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여가생활은 하지만 여유는 없다

여가생활은 하지만 여유는 없다

하루 3시간이 넘는 시간을 대중교통 속에서 보냈던 시기가 있었다. 남들에게는 저녁을 먹고 휴식을 쉬하기 딱 좋은 저녁 9시가 나의 식사 시간이었고, 취침 시간은 무조건 12시 이후였다. 회사를 오가는 것 외에 ‘나’를 위한 시간을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투자하려면 취침 시간을 미룰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MZ세대는 워라밸을 지나치게 챙긴다, 야근보다 개인 생활을 더 중시한다, 일한 만큼만 일하는 조용한 퇴사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말이 도시 괴담처럼 기성세대에게 퍼져나가고 있던 시기였다.

대부분의 괴담이 실체가 없듯, 이는 물론 나에게도 헛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집도, 자차도, 경력도, 재산도 없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온전한 1인분을 하기 위해서는 ‘직장인이 아닌 나’를 위해 투자할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 회사에 다니고 있던 내 또래 젊은 직원들도 모두 업무 강도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MZ’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퇴근 후 여가 생활을 누리는 시간을 항상 마련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저녁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집에 오면 곧바로 저녁 식사를 차린 후 20분 정도 식사를 했다. 5분 만에 양치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10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에 갔다.

폼롤러 스트레칭을 7분, 유산소 운동을 10분, 복근 운동은 15분, 근력 운동은 40분, 마무리 유산소 운동은 50분, 집에 와서 15분 정도 샤워를 한 뒤 40분 정도를 투자하여 운동 일지를 블로그에 업로드하고 시계를 보면 대개 12시 언저리였다. 취침 시간이 새벽 1시가 넘어가지 않으려면 이렇게 모든 일을 분 단위로 따지며 해치워야만 했다.

이 모든 일은 야근이 없다는 전제하에 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1~2시간 정도 회사에 더 머무르는 날에는 헬스장에 방문할 시간조차 낼 수 없었다.

운동 또한 여가생활의 일부이므로 그 당시 나는 매일 여가생활을 할 짬을 내고, 여가생활을 무척 중시하는 MZ이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나에게는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귀가 시간이 너무 늦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느라 늘 시계를 보며 초조해했고, 생각보다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다음 날 제시간에 기상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느라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니 젊은 세대의 고충을 알려는 노력보다는, 어떻게든 젊은 세대와의 유별난 차이점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뉴스 기사를 볼 때마다 그때는 참 화가 많이날 수밖에 없었다.

MZ인 나는 정말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대중교통이 아닌 자차를 타고 출근할 여유도, 하물며 대중교통을 타기 좋게 역과 가까운 위치에 거주지를 마련할 자산도, 수도권에 거주지를 마련해 볼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는 여유도, 업무에 대한 발언권이나 영향력도, 회사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볼 여유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시간과 돈을 꽤 많이 쓸지언정 그래도 회사와 집 사이를 하루만에 오갈 수 있다는 것, 그래도 운동을 할 여유는 있었다는 점에 감사해할 수도 있다. 물론 이들은 모두 내게 주어진 감사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1인분의 몫을 하기 위해 최소한의 여건을 유지하는 것 외에,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꿈꿔볼 여유가 청년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아직 이루거나 얻은 것이 없어 오히려 자유롭게 자신을 탐색해봐도 괜찮은 시기이므로.

직장 생활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큼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할 정도로 경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세상에서 이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잠시나마 꿈을 꿔 볼 여유는 가져도 괜찮을 것이다. 아니다, 이런 여유는 꼭 가져야만 한다. 여가생활도 시간에 쫓기듯 초조해하며 수행해야하는 여유 없는 사회에서도 제정신을 가진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MZ세대가 기성세대는 이해하지 못할 유별난 별종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제몫을 다 하며 1인분만큼의 삶을 사는 세대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챙길 여유도 없이 시간에 쫓기듯 살지 않는, 그냥 평범한 삶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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