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12. 복학생(1)

당분간 이어질 시리즈, 복학생 첫번째 이야기🚨

2022.08.24 | 조회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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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귤처럼 까먹는 줄글을 보내드립니다.

창밖을 보니 꽃이 폈다. 바야흐로 봄인 모양이다.

A는 턱을 괴고 지루한 얼굴로 창밖을 응시하다가 벚꽃 잎이 흩날리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괜히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교수님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 같아 슬쩍 칠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숨을 푹 쉰 A가 다시 교재로 시선을 내리고, 턱을 괴었던 손으로 볼펜을 쥐었다. 올해는 꼭 졸업을 해야 하니, A는 들뜨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기로 한다.

A는 관성처럼 과방으로 향한다. 이제는 낯모르는 후배들이 너무 많아 선뜻 들어서기가 두렵지만, 늘 문을 빼꼼 열고 들여다보면 반갑게 손을 흔드는 후배가 꼭 한 둘은 있다. A는 내심 그 후배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과방으로 입장한다. 가장 가까운, 바깥쪽 자리에 멀거니 앉아 자신에게 손을 흔든 후배에게 말을 건넨다. 때마침 자신처럼 머쓱하게 앉아있었던 모양인지 그 후배도 꽤 반가운 눈치다. 다 새내기야? , 형이랑 저 빼고 다 새내기. 짧은 대화 후 왠지 부끄러움이 앞서 눈치를 살핀다. 혹시라도 자신과 후배의 대화를 새내기들이 듣고 주책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다행히 그 누구도 둘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A는 이상하게 속이 조금 쓰린 것도 같다. A는 공연히 후배를 불러내 담배를 한 대 태우러 간다.

단과대 건물 뒤는 암묵적인 흡연 장소다. 이 넓은 캠퍼스 안에서 담배 필 곳 찾기도 여의치가 않다. 흙을 채운, 군데군데 깨진 화분이 재떨이 겸 놓여 있다. A는 자기들보다 먼저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멈칫한다. 딱 봐도 앳된 얼굴의 여자애다. A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여자애 근처에 서서 담배를 문다. 후배가 얼른 다가와 불을 붙여주자, 조금 어깨가 펴지는 것도 같다. 슬쩍 여자애를 곁눈질하다가 눈이 딱 마주쳤다. 여자애가 보란 듯이 연기를 내뿜는다. 어, 저거 겉 담배 아니야? A는 조금 언짢아진다. 그러나 그것을 티냈다가는 복학생인데다 꼰대 취급을 받을 것이 뻔하다. 아직 반이나 남은 담배를 화분에 비벼 끈 여자애가 건물 안으로 총총 사라진다. 담배, 피지 말지. 귀엽게 생겼던데.

 

  Photo by Anders Jildén on Unsplash
  Photo by Anders Jildén on Unsplash

- , 봤어요?

- .

- 무슨 여자가 담배예요? 저는 담배 피는 여자랑은 못 사겨요. 형은 가능?

- ... 자기 마음이지. 근데 겉담이더라?

A의 말에 후배가 소리 내어 웃는다. A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가 다시 되돌아 나온 여자애와 눈이 마주친다. 내 말을 들었나? A는 움찔하곤 그런 스스로가 조금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여자애의 눈을 피했다. 그 애도 가만히 서서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A는 여전히 찝찝한 마음으로 후배를 앞세워 과방으로 들어섰다. 자기들이 들어서자 과방 분위기가 약간 일렁이는 것을 느낀다. A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아까의 자리에 가 앉는다. 근처에 앉은 새내기 여자애 둘이서 무심코 코를 막는 것을 보고 머쓱함을 느낀다. 담배 냄새가 많이 나나?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코를 막아? A는 조금 언짢아진다. 혹시 새로운 얼굴이 있나 싶어서-흑심은 없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새내기들이니까- 슬쩍 보다가 화들짝 놀란다. 흡연 구역에서 마주쳤던 여자애가 구석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다. 양 손 엄지손가락이 바쁜 것을 보니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모양이다. 내 얘기는 아니겠지? A는 헛기침을 하며 후배에게 고개를 돌린다.

- 아까, 쟤 맞죠? 앞으로는 같이 담배 피자고 해야겠다.

- ㅋㅋㅋ아오, 또라이 새끼.

후배의 귓속말에 웃음이 터져 낄낄거리다가 문득 과방이 조용해졌음을 느낀다. A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용기가 치밀어 아까 코를 막던 새내기들 중 한 명에게 말을 건넨다. 담배피고 와서 냄새 많이 났니? 미안. ... 괜찮아요. 한 명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리고 나머지 한 명은 고개 돌린 친구를 힐끔 보고 웃으며 대답한다. A는 자신의 용기에 스스로 탄복한다. 내친 김에 이름까지 물어본다. 이소연이라고 한다. 소연이, 이름 예쁘네. 웃는 소연의 얼굴을 보면서 A는 자신의 마음속에도 벚꽃 잎이 흩날리는 것을 느꼈다. , 봄이다.

올해는 연해할 수 있을까?

 

 

 

 

다음 번 레터에서 복학생(2)로 이어집니다.

 

 

 

 

당신의 심심한 수요일에 까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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