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일어나!"
흔들어 깨우는 손에 겨우 눈을 뜨고 창 밖을 보니 온통 하얗다. 밤새 내린 눈으로 교정은 다른 장소처럼 탈바꿈한 상태. 룸메이트 홀리는 벌써부터 애가 닳는 몸짓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바지에 한쪽 다리를 집어 넣으려다 균형을 잃고 콩콩 뛰는 모습이 퍽 웃겨서 낄낄대다가 홀리의 지팡이로 꿀밤을 한 대 맞았다.
"웃지 말고 너도 얼른 준비하시지? 선물 보러가야지!"
"선물?"
부아가 치민 얼굴이었다가 선물을 생각하니 금세 표정이 풀어진 홀리가 잽싸게 바지를 입고 총천연색의 스웨터를 걸쳐입었다. 이제 겨우 일어나 앉은 나를 기다리기도 힘든 건지 '다녀 온다'는 말을 대충 던져 놓고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선물... 왔으려나?"
선물을 확인하러 휴게실로 내려가야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 비해 선물을 조금 받으면 솔직히, 조금 창피하고 서럽다. 작년까지만 해도 발치에 선물이 자동으로 배달되었다는데 안전 문제로 이제는 휴게실로 내려가 확인해야 한다. 이게 다, 짜증나는 위즐리 형제 때문이다. 그들이 발명한 '훔쳐보기 리본'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슬그머니 침대를 벗어나 본다. 호그와트에서 지낸지 벌써 1년이 다 되었지만 여전히 침대에서 내려왔을 때 바닥이 차갑지 않다는 사실이 낯설다. 조금만 뒤척거려도 삐걱거리던 철제 침대에 걸터앉아 잠결에 발이 신발 대신 대리석 바닥 위에 안착하면 단박에 뼈까지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몸이 시린 것보다도, 마음이 시린 게 가장 슬프고 억울했던 기억.
휴게실로 내려가니 호박색 조명 아래 몇 명이 행복하게 웃고 있다. 뭐가 저리 행복하고 좋을까? 아니면 내가 열 세 살 치고 너무 심각한 건가? 휴게실 중간 즈음 트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손짓하는 홀리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고 계단을 내려갔다.(홀리는 늘 저렇게 굳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앉는다. 난 구석이 좋은데) 홀리가 제 옆자리를 톡톡 치더니 내 이름이 적힌 박스를 가리킨다. 꼭 맞는 뚜껑이 덮여 있어 내가 열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내가 얼마나 인기가 없는 외로운 존재인지 알 수 없다.
"얼른 열어봐, 구독자 !!! 역시 크리스마스는 너무 좋아."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 오르골을 황홀하게 보던 홀리가 취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회전목마 위에 앉아 있던 작은 요정과 눈이 마주치자 요정은 내게 슬쩍 윙크하고 작은 날개로 날아올라 홀리의 손가락 위에 앉는다. 요정을 바라보는 홀리의 표정이 황홀하다.
"캐서린 이모님이 보내주셨어. 요정 너무 귀엽다! 아참, 새 깃펜 고마워. 마침 사려고 했는데! 색깔도 너무 딱이야!"
"응, 그래."
"얼른 열어 봐. 나도 선물 보냈어."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윙크를 하는 홀리. 보아하니 선물로 꽤나 장난을 친 모양이다. 남몰래 심호흡을 했다. 이젠 정말 열어야 할 때다. 뚜껑을 열고 상자 안을 보는데, 누군가 늘리기 마법을 써 두었는지 지나치게 길쭉한 선물의 끄트머리만 보인다.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둔탁한 나무 막대기를 쭉 꺼내니 상자의 바닥이 점점 올라와 정상적인 높이를 찾는다.
"빗자루잖아?!"
홀리가 먼저 헉, 하고 벌떡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른다.
"얼른 풀어 봐! 풀어 보라니까!"
얼떨떨한 얼굴로 포장을 푸니 짙은 갈색의 날렵한 빗자루가 보인다. '님부스 3000'이다. 빗자루에 깔려 있는 메모지를 끄집어내니 정갈한 필기체로 한 줄이 적혀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구독자
발신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어 잠시 고민하다가 빗자루를 들어 제대로 다시 보았다. 점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후견인이 보낸 게 분명했다. 입학한 뒤로 편지를 보내도 답장 한 번 없기에 나를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홀리가 다시 '헉'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뭐지? 홀리의 시선을 따라 뒤로 도니 어리고 새하얀 늑대가 보인다. 아니, 다시 보니 개다. 개는 명랑하고 올곧은 걸음걸이로 다가와 코끝으로 내 종아리를 쿡 찌른다. 마치 도장이라도 찍는 것처럼. 그리곤 잘 하지 않았냐는 듯 올려다보며 물고 있던 봉투를 들이민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 카드. 여전히 정갈한 필기체다. 이번엔 내용이 제법 길어서 마음에 들었다. 내 이름 위에 작게 그린 눈사람이 제 몸을 한 움큼 떼더니 그대로 내게 던진다. 그림이라 튀어나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움츠렸더니 눈사람에게 웃는 입이 생긴다. 나 또한 웃음이 번진다. 나의 후원자는 생각보다 유머 감각이 있는 것 같다.
구독자
두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은 네 충실한 친구가 될 로리.
로리는 한 번도 너를 본 적 없지만 너를 좋아할 거다.
가끔은 빗자루를 타고 지면을 박차고 멀리 날아가 봐라.
생각보다 세상은 작고, 너는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편지 잘 읽고 있다. 잘 지내라.
다시 한 번, 메리 크리스마스.
찡해진 코끝을 한 번 찡그리고 로리를 품에 안아 들었다. 쏙 안겨오는 순하고 따뜻한 부피감이 무척 든든했다. 다시 한 번 웃고 있는 눈사람을 봤다.
"메리 크리스마스."
처음으로,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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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크리스마스네요.
연말에 어울리는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키다리 아저씨>와 <해리포터>를 섞은 스타일로 한 번 써봤습니다.
참고로, 해리포터 세계관을 따라 쓴 것이며 볼드모트 사후의 평화로운, 해리포터 작품 이후 시간대를 가정하고 쓴 것이에요.
주인공이 13살인 이유는 미국식 나이를 한국식으로 올려 써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13살(원작 나이 11살), 1학년 신입생이에요.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부엉이가 물어다주는 입학통지서를 기다리셨겠죠?
(전 아직도 기다립니다..)
연말을 기다리며 두근대는 마음에 제 소설도 작게나마 따스한 온기가 되어드리길 바랍니다.
미리 인사드려요.
메리 크리스마스!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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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크리스마스에 읽고 싶어서 아끼던 줄귤레터! 한줄씩 한줄씩 크리스마스 선물을 열듯이 읽다가 심쿵!! 엘리는 오늘 아침 보내주신 빗자루 선물, 잘 받았습니다. 세상으로 탐험을 가고 싶을때마다 두려움으로 망설일때마다 쭈글쭈글해질때마다 빗자루를 꺼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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