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타임 석사로 사는 한 달이 지났다

2024.04.01 | 조회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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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조잘

매일 아침, 당신 곁의 이야기

구독자님, 시간이 참 빠릅니다. 벌써 4월이라니요. 만우절이니까 그냥 거짓말이라고 누가 좀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실은 거짓말은 지금 제가 구독자님께 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저의 오늘은 아직 3월에 머물러 있거든요.

한 달이 눈코뜰새 없이 지났습니다. 학교에 적응이 어렵다 보니 오히려 직장이 더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어려운 점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우선 직장 내에서의 관계와 학교 내에서의 관계는 사뭇 다릅니다. 아무리 수평적인 조직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있는 상사와의 관계와도 차원이 다르고요, 기자로서 제가 취재원들을 만날 때의 바이브와도 상당히 다릅니다. 교수님이나 다른 학생들과의 스탠스를 어떻게 취해야 할 지 조금 어렵습니다. 온오프가 잘 돼야 하는데 아직은 학생으로서의 자아와 직장인으로서의 자아를 분리시키는 게 쉽지 않네요. 시간이 해결해 주겠죠, 늘 그랬듯이.

그리고 적응은 둘째치고 공부가 너무 어렵습니다. 학부생 때 경제학을 싫어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정말 때로는 괴롭습니다. 6줄로 쓰인 증명을 이해 못해서 1시간이나 붙들고 있는 제 모습이, 단지 이번 학기 수업이 아니라 평생 이런 모델들을 이해하고 나아가 활용할 줄 알아야 할 텐데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괴롭습니다. 구독자님, 공부하다가 눈물이 나는 경험을 해보셨나요..?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공감 받기가 어렵다는 것도 외롭습니다. 말을 해봤자 누가 협박한 것도 아니고 제가 선택한 길이기도 하고, 그래도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좋다거나 다른 공부도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들을 게 분명하니 점점 입을 다뭅니다. 멍청해진 기분이 드는 게, 그리고 아마 멍청해진 게 아니라 적어도 이 분야에 있어서는 멍청한 게 확실하다는 게 기분을 저조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멍청하다는 사실을 빨리 인정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고민을 비단 저만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됩니다. 특히 교수님들의 경험담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석사, 박사 과정을 밟으실 때에 절대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지만 끝까지 버틴 학생이었다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중꺾마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계속 연구자의 길로 갈지, 아니면 맛만 보고 석사에서 끝날지, 혹은 이걸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개척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걸어가는 길은 각기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더군다나 제가 하려는 연구 분야나 가고 싶은 길이 아직은 정착되지 않은 분야다보니까 솔직히 자신도 없습니다.  레퍼런스 자체가 없기도 하고 슬쩍 말을 꺼냈을 때, 지도 교수님을 제외하곤 다들 생소해 하기도 하고 가능성 자체를 의아해 하는 반응도 있었거든요. 저 역시 막상 시간을 보내다 보면 확신을 점점 잃어갈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일을 하면서 만났던 무수한 성공한, 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남들이 안 될 거라고 했던 일을 밀어 붙인 사람들이더군요. 물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근데 잘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제가 아는 저는 지극한 안전지향적인 데다가 실패를 무서워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남들이 하라는 거 했을 때보다 하지 말라는 거 했을 때, 그게 잘 됐을 때의 즐거움이 더 큰 사람입니다. 평생 하지 말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는데 이제와서 또 달라지겠나요. 한국 나이 28살, 사회적 나이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 진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분야에서 30년이라도 발 붙이고 있으면 58살엔 제가 이 분야 갑이 돼있지 않겠습니까. 100세 인생에, 그때부터 출발이래도 상관없습니다.

말이 길어지는 이유는 구독자님도 아시겠지만은 스스로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자신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미신을 좋아하는 저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의 버의 감각과 기분을 매우 믿는 편인데요. 아침에 나와서 맡는 공기도 맑고 좋고, 불안은 해도 불만은 없습니다. 걷다가 저도 모르게 가끔 입밖으로 한숨이 튀어나오기는 해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좀 더딜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더 오래 살죠 뭐. 이런 마음가짐으로 남은 학기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한 달 고생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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