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면서도

2023.07.19 | 조회 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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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조잘

매일 아침, 당신 곁의 이야기

[살아가면서 기억하고 싶은 말] ㅅ : 세상은 흑과 백이 아닌 회색

세상에는 둘로 양분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선과 악부터 시작해서 호불호, 생사까지 작정하고 나누자면 끝이 없습니다. 저는 한때는, 어쩌면 지금도 이처럼 마음 속에서 무수한 기준을 세워놓고 나누는 것을 즐겼습니다. 특히 매사에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 분석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합리성은 그 어떤 기준보다도 앞섰습니다. 감정적으로 화가 나는 상황이라도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면 분노는 사그라듭니다. 최소한 진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설령 제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도 그게 해당 조직, 혹은 그 상황을 제 3자의 시선에서 봤을 때 합리적이라면 납득하려고 합니다. 속상한 것과 별개로 이를 인정하고 넘길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같은 합리성이 옳은 것이라 믿고 살았습니다. 삶을 오랫동안 지탱해온 신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합리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도 이제는 깨지고 있습니다. 우선, 제가 객관적으로 특정 상황, 사람, 사건의 합리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오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사람인 이상 완벽하게 제 3자의 눈에서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객관적으로 분석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까지 간섭할 수도 없습니다. 이 간극에서 상당히 힘들어 했었는데요. 합리적인 선택을 두고 비합리적인 결과를 빚는 것을 보며 납득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 판단이 합리적이라는 것은 결국 제 기준인데 말이죠. 제3자의 눈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해도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의 정도나 해당 사건, 상황의 중요도의 크기까지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늘 흑백 논리를 경계하려 합니다. 특히 '나'를 기준삼아 판단하는 것들을요. 솔직히 쉽지는 않아요. 문득 문득 내면에 있는 저울이 튀어나오거든요. 딱히 그런 논리로 분석할 수 없는 지점들에 대해서도 합리성을 따지고 앉아있을 때도 많습니다.

최근엔 사후세계에 대해 얘기하다가 실제로 지옥이 있다면 너무 비효율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시스템인 것 같다며, 예컨대 80년을 산 인간이 죄를 지어 지옥에 가서 수천년을 고통 받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다, 그렇게 '벌'을 줌으로써 이를 관장하는 절대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들이 사후세계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지옥에 가기 싫어 선하게 살아서 사회를 평화롭게 굴러가게 할 수 있겠지만 다수의 인간이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상황에서 이미 죽은 인간의 죗값을 치루게 해서 얻는 것이 있을까? 지옥에서 벌받는 인간들을 통해 어떤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면 납득 가능한 처사다, 등의 이야기를 한참 꺼내놓다가 저도 아차 싶었습니다.

이렇게 불쑥 튀어나오긴 하지만 많이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이다가도 비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이다가도 합리적인 게 당연지사라는 것을 머릿속에 새기면서요. 딱딱 칼로 자르듯 나누는 게 아니라 우리네 삶은 양극단 사이의 회색지대를 오가며 살고 있다는 것도 꼭꼭 새기며...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잘 안 되긴 합니다. 회색을 오래오래 기억하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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