 결국 이전부터 좋아했던 가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교보문고 시그니처와 모베러웍스 스프레이! 생각해보니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안정감을 주는 향을 골랐던 같기도 합니다. 맡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는, 혹은 감정 조절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향이 있으신가요? 향과 관련된 여러분의 기억과 감정도 알려주세요. 저도 이용해 보고 후기를 전해 드릴게요! 그럼 다음주 존(나)좋군까지 좋은 향 많이 맡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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