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 7월, 역대급(?) 스케일의 일을 보조하게 되어 바빴는데 이번에는 회사 전체가 분주함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상태다. 물론 이 사달이 난 원인은 내가 아니다. 나는 소용돌이의 가장자리에서 엥? 하며 주어지는 일들에 휘청대고 있는 가련한 신입일 뿐...(공감되는 사람은 울어도 된다. 나는 지금 회사라서 울 수 없지만.)
전에 친구가 월 500 버는 직장인 vs 월 180 받는 백수 중 고르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전자를 골랐는데, 현실은 월 180 버는 직장인이 됨.(부업을 이것저것 하고 있어서 정확한 액수는 아님ㅋㅋㅋㅋ) 아무튼 그때 내가 너무 고민 없이 전자를 고르니까 친구가 월 300까지 월급을 내려서 물어봤는데(심지어 워라밸 폭망인 컨셉) 그래도 나는 전자가 좋다고 했더랬다. 그때는 아마도 서러운 계약직 시기여서 그랬던 것 같다. 담당하는 일 없이 시키는 잔업을 모조리 처리해야 해서, 이럴 바엔 차라리 어떤 일을 책임지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이 조직에서 너무 소모품 같은 존재 아닌가? 라는 고찰을 할 때였다. 물론 지금도 불로소득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규칙적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되고 나니 왠지 밸런스 게임에서 진 느낌이다. 액수가 적어서 그런가?
요 근래 일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고민도 늘어났다. 우연하게 발을 들이게 된 현 직장은 광고업계인데,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AE의 약자가 Ah~ 이거 제가 해요? E것도 제가 해요? 라던데 뼈에 사무칠 정도로 공감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한 지난 계약직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직장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뭐든 경험하면 도움이 된다더니,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아무리 내가 프리랜서가 돼서 퇴사하는 것이 꿈이라 업무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는 없어서, 퇴사 고민도 많이 했다. 그나마 철이 든 것은 대책 없이 퇴사할 수 없다는 현실감각을 장착했다는 변화겠다.

지금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짧게 프리랜서 생활을 해 보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과 막연한 불안에 허덕이는 나날이었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오니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합리한 상황에 따른 굴욕감을 얻었다. 그래서 다시 프리랜서 생활을 꿈꾸고 있지만, 프리랜서가 되면 다시 불안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이 단순한 순환 구조를 이해했다는 것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심 뿌듯한 나날이다.
예로부터 기분이 수도 없이 들쭉날쭉했던 탓에 현재도 크게 다를 바 없이 컨디션에 따라 기분이 많이 좌우되는 편이다. 몇 주 전만 해도 이 놈의 회사, 내가 때려 치고 만다고 호기롭게 외치고 다녔건만 지금에 와서는 퇴사 생각은 없어졌다. 대신 욕은 참지 않는다. 어차피 서로 다 할 테니까, 똑같은 거지 뭐.(그렇다... 죄책감도 사라졌다.) 그리고 입사 후 충동적으로 시작한 뉴스레터와 에세이 등은 들쭉날쭉할지라도(이 부분을 굉장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억지로라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최근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아 이번 레터가 성에 전혀 차지 않지만, 밀려 있는 서평&독서 모임 일정 때문에라도 책을 읽어야 해서 회복할 예정이다.
이따금 지루하고 크기만 한 쳇바퀴를 돌리는 기분이 되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내고 있다. 아직 어린 서른의 나이니까 이렇게 쌓아나가다 보면 줄귤레터도 유명해지고(과연), 북토크 일정으로 분주한 멋진 작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꿈을 꾼다.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인 민음사에서 내 책을 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고, 내 글을 읽고 지난한 생에서 잠깐의 위로와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그들에게 내가 받은 연대의 끈을 이어줄 수 있다면? 아마 더 바랄 것이 없겠지.
내가 밸런스 게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건 질문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생각의 흐름 때문인데 그 생각은 늘 온유하고 따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퍽 잘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그 덕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바로 지금처럼. 다른 생명을 파괴하고 화풀이하는 하등 생물로 자라지 않아 다행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그러니 이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적정한 거리에 서서 다치지 않게 갑옷을 두르며 하루하루를 버텨 볼 생각이다.
그래도 구독자 여러분, 혹시라도 저 밸런스 게임 같은 상황이 온다면 가급적 후자를 선택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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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멋쟁이 구독자 여러분. 죄 많은 발행인 정주리 인사드립니다. 매주 수요일에 보내드리기로 약속해놓고 현생에 치여 오늘도 하루 늦고야 말았습니다... 유구무언입니다.
대신, 수요일을 기준으로 하되 늦어도 목요일까지는 꼭 전달드릴 수 있게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시기를 바라며,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당신의 심심한 목요일에 까먹을,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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