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당히 개그 지향적인 인간이다. 가끔 '글을 잘 쓴다'는 말보다 '웃기다'는 칭찬에 더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할아버지, 아버지를 이어 나까지 전체적으로 집안 분위기가 유머에 특화되어 있는 것 같긴 하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척 옛날에, 교과서에서 한국인은 '웃음으로 눈물을 닦는' 정서가 있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처해 있는 상황이 부정적일 때 더욱 우스갯소리를 적극적으로 늘어놓고는 했다. 그러다 보면 불만스레 입을 내밀고 툴툴거리다가도 스스로 한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덤으로 따라왔다.
어릴 때부터 스탠딩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도 즐겨 봤는데, 간절히 기다린 주말이 되면 '무한도전', 'X맨', '여걸식스', '런닝맨', '1박 2일', '스타킹', '패밀리가 떴다' 등의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며 깔깔 웃다가 일요일 밤이 되면 '개그콘서트'를 보며 다음 날 등교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노력하)곤 했다.(평일 밤에 TV를 보긴 어려웠다. 그래도 '웃찾사'는 재미있기 때문에 다 함께 봤다) 가족, 육아 예능이 유행이 되었을 때는 아이들이 귀여워서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챙겨 봤다.(그러고 보니 현 직장에서 영상에 자막을 뚝딱 적어내는 센스가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길러진 모양이다)
스탠딩 코미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점점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나 혼자 산다' 등의 예능이 유행하게 되면서 근 몇 년 간 예능 프로그램이나 스탠딩 코미디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진 않았던 것 같다. 가끔 배경음악처럼 재방송으로 틀어놓고 일상적인 일을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다른 미디어가 이미 충분히 넘쳐나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을 굳이 볼 필요를 못 느낀 것 같다.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보지 않아도 '짤'이 인터넷을 돌아다니기에 원하는 부분만 쏙쏙 골라볼 수도 있는 세상이니까. 그래서 '개그콘서트'가 종영한다고 할 때, 유년시절의 한 단락이 막을 내리는 기분이었지만 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이미 '무한도전' 종영을 통해 내가 금방 적응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개그 콘서트'가 부활했다. 뉴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한 건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갑자기? 다시 한다고? 이 미적지근한 반응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개그 콘서트'가 심각한 혐오 개그로 버무려져 있었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우린 웃음으로 눈물을 닦는 종족이므로 나는 '개그 콘서트'에서 주로 하던대로 내 뚱뚱한 몸을 디스하며 자학 개그를 주로 했다. 쿨하고 멋지게 웃어 넘기는 것으로 보이고 싶었는데,(흔히 하던 농담대로 뚱뚱할 거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하니까) 되려 상처가 쌓였다. 남자친구들이 "넌 다른 여자애들이랑 달라."라고 말하면 가끔은 일부러 '다른 여자애들' 흉내를 내며 애교스럽게 굴었다. 주로 '나 이거 해 줘, 저거 갖고 싶어, 돌려 말해도 알아들어 줘' 식의 장난이었는데 이 또한 당시 만연한 개그 스타일이었다. 멋진 여성들이 주위에 많아질수록, 과거의 내 '장난'과 '농담'들이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됐다.
이제 더는 저런 농담을 할 수 없는 사회라고 하지만, 애초에 저런 농담이 웃기다고 정의된 사회에서 자라나야 했던 우리가 안쓰럽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저런 농담이 웃기다고 생각하며 그리워할 테다. 그래서 '개그 콘서트'가 부활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개그 콘서트'가 폐지된 후 수많은 코미디언들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고 이 중 '쉬케치'라는 채널을 즐겨 본다. 두 명의 여성 코미디언이 주축으로 이끌어가는 이 채널의 영상들은 다소 날것이고, 또 시끄럽다. 그렇기에 생그럽다. '개그 콘서트'에서는 두 사람을 단순히 누군가의 여자친구나 예쁘거나 못생긴 여자거나 날씬하거나 뚱뚱한 여자로 정의했던 것에 반해 그들이 그들의 이름을 내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니 그토록 재미있더라.
코미디언들이 모여 '전처럼 개그를 할 수 없다, 누군가는 그에 대한 갈증이 있고 그게 진짜 웃음이다'라고 말하는 영상을 보고 입맛이 썼다. 그랬기 때문에 '개그 콘서트' 부활이 반갑지 않았다. 그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이 그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을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도대체 '진짜 웃음'이 뭘까? 어딘가 딱 떨어지는 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계속해서 고민하고 변화해야만 조롱하지 않아야 할 대상에게 화살을 겨누는 짓을 그만둘 수 있다는 거다. 충분히 고민하고, 충분히 변화했는가? 이미 실패해버린 예전 공식을 그대로 따라서는 웃기 어렵다. 웃지 않는 대중에게 분노하는 대신 그 이유를 분석하고 고민하길 바란다.
우리는 여전히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불쾌하지만 않다면.
굳이 따지자면 이번 글은 논평이 되겠네요!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어요. 좋은 주말 되시길.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줄귤레터🍊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