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은 영화처럼 남아

*영화 라라랜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보시지 않은 분들은 이번 편은 쉬어가시길!

2022.10.19 | 조회 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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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조잘

매일 아침, 당신 곁의 이야기

기억이란 참 신기합니다. 바로 어제의 대화도 가물가물한가 하면 십수년 전의 순간이 영상으로 머리에서 재생되기도 하죠. 구독자님 머릿속에 여전히 생생한 기억은 어떤 게 있나요.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피곤하고 힘들다고 말할 기력도 남지 않았죠. 살면서 처음으로 당일 반차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Z세대라고 해도 당일 반차를 내놓고 다음날에도 연달아 쉬지는 못하겠어서 꾸역꾸역 자리에 앉아 일을 하던 중이었죠.

문득 6여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나오던 길이었는데요, 같이 영화를 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꿈과 사랑 중 어느 하나라도 이뤘으니 해피엔딩이 아닐까."

당시, 스무살 언저리였던 저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나간 사랑을 상기하는 그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도, 그 서글픔을 보고도 어떻게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말이 충격이었기 때문일까요.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다 지쳐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가던 그 순간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말에 애써 반박해보려 하던 제 모습도요. 사실 반박이라 할 것도 없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며 충격을 토로하는 데 그쳤지만서도요.

문득 그 기억이 떠오른 건, 이제 제가 그 사람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물여섯에서 스물일곱으로 넘어가던 그 즈음. 무슨 일을 해 먹고 살아야 할지 여전히 불안하고 막막한 그 시점. 20대는 청춘이고 가장 빛난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동시에 초라해지려면 한도 끝도 없이 초라해질 수 있잖아요. 모두의 출발점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나보다 먼저 출발한 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냥 조급해 할 수밖에 없는 시기.

철딱서니 없이 마냥 기뻐하고 슬퍼하던 제 모습도 함께 떠오릅니다. 그때의 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냥 이대로 누워 자고 싶은데도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저는, 이제서야 그때 그 사람의 말이 공감이 갑니다. 아니, 이해가 갑니다. 이루기 힘든 둘 중에 하나라도 이뤘으니 분명히 해피엔딩이라는 말의 뜻이요. 아이러니합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작금에 어려운 말과 일들도 언젠가 불현듯 와닿겠죠. 그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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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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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야

    0
    almost 2 years 전

    영화 같은 기억들,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아마 첫 눈에 반한 <첫사랑>을 만났던 날이었네요. 1990년대, 고3 중간고사 기간, 독서실의 실수로 남학생 방에 배정된 여학생, 제 옆자리에 앉아 공부하던 그 여학생과의 몇 시간은 마치 어제 일과 같이 생생합니다. 며칠 뒤 시험이 끝나고 그 여학생을 수소문해서 열 통의 편지를 써서 보냈고, 그렇게 만났더랬죠. 얼마 전에 이 상황을 잘 설명하는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마법>, 마법이란 말 밖엔 설명할 길이 없었던.... -------------------------- 단테, 베르테르, 로미오는 사랑의 대상을 보고 첫눈에 반하는 마법에 걸렸다. '마법에 걸린 사랑'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직관적 경험이면서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거대한 자력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주창윤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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