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33. 벚꽃길을 함께 걸을 애인 고르기

고르기 글... 꽤나 재밌거든요(feat. 봄노래 추천)🌸🌸🌸

2023.03.30 | 조회 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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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귤처럼 까먹는 줄글을 보내드립니다.

1. LUCY - 개화

우리는 오래 알고 지냈다.

다종다양한 감정을 함께 나누며 자란 사이. 우리 사이를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그 애에게 나의 본질, 어떠한 씨앗이 심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전의 일이다. 언제나처럼 도서관에 나란히 앉아 문제집을 풀다 옆에서 손부채질을 하는 자발스러운 손놀림이 거슬려 돌아보았다가, 문득 이 애가 이런 얼굴이었나? 라는 새삼스러운 의문이 들었다. 낯설다, 생각하는 순간 마음에 알 수 없는 감정이 확 번졌다. 물에 풀어진 물감처럼.

 

"왜?"

"부채질 좀 그만 해, 정신 사나워."

"뭐래. 음료수 사올 건데, 너는 콜라?"

 

선뜻 고개를 끄덕이자 귀엽다는 듯 웃으며 그 애가 일어섰다. 도서관 문을 밀고 나가는 틈으로 봄 공기가 훅 밀려들어왔다. 매년 그랬듯이 서로 때문에 모쏠이라는 이유로 티격태격하며 이번 봄에도 벚꽃을 보러 갈 것이다.

콜라를 번쩍 들어 보여주며 해맑게 들어서는 얼굴을 보자 또 아까의 그 낯선 감정이 온 몸으로 퍼졌다. 너 때문에 느끼는 또다른 감정이다. 매번 이렇기 때문에, 너는 어쩌면 나의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

 

 

2. 윤하 - Parade

춥다고 투덜대는 입술이 퍽 귀엽다. 뭐 그렇게 추위를 타냐? 쏘아 붙이면서도 미리 챙겨 온 담요를 건넸다. 어깨에 담요를 두른 모양새가 제법 우습다. 오늘 회사에서 꽤나 시달렸다면서 편의점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자고 했던 건 너인데, 그새 콧노래를 부르며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걸 보니 기분이 꽤 좋아진 모양이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서로의 SNS를 팔로우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같은 카페에서 동시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커피를 한 잔 마시게 됐다. 그렇게 처음 알게 된 사이지만, 고작 한 달 만에 우린 제법 친해졌다.

 

"야."

"왜."

"사실 회사에서 아무 일 없었음."

"뭐?"

 

뜻 모를 소리를 하고 천연스럽게 맥주를 마시는 옆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애를 다시 힐끔 보니 귀가 조금 빨개진 것도 같다. 술 기운일까?

 

 

Unsplash, Veronika Bykovich
Unsplash, Veronika Bykovich

3. 정현, Polar - Hold tight (Acoustic ver.)

"안녕."

"새삼스럽네."

 

마주 누운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이 머쓱해 던진 인사에 피식 웃으며 돌아오는 대답이 다정했다. 언제나 자기 이야기를 터놓고 무너질 줄 모르는 너. 그게 매번 답답해 화를 냈는데 그렇게 만난 게 벌써 2년이었다. 2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혼자 울며 보냈는데, 어제 처음으로 우리는 함께 울었다.

네가 숨기던 깊은 상처를 들여다보고 함께 헤쳐나가기로 했던 밤. 아침이 왔을 때 네가 또 습관처럼 도망치지 않을까 두려웠는데 너무도 평온한 얼굴이 고마웠다. 내 볼을 가볍게 쓸어주는 손바닥이 따뜻해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고이려던 눈을 부드럽게 덮는 손의 무게가 제법 묵직했다.

 

"그만 좀 울어. 울보."

"너도 어제 엄청 울었잖아."

 

가볍게 웃는 소리와 함께 내 눈을 덮은 제 손등에 쪽, 입맞추는 소리가 났다. 일어나, 아침 먹고 나가자. 날씨가 좋아. 가벼워진 옆자리를 가만히 쓸었다. 창 밖에서 하얀 꽃잎이 날아들었다. 오늘을 오래 잊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4. Lauv - All 4 Nothing (I'm so in love)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기계적으로 뱉은 인사에 상냥한 인사가 되돌아왔다. 그 사람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들러 같은 커피를 들고 카페를 떠나는 사람. 오늘도 이 사람은 밀크티에 샷 추가를 해 텀블러에 담아갈 것이다. 어깨에 메고 있던 백팩의 옆구리에서 텀블러를 꺼내...지 않는다.

 

"밀크티에 샷 추가, 맞으시죠? 테이크아웃 컵에 드려요?"

"아... 네."

"웬일로 텀블러를 두고 오셨네요."

 

머쓱한 듯 웃는 얼굴이 귀엽다. 나도 모르게 계산하려던 손을 멈추고 멍하니 보았다. 웃는 얼굴은 처음이라 놀랐다. 이건 마치, 뭐랄까, 봄날의 햇살 같은? 해맑은 웃음이다.

계산을 마치고 커피를 내밀자 머뭇거리더니 대뜸 무언가를 내밀었다. 얼핏 보고 쿠폰인가 싶었는데(우리 카페에는 쿠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세히 보니 본인의 명함이다.

 

"저기... 같이 벚꽃 보실래요? 생각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네?"

 

커피를 낚아채다시피 가지고 도망쳐 버리는 뒤통수가 유달리 동그랗다. 다시 명함을 봤다. 미소 짓는 햇살이 귀여운 일러스트로 그려진 명함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

 

 

예전에는 이런 고르기 글을 좋아했더랬는데...(아련)

한 주를 건너뛰어 버리는 불상사를 일으킨 것에 사죄드리는 마음으로, 봄을 맞이해 살랑이는 마음을 저격할 고르기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봄은 대개 시작과 설렘의 계절이죠? 벚꽃이 전자렌지 속 팝콘처럼 부푸는 것을 보아하니 곧 벚꽃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벚꽃길을 걸으며 들었거나 듣기 좋을 것 같아 아껴 둔 곡들을 꺼내 N스러운 상상력을 덧붙여 보았는데, 댓글로 본인이 고른 인물을 공유해 주셔도 좋습니다.

 

또한, 읽는 분의 성향에 따라 마음껏 상상하실 수 있게 성별을 모호히 적었으니 원하는 인물에 대입해 상상해 보시면 작은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른하고 따뜻한 봄날, 당신은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여러분의 안온한 봄날을 응원합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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