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48. 여성인 당신은 행복합니까?

바로 어제(3.8)는 여성의 날이었죠! 특집 에세이!🍞🌹

2024.03.09 | 조회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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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귤처럼 까먹는 줄글을 보내드립니다.

Unsplash, Jacob owens
Unsplash, Jacob owens

2023.8.28.의 기록

새삼스레 당신의 행복을 묻는다.

언젠가부터 강박적으로 행복을 쫓지 않기로 약속했지만(행복 강박 때문에 생긴 새로운 강박인 듯 하다. 도대체가 강박의 늪은 벗어날 수가 없는 부분..) 그래도 가끔은 스스로에게 '나, 지금 행복한가?'를 묻는다. 몇 달 전까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요근래 공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덩달아 창작 욕구도 시들어서 글을 쓰지않고 몇 달을 그냥 흘려 보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직장을 가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대부분 내 이런 생각에 예민하다거나 그건 무슨 신종 자기연민이냐고 말하겠지만 나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정치적인 상태다. 고로 이후의 글은 무시하고 뒤로가기를 눌러도 된다. 나는 대개의 경우 상대를 불편하고 진지하게 만들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는 쏟지 않는 쪽으로 훈련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불편과 진지함을 무시하고 지적하는 경우들로 인해 상처를 받은 적이 많긴 한데 이제는 괜찮다. 너도 나도 틀린 게 아니고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 살면서 모든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나아가진 않잖아요... 넘 비효율적인 무빙이닉간.

내가 맨 처음 월급을 받으며 다닌 일자리는 한 도넛 판매 프랜차이즈였는데, 고용한 대표가 쓰레기였다. 굳이 포장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6시간 일을 시키며 밥을 챙겨주지 않는 건 기본이요 가끔 기분이 내킬 때 며칠 된 도넛을 식사 대용으로 제공했다.(ㅋㅋㅋㅋㅋㅋ) 또 핫 브레드 류는 인기가 없고 제조가 필요해 재료를 따로 보관하는데, 택갈이(?)를 하며 유통기한을 속여 사용했다.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꽃밭 그 자체였던 나를 함께 일하던 친구가 많이 이끌어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도 그런 곳에서 버텼구나 싶긴 하다.

이후로도 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는데, 카페, 편의점, 도서관, 출판사, 레스토랑, 핸드폰 권매사, 가전 권매사 등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그 덕에 0에 수렴하던 눈치와 사회성은 급격히 성장했으나 더이상 전처럼 맑고 행복한 쿼카 같은 인간이 될 수는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여러 계약직을 연신 이어서 했는데(죽일 놈의 소비 습관 때문에 쉬고 싶어도 쉬기 어려웠다.) 지금 겨우 한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해 1년 반이 되어가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지난한 지난 경력들은 나를 어디로 데려왔나, 생각해 보면 어느 조직이나 깊이 뿌리내린 가부장제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해주는 시간들이었다고도 정의할 수 있겠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가부장 알러지를 후천적으로 지니게 된 나로서는 당연히 그 어떤 직장에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현 직장 또한.......) 어차피 어딜 다니든 회사는 구린데 굳이 에너지를 들여 미워하는 나를 이해 못하는 시선을 자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발 디딘 직장이 너무 싫었다. 지금도 싫다.

계약직, 혹은 막내로 늘 일을 했다보니 손님이 올 때 무거운 엉덩이를 들썩여 손님에게 차나 음료를 대접하는 것이 당연했고 가장 어린 ^여직원^으로서 분위기를 맞춘다거나 과일 선물이 들어올 땐 과일을 깎아 내가는 등 전통적인 가족 관계 내에서 '어머니' 혹은 '며느리'들에게 강요되었던 역할이 내게 주어졌다. 지금 직장에서도 우스갯소리로 '깔깔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역시나 사실이다. 회사 내 직원 분들을 좋아하기에 수다를 떠는 데 부담은 덜하지만 여전히 며느리 역할을 해야하는 현실에는 늘 어이가 없다. 결혼할 생각도 없는데 선행학습 대박임. 필요없다닉간요?

 

 

Unsplash, Dulcey lima
Unsplash, Dulcey lima

직장 내 여성들은 대개 평가절하되고, '배려'라는 명목으로 중요한 일에서 배제된다. 남성에게는 굳이 시키지 않는 잔업들을 떠맡게 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린 아닌데?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 참 축하할 일이다. 잘 다녀라.) 전에는 남성들이 생수 물통을 갈아야 해서 역차별을 당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 아직 물통을 가는 정수기를 쓰는 우리 회사의 경우 남자 직원들이 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공교로운 타이밍이겠지만? 이처럼 여성들은 사회적 역할을 늘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노력하는데 우리 사회는 뭐 얼마나 달라지고 있나 싶다. 구성원 반절 이상이 여성으로 구성된 우리 회사는 비교적 여성이 다니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지만, 은은하게 묻어나는 여성혐오가 내가 입사하기 이전 어린 친구들의 속을 많이 썩였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많이 바뀌어서 여성들이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지만(이것을 말하는 건 대개 남성이거나 남성의 편인 여성이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우리 사회는 발전이 더디며, 여성 혐오는 친절한 가면을 쓰고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젊은 여성 노동자로 사는 하루하루는 상당히 고되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는 상태였다면 세 갑절은 고단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혼 여성들이 비혼 여성들에게 지나치게 이해를 강요하는 건 싫다. 그들은 매번 남편이 있어 든든하고 행복하다는 점을 역설하더니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인 듯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기혼 여성들은 늘 판에 박힌 듯 같은 말을 하는데, "속는 셈치고 결혼은 해라", "후회하더라도 (결혼)하고 후회해라" 라는 말들이 그것이다. 대체 왜???????????????????? 나는 아주 오래 그들의 그런 말들이 궁금했다. 늘 결혼 생활의 비참함에 대해 푸념하면서, 왜 자꾸 결혼을 권하는 건지? 그들이 나를 설득하는(?) 근거는 내게 전혀 메리트가 없는데도.(아이가 예쁨, 든든한 내 편이 생김 등)

이제 정상성의 삶을 거부하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그 어떤 설득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전에는 혼자 늙어 감이 두려웠는데, 어차피 관에는 혼자 들어가는 것이고 지금만 봐도 혼자 사는 삶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는 점에서 더더욱 결혼 제도는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은 가부장제를 떠받치는 든든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겨우 빠져나온 가부장제에 굳이? 내 발로? 걸어들어갈 생각은 없다. 우습게도 직장을 다니며 내 밥벌이를 하게 되자 더욱 그 생각이 견고해졌다. 여전히 내 주변에서는 모두가 연애를, 결혼을, 남친을, 남편을 권하고 있는데도!

나는 현재 행복하지 않다. 행복할 수 없다. 회사라는 체제의 여성 톱니바퀴가 된 이상 그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앞으로 내가 '진짜' 행복해질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강구할 수는 있겠지. 반드시 내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 쟁취해낼 예정이다. 이 세상의 모든 여성 직장인들이여, 건투를 빈다.

 

 

 

 

 

 

요즘 다시 글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이직한 직장이 바쁘기도 하구요.

대신 작년 8월, 아직 전 직장에 재직했을 당시 쓴 에세이로 이번 줄귤레터를 갈음합니다.

 

비록 하루 지났지만,

세계 여성의 날을 축하하며!

이 세상 모든 꿋꿋한 여성들의 멋짐을 응원합니다!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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