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21. 복학생(7)

다시 돌아온 복학생! 드디어 연애를 시작하는 A?❣

2022.11.10 | 조회 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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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귤처럼 까먹는 줄글을 보내드립니다.

A는 연주와 영화를 보러 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이성과 단 둘이 영화관에 오다니, A는 비로소 자신이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제야 진짜 남자가 되었다는 느낌. 낯설지만 싫지 않았다. A는 짐짓 자신의 남자다움을 어필하고자 공포 영화를 골랐다. 사실 피가 튀기고 귀신이나 좀비가 놀라게 하는 종류의 영화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지만(두려운 건 아니다, 그저 시끄러운 것이 싫을 뿐) 연주가 깜짝 놀라 자신에게 안길지도 모른다는 음흉한 판단이 앞섰다. A와 연주는 팝콘을 기다리는 줄에 서 있었다. 영화표는 자신이 샀으니 팝콘과 콜라는 연주가 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심 했다. 슬쩍 곁눈질로 보니 연주는 지갑을 꺼내 똑딱이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역시, 개념녀야. A는 흐뭇한 마음으로 연주를 보며 씨익 웃었다. 연주도 A를 보며 따라 웃었다. 방싯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 연주, 무서운 거 잘 봐?

- ... 조금요?

- 귀엽긴.

 

A는 용기를 내어 연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하면 여자들이 설렌다고 하던데. A는 전날 자신이 애용하는 커뮤니티에서 본 여자들 이거면 다 넘어옴이라는 게시글의 작성자, ‘조개애호가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연주가 순간 미간을 찌푸린 것 같기도 했지만, 웃는 얼굴인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잘못 본 것 같았다. A의 손이 떨어지자 연주는 머리를 다시 매만지며 A의 손이 닿았던 순간을 되새기는 듯 했다. 성공이다.

 

영화를 보러 들어간 A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손잡아도 되나? 너무 빠른가? 썸탈 때도 손 많이 잡는다던데? 근데 따로 영화를 볼 정도면 사귀는 것 아닌가? A는 광고가 상영되는 동안 상념에 빠져들었다. 콜라를 힘껏 빨아올리며 팝콘을 집어 먹는 연주의 손을 보았다. 자신에게 가까운 쪽의 다리 위에 팝콘을 올린 채 왼손으로는 팝콘 통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팝콘을 집어먹는 모습. 손만 유달리 확대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저 손을 잡고 싶다. 살짝 스쳐라도 볼까? A는 오늘의 데이트를 자랑하자 신랄하게 비웃던 B의 얼굴이 떠올랐다. , 걔 손이라도 잡을 수 있겠어? 아무 것도 못 한다에 5만원 건다. A의 입꼬리가 신경질적으로 씰룩거렸다. 내가 못 할까봐?

 

영화가 시작되자 공포 영화답게 사방이 캄캄해졌다. A는 갑자기 어두워진 시야에 놀라 얼어붙었는데, 옆에서 아삭-하는 소리가 났다. 연주가 팝콘을 먹는 모양이었다. 귀여워, 생각하면서 무심코 정면을 보았다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스크린 가득 클로즈업 된 시체의 얼굴과. A는 괴성을 지르며 얼굴을 가렸고, 누구보다도 큰 괴성에 모두의 시선이 한 번씩은 와 닿았으며, 연주는 그런 A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A는 창피함에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지 못했다. 연주가 A를 힐끔거렸다.

 

 

  Photo by Cyrus Crossan on Unsplash
  Photo by Cyrus Crossan on Unsplash

- 선배, 이제 아무도 안 봐요.

 

귀에 와 닿는 연주의 목소리가 간지러웠다. 곧이어 연주가 A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내려주었고, A는 보드랍고 조그만 연주의 손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곳이 지옥일지라도. A는 연주의 손이 닿았던 자신의 오른손을 꼭 쥐었다. 아직 연주의 손이 쓸고 간 감촉이 남아있는 듯했다.

 

영화가 끝나고도 A는 한참을 멍했다. 연주는 자신처럼 A도 영화의 엔딩 크레딧까지 보냐면서 방싯 웃는 얼굴을 했다. A는 연주에게 최대한 밝게 웃어 보이며, 벌게진 자신의 얼굴이 꽤나 꼴사납겠다는 자각을 했다. A는 연주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것이 확실하며 첫 데이트에서 손을 잡았다는(심지어 연주가 먼저-물론 찰나의 순간이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사실을 꼭 B에게 말해주리라 생각했다. 무용담처럼 누구의 손을 잡았고 키스를 했고 잠자리를 가졌다는 남자 놈들이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던 A지만,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 자신은 정말 연주를 순수하게 좋아하기 때문에. 연주와 있었던 일을 전부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A는 생각했다. 또한 그토록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애정이 제법 멋있었다. 엔딩크레딧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고 있는 연주를 힐끔 본 A가 수줍게 웃었다.

 

- 근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 손목을 잡고 막 끌고 가는 건 별로였어요.

- , 그랬었나?

- 둘이 오해가 있었을 때요. 애초에 공포영화에서 꼭 로맨스가 있어야 했나?

- 그러게.

 

A는 연주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영관에서 나와 팝콘과 콜라를 버리고, 입구로 나가는 동안 연주는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열심히 토로했다. 종알거리는 입술이 귀여워 A는 짐짓 웃는 얼굴로 모든 말에 호응했다. 솔직히 공감은 안 됐지만, 아무렴 어떠랴. 연주는 과격한 여성우월주의자도 아니고, 내가 모든 데이트 비용을 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개념녀인 것이다. 거기다 귀엽고 스킨십에 개방적이며- 잠깐. A는 잠시 영화를 볼 때의 상황을 복기했다. 자연스레 자신의 손을 잡고 내리던 모습. 연주는 남자친구를 사귀어 봤겠지? A의 기분은 급격히 하강했다. 그래, 얘는 담배도 피잖아. A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나... 퐁퐁남이 되는 건가?

 

 

 

 

 

 

 

당신의 심심한 목요일에 까먹을,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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