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참신한 아이디어 없을까?”
공중으로 흩어지는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이고 깨끗한 업무일지를 응시한다. 저 멀리 앉은 김감독이 무언가 끄적이는 것이 보이지만, 늘 그러하듯이 공연한 낙서일 것이 분명하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귀찮고 피곤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리 씨, 아까 말해준 것 말고 뭐 생각해본 거 있어요?”
막내 작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황급히 제 사수인 유 작가를 빤히 보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업무일지에 펜을 톡톡 두드리며 웃자란 수염을 쓸고 있다. 갈 곳을 잃은 여리 씨의 눈동자가 나와 맞부딪히자, 내 눈도 여지없이 흔들린다. 이토록 공연한 회의를 왜 월요일마다 하는 건지. 여리 씨의 눈길을 따라 대표의 눈이 나에게 향한다. 반갑게 휘는 눈꼬리가 눈꼴시다.
“역시 우리 재희 씨! 아이디어 있죠?”
“음, 여자 아이돌에게 이색 체험을 시키는 게 어떨까요? 신선한 리액션이 나올 것 같은데.”
“우리 페이에 출연해주는 아이돌이 있으려나? 역시 메이저는 안 오겠죠?”
“네,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 우리 그, 짚라인 있잖아요. 그거 태우면 무서워서 소리 지르고 그러지 않을까?”
“그렇겠죠.”
겁이 많은 친구면 좋겠네, 하며 상상이라도 하듯 대표의 눈꼬리가 더욱 가늘어진다. 제법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가학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표정이다. 재빠르게 시선을 내리깐다. 정말로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제안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이 지지부진한 시간이 빠르게 마무리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가 원할 만한 미끼를 던져주었을 뿐이다. 이럴 때면 마땅히 느끼듯, 대표와 한패가 된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아주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대했다면 이토록 급하게 회의를 소집하진 않았을 거다. 빠르게, 적당한 금액만 사용해서, 예상되는 정도의 재미를 끌어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여리 씨가 불편한 얼굴로 한숨을 쉬는 게 보인다. 그가 제안했던 ‘정말로’ 참신한 아이디어는 이미 몇 차례 묵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 한숨은 익숙한 한숨이다. 내가 여리 씨처럼 막내였을 때 매일같이 내쉬었던 숨이니까. 하지만 인간은 다소 나약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생물이다. 이제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나처럼.
“오케이, 그럼 아이돌 컨택은 여리 씨가 해주고, 재희 작가가 붙어서 같이 기획해 봐요. 구성안 나오는 대로 촬영팀도 꾸려 보게요.”
빠르게 모두가 자기 책상으로 복귀하며 회의는 끝났다. 어제 보낸 영상에 수정사항이 와 있어 체크하는데 여리 씨가 보낸 메신저 알림이 뜬다.
‘작가님, 제 아이디어 별로였죠?ㅠㅠ’
메신저인데도 의기소침한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아 뭉근한 마음이 됐다. 사실 이런 질문은 사수인 유 작가에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고작 3개월 선배인 내가 더 편하니 이러는 거겠지. 이해한다. 나 같아도 그럴 테니까. 대표의 조카라는 유 작가는 그다지 하는 일이 없어 보이지만 늘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 밑에서 지쳐 나가떨어진 어린 작가가 셀 수도 없이 많은데도, 대표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여리 씨 아이디어 좋았어요. 이번에도 제작비가 별로 없대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재희 작가님 아이디어도 저는 좋았어요!’
‘ㅋㅋ고마워요. 근데 그냥 빨리 넘어가려고 말한 거라 그다지 참신한 건 아니에요.’
‘뭔가 기존이랑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서 말한 건데 대표님은 제 건 별로신가봐요.’
‘그러게요. 이번에도 예전에 하던 것들 답습하는 거라 아쉽긴 해요.’
여리 씨에게서 주먹을 불끈 쥔 이모티콘이 와 피식 웃음이 났다. 새어나간 숨소리에 옆자리의 유 작가가 시선을 주는 게 느껴져 재빨리 무표정을 했다. 대표와 유 작가가 담배를 피우러 함께 자리를 비우자 대번에 편안해진다. 이제 그들은 30분 정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정PD와 김감독이 파티션 너머로 던진 썰렁한 농담에도 화기애애하게 웃음이 터졌다. 다들 말은 하지 않지만,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 있을 것이다. 생계가 아니라면 금방이라도 박차고 나갈 텐데. 구성안 작성에 앞서 대략의 스토리 라인을 작성하다가 문득 생각에 빠졌다. 처음 입사할 때는 더 멋진 내가, 톡톡 튀고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역시 녹록지 않다. 하, 깊은 한숨을 뱉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관성적인 한숨이다. 매일같이, 습관처럼, 내뱉는 기-인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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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초단편 소설을 한 번 써 보았습니다!
일개미의 일상적인 하루.. 랄까요.... (물논 저 또한.)
물론 저는 아주 기~일게 근무해 본 경험이 없지만, 일에 적응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특히 스스로가 성장하지 못하고 느낄 때, 싫다고 말했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요.
그래도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다 보면 알지 못하는 새 어딘가로 훌쩍 와 있을 겁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당신의 하루를 응원하는,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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