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수많은 꿈 중에 하나가 무병장수인 만큼 전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합니다. 이왕 태어난 삶,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경험이든 감정이든 이모저모 다 누리며 살고 싶죠.
농담처럼 88살에 죽고 싶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숫자 8을 좋아하기도 하고, 88살이면 왠지 하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다 해봤을 것 같아서죠. 참고로 숫자 8을 좋아하는 이유는 옆으로 뉘었을 때 무한대이기도 하고 아래위로 동그랗게 눈사람 같은 모습이 귀엽기 때문입니다⛄
한편, 동시에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관론자는 아닙니다. 삶과 죽음은 경계선상에 있고, 당장 내일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덜 후회하면서 살게 되더라고요. 물론 그럼에도 후회는 자주 남습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만일 내가 죽는 날을 알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저는 예나 지금이나 알고 싶다는 쪽입니다. 주어진 생이 언제 끝나는지 알게 된다면 그 생을 좀 덜 허비하고 살지 않을까 해서요. 삶이 무한한줄 착각하기에 후회할 말과 행동을 가끔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끝이 있는 것을 알기에 그런 언행을 하나 싶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든 간에 언젠가는 먼지로 돌아갈 테니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조적으로 하는 '죽으면 끝인데' 따위의 말도 비슷한 뉘앙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마음 속에 정해놓은 제가 죽는 날은 88살 생일이 지나고입니다. 정확히 말해 죽는 날이라기보다는 죽어도 아쉽지 않을 날이겠죠. 말은 이렇게 해도 정작 그 날이 오면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독자님은 어떠신가요. 죽는 날을 알 수 있다면 알고 싶으신가요, 혹은 모르고 싶으신가요?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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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와~ 어제 오전에 이유는 알수 없지만,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요. 저는 <언제> 보다 <어떻게>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는 서른 중반,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신 일이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을 것 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살면서 죽음을 생각하면 제 자신이 조금 더 겸손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진 못해도 몸과 마음이 충분히 건강하게 살다가 언제든 다가온 죽음에 의연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는 것은 …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내 인생에 무엇이 중요한가, 지금 잘 살고 있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깨우치는 것이다. - 애도의 문장들, 김이경
조잘조잘 (317)
비슷한 생각을 했다니! 반갑네요 :) 살면서 죽음을 생각하면 좀더 겸허해질 수 있다는 말에 정말 공감합니다. 결국, 모두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말씀마따나 언제든 다가온 죽음에 의연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야겠죠. 실은 저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막상 죽음이 가까이 온다면 무서워서 마냥 도망가고만 싶을 것 같습니다. 그 도망거리가 멀지 않도록 충분히 건강하게, 잘 살아야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튼튼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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