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덕에 대하여

2024.04.23 | 조회 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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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조잘

매일 아침, 당신 곁의 이야기

구독자님은 덕질을 해 보셨나요. 저는 박애주의자로서 10대 내내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데뷔한 아이돌을 한번씩 가볍게 덕질했습니다. 박애주의자면서 편애는 했어서 깊게 덕질하는 아이돌은 따로 있었습니다. 학생 시절에 팬 블로그를 운영한다거나 팬 카페에 가입해서 거기서 친구를 사귀는 등 꽤 진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에는 모 그룹의 모 멤버에 입덕해서 약 1년 반 가까이 덕질했었는데요. 살면서 음악을 위해서가 아니라 얼굴 보러 콘서트를 갔다거나, 포토카드를 모은 경험도 처음이었습니다. 구독자님께서 덕질을 해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덕질이 주는 도파민은 엄청납니다. 애초에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줄 수 있는 사랑이어서 그런 걸까요. 무한정 애정을 주는 행위 자체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효용을 따지는 게 버릇인 제가 대가 없는 행위에 몰두한 것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탈덕을 하더라도 이때의 제가 이 사람때문에 행복했다는 사실은 잊지 말라고 미래의 저에게 신신당부했을까요.

어쩌면 언젠가 탈덕을 할 것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요.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은 어디로 가고 저는 탈덕했습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게 덕질의 대상이 잘못한 것도 없고, 그대로인데 말이에요. 물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면 보기는 합니다만 굳이 찾지는 않습니다. 친구들에게 농담삼아 가슴에 사랑이 없다며 아무도 덕질 하지 않는 작금의 상황을 말합니다.

굳이 탈덕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콘서트를 다녀온 이후인데요. 동년배의 연예인을 한 번 보려고 한여름날 다닥다닥 붙어서 서 있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비싼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 왔는데 지금까지 보러 간 여타 공연과는 달리 이런 불편한 자리에서 불편하게 대기해야 하는 게 사실 불만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막상 공연을 보니까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물론 잘생겼고 공연도 좋았는데 1인당 십수만 원을 내면서 수시간 기다려서 들어와서 볼 만큼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리더라고요.

그래서 공연을 보는 2시간 가까운 시간 내내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습니다. 나는 왜 그토록 궁금했던 저 사람을 코 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감흥이 없는가에 대한 생각만 주구장창 하다가 나왔습니다. 또, 액정 너머에서 볼 때는 연예인이었지만 실제로 보니 동년배의 사람인데 그렇게까지 열광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다녀와서 그 연예인과 동갑내기인 회사 동료에게 차라리 덕질을 할 거면 가까이서 볼 수 있는 ㅇㅇ님을 덕질하는 게 낫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게 더 시간과 비용면에서 가성비 좋지 않을까요(?).

아무튼 같이 공연을 보러 갔던 친구가 황당해 하더군요.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 티켓팅을 하고 전날부터 내내 기대해 놓고 갑자기 이렇게 차게 식으니까요. 또 막상 실제로 보니까 무대에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내려와서 퇴근길에 인사하고 하는데, 사람 지나가는 거 보려고 또 그 더운 여름날 밖에서 기다리는 것도 뭐했고... 그렇게 무대 밑 일상에서 보니까 결국 사람대 사람이다보니 낯가리게 되고 머쓱하더라고요. 내적 친밀감은 있었지만 사실상 초면인데 이름을 부르거나 하는 것도 민망하고요.

이는 아마 제가 해당 연예인을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아이돌로서 좋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람의 음악을 진짜 좋아했다면 이런 마음은 안 들었겠지요. 그 전에 좋아하던 밴드나 래퍼의 공연을 볼 때는 좋아하던 노래를 실제로 들었다는 점에 대한 만족감이 아주 컸거든요. 음악보다는 외모가 먼저 좋았고, 각종 영상과 라디오 등을 찾아 보면서 이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마음속으로 구현했다가 실제로 보니 그냥... 초면인 한 개인이라서 어색해졌고, 그걸 인지하고 보니까 마음이 식더라고요.

긴긴 덕질이 그렇게 마무리되니까 황당하면서도 그 대상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혼자 지레짐작해서 좋아해놓고 혼자 실망해서 안녕한 거니까요. 또 요즘 일을 하면서 연예인들을 여럿 만나다보니 그들도 직업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한 사람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이렇게 덤덤하게 말하긴 하지만 과거에 덕질했던 아이돌을 지금 봐도 약간 천사같기는 합니다^.^ 우하하. 그리고 요즘은 피식대학에 정재형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사람이 참 괜찮아 보입니다(?) 가슴에 사랑이 식을 날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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