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46. 명절생활백서

설 연휴 특집! 명절에 벌어지는 난감한 상황에서 어떡하죠?🤷‍♀️

2024.02.08 | 조회 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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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귤처럼 까먹는 줄글을 보내드립니다.

구독자, 당신은 4일의 긴 휴가를 받았습니다. 물론 주말 포함이지요. 그래도 바쁘다바빠 현대인에게 4일이나 통으로 휴가를 낼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휴가는 당신 마음대로 쓰기 힘든 날입니다. 명절이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이 시간을 활용해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대다수는 고향에 방문하여 오랜만에 보는 친척 어른들을 만나 오랜만에 애정 어린(?) 잔소리를 듣는 날일 겁니다. 그리하여 민족 대명절, 설을 앞두고 명절생활백서를 발행하고자 합니다.

 

1. 네가 올해 몇 살이더라?

당신은 오랜만에 북적이는 큰 어른 댁에 방문했습니다. 어색하지만 예의 바른 미소로 인사를 드리고 난 뒤 오랜만이라는 뜻으로 어른들이 당신의 나이를 묻습니다. 아직은 잔소리 메뉴판을 꺼낼 때가 아닙니다. 하지만 시동을 거는 말일 수도 있겠죠.

 

2-1. 대학에 들어갔다고? 어디?

아직 대학생인 당신은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지, 무슨 과에 갔는지 대답합니다. 때마침 같은 나이의 사촌/친척이 있다면 비교를 당할 수도 있고, 취업률이 낮은 과에 다니고 있다면 ‘뭐 해서 먹고 살 거냐’는 우려를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 반드시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당위성을 입증받지 않아도 됩니다. 잊지 마세요. 그 어른은 일 년에 많아야 두 번 만나는 상대이며, 사실은 당신이 뭘 해서 먹고살 건지 크게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매모호하게 “그러게요?” 하며 아방하게 미소 지어도 됩니다. 미소가 무해할수록 상대방의 호기심이 떨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차차 생각해 보려고요.”라는 유예식 답변은 상대로 하여금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라는 조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2-2. 연애는 안 하니?

20대의 초중반, 어른들 눈에는 가장 꽃답고 아름다운 시기라고 합니다. 간혹 여러분을 보며 우수에 찬 눈을 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반드시 따라오는 질문은 ‘연애’죠. “젊을 때 많이 만나봐야 한다.”, “내가 너 때는 쉬지 않았다.”, “눈이 너무 높은 것 아니니?” 등 다양한 조언이 따라붙는 분야입니다. 자, 잔소리 메뉴판을 꺼냅시다. 저는 연애 관련 질문/조언에 관해 삼백만 원 정도를 받는 편입니다. 한 번 하시는 분들은 여러 번 하시기 때문이죠. 부루마불 통행료처럼, ‘연애’ 칸을 지나칠 때마다 삼백만 원 씩 받는 셈입니다. 잔소리 메뉴판을 꺼내도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난다면, 이번에는 능구렁이처럼 넘어가 보는 건 어때요? 제가 거의 90% 정도 성공했던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혹시 아르바이트 하시겠어요? 제가 좋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번호표 받는 알바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대책 없는 어처구니 없음에 어른들 대부분이 그냥 파하핫 웃고 넘어가 주시더군요. 이렇게 한 번 넘기면 이번 명절은 걱정이 없겠죠? 다음 명절은 어떻게 하냐구요? 어른들은 사실 당신의 연애 여부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아직은요. 20대 후반 정도부터 집요해지죠. 아직은 마음을 놓아도 됩니다. 지금 연애 여부를 묻는 건 마냥 아기 같던 당신이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니 흐뭇한 마음에 한 번 물어보는 경우가 대다수일 테니까요.

 

 

Unsplash, Markus Winkler
Unsplash, Markus Winkler

3-1. 직장은 다니니? 뭐 준비 중이라고? 공부는 잘 돼가니?

역시 상대방은 당신의 인생 진척 사항에 크게 관심이 없을 겁니다. 요즘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이런 질문을 피해야 꼰대 소리를 안 듣는다라고 경고가 오간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아직 그것을 채 못 들은 어른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생업에 관련된 질문이나 조언은 사실, 당신만이 아니라 모두가 불편해질 수 있는 예민한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먹고사는 문제니까요. 최대한 단답으로 대답하고 어물쩍 그 자리를 피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발행인의 경우 이 질문에도 아방하게 미소 지으며 회피해 보았습니다만, 그다지 뚜렷한 방안은 아니더라고요. “저는 00하고 있어요. 00는요?(질문자의 자제분)”라고 되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자랑을 늘어놓으신다면 이게 본론이었구나, 하고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해주세요. 저는 요즘 “앗, 그 질문은 잔소리 메뉴판에서 오백만 원 정도(터무니없는 금액)인데, 선입금 부탁드려요.”라고 대답하면서 어물쩍 넘어가곤 한답니다. 꽤 센 금액을 부르면 움찔하시는 효과가 있어요. 주변에서 웃어주시면 농담으로 쉽게 그 질문을 넘어갈 수 있고요. (같이 웃어주세요, 제발)

 

3-2. 연애는 하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돌고 돌아 다시 연애 질문을 받은 당신. 20대 중후반이 되고, 직장까지 생긴 상태에서 연애 질문을 듣는 건 곧장 ‘결혼 의지’가 있는지 묻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저는 20대 후반이 되면서 이 질문을 꽤 자주 들었는데요. 두 가지 방법 정도로 돌파해 나가곤 했습니다. 하나는 집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거죠. “집이 없어서 결혼은 꿈도 못 꿔요. 집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하면 이상한 애라는 눈빛을 받기는 하지만 대개 대화를 포기하시더라고요. 두 번째는 제 개인적인 방법입니다만, 비혼/비연애주의임을 밝히는 겁니다. 저는 여자 어른들이 제 편을 들어주시기 때문에(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느낍니다. 어릴 때는 안 그랬거든요) 일부러 여자 어른들이 계신 자리에서 이야기하곤 해요. “저는 결혼도, 연애도 생각이 없으며 당장은 제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뭐,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혼자 살아도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을 것 같고요.”하고 어깨를 으쓱하면, 여자 어른들은 격하게 동의해 주시고 남자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꾹 다무십니다. 뭐라고 해도 안 듣는 애라는 이미지를 쌓아두시는 게 사실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그래도 안 된다면 역시, 잔소리 메뉴판을 꺼내세요. 저는 연애-결혼까지 이어지는 질문은 잔소리 메뉴판에서 팔백만 원 정도를 부르는데요. 금액이 센 이유는, 결혼을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해서? 물론 팔백만 원으로 집을 구할 수는 없다지만 진정 결혼을 우려하신다면 팔백만 원 정도는 지원해주시지 않을까요?

 

심도 깊은 고민 끝에 적다 보니 벌써 어둑한 저녁이 되었네요. 놀랍게도 위의 매뉴얼은 고심 끝에 적어 내려간 것이랍니다. 내일부터 저 또한 고향에 갈 예정인데요. 명절 음식 준비에 이바지하고, 세배도 하고,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다녀오고, 친척 어른들도 뵙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갈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명절이 어릴 때만큼 고통스럽지 않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여전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을 것 같다는 오지랖에 특집으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가급적 무해하고 즐거운, 맛있는 음식으로 배와 마음이 든든한 명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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