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안
내게 있어 불안은 기본적인 상태다. 때로는 편안하기도, 성가시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언젠가부터 불안은 나와 함께 있었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11살 때 쯤부터 불안이란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사랑했던 누군가와 이별했고, 버림 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후로 내겐 긴장과 초조함이 생겨났고, 사춘기가 되어서는 더 심해졌다.
불안을 인정하게 된 건, 얼마되지 않았다. 20대 후반부터 나는 내 안에 응어리진 불안을 처음으로 응시했고,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도를 했다. 나는 이제 불안이 완전히 없어지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안다.
가끔 불안이 커질 때도 있지만, 호흡을 크게 하거나 글을 쓰면 이내 가라앉으리라는 것도 잘 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렇게 지혜를 터득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향해 나아가는 일. 불안도 두려움도 더 이상 회피하지 않는 일. 그렇게 나는 조금씩 단단해져가고 있다.
아무 이유 없이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날 때면 '아. 내가 뭔가 나다운 하루를 보내지 못했구나.'한다. 그러나 전처럼 자책하고 후회만 하지는 않는다. 나는 또 내일 나답고 새로운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낼 것이니까! 그렇게 나를 믿어주면 된다. 믿고, 사랑해주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불안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멀어져 있다. 불안이란 그런 것.
2. 친구
친구란 시기와 환경에 따라 나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천천히 따스해지고 편안해지는 이가 아닐까 싶다. 또는 그 혹은 그녀를 떠올릴 때 상대방의 온전한 행복만을 바라게 되는 이. 그러나 쾌락 또는 환경만으로 맺어진 이는 시시각각 마음이 달라지노니. 미웠다가 사그라들었다가, 결국에는 모든 노력을 놓게되는 이는 진정한 친구라 일컫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내게 진정한 친구란 예전에만 해도 '오래된 친구'만을 뜻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 만으로 진한 우정을 유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가, 완전히 멀어질까 두렵다가, 상대방에게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가, 마지막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만이 남겨져 있었다.
이해, 존중, 희생을 오랫동안 나눌 수 있는 이는 소수 밖에 남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관계의 집착을 놓지 못하는 어리석은 한 인간이다. 내 곁을 지켜 준 진실한 인연들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못내 아쉽다. 우정의 구슬을 더욱 다채롭고 단단하게 만들어갈 이는 누구인가. 이미 깨져버린 구슬들이 내 안에 수두룩하다. 남은 구슬의 파편들은 여전히 나를 찌르고, 아프게 만든다. 그러나 깨진 구슬들 사이,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 같은 구슬 몇 개가 내 삶을 지탱해준다. 굳건하고 단단하게. 오래토록.
3. 인간의 하극상
오래되고 낡은 점집 앞.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담벼락 옆에는 온갖 음식물 쓰레기와 각종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그것들은 종종 바람에 휘날리거나, 심각한 악취를 풍긴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나가며 코를 막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등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이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거나, 버려진 박스를 무자비하게 찢어 부채처럼 쓴다. 찢은 조각을 자랑스럽게 얼굴 쪽으로 올려 마구 부쳐댄다. 마치 자신이 만든 창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보고 하극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4-50대로 보이는 표정이 없는 여자가 수레에 잔뜩 폐지를 싣고 지나간다.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길에서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폐지를 줍고 있다. 수레를 끌던 여자는 쏜살같이 달려가 할머니 손에 들려있던 폐지를 빼앗는다. 할머니는 고래고래 소리를 쳐보지만, 이미 수레와 여자는 저 멀리로 도망치고 난 후였다.
인간의 하극상이란 폐지를 줍거나, 박스 조각으로 부채를 부치는 행위가 아니다. 약자의 것을 갈취하고 쟁탈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하찮은 삶을 산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살다 죽음 앞에 섰을 때, 그 여자의 수레 안에는 폐지보다 더한 오물로 가득 찼으리라. 수레의 이름은 인생.
4. 무리해서 다정한 것
무리한 다정함. 내 마음을 다칠 줄 알면서도 퍼주기를 멈추지 않으며, 끊임없이 챙겨주고 싶어하는 강박같은 마음. 그 마음에서 나는 숨겨진 '애정결핍'을 발견한다. 채워도 채워도 자꾸만 비는 사랑에 목마른 나는 사랑에 대한 갈증으로 타오르는 가슴을 어쩔 줄 모른다. 자신 외에 그곳을 메워줄 이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할 줄을 모른다. 끊임없는 사랑을 갈구하며 지쳐서 고꾸라질 때까지 반복한다. 그런 나를 아무도 안쓰럽게 보는 이는 없다. 나는 나만이 가엾게 여길 뿐이다. 타인들은 이런 나를 보며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뉜다. 하나는 무리한 다정함을 '당연한 사랑'으로 느낀다는 것이고, 하나는 '왜 저렇게까지 하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미워하고 죽을듯이 혐오하는 것보다 나는 무리해서 다정한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내가 한 행동 혹은 언어는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기 마련이므로. 무조건적인 미움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되돌아오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덜 무리해서, 내가 너무 피폐해질 정도가 아니라면 다정함을 베푸는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도. 그건 그들의 방식과 생각일 뿐이다.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할 것이다. 내 마음은 누구보다 나의 방향을 잘 알고 있기에.
5. 식물
우리 집에 식물 식구가 더 늘었다. 처음에는 '짐'이라고만 생각해서 들여오는 걸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랬나 싶다. 식물은 있을 때는 그냥 당연한 장식품처럼 느껴지다가도, 없으면 꽤 큰 공허감을 선사하는 생명체다. 우리 집에 이제는 식물이 하나라도 없는 장면은 상상할 수가 없다.
어릴 적에는 나무나 꽃을 향해 직접 인사를 건네거나, 말을 거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행동을 하는 게 너무 어색해져 버렸다. 살아오면서 쌓여 온 후회나 분노, 억울함, 무기력함, 불안과 같은 것들이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가로막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식물에게 다시 말을 걸고, 예뻐해주기로 마음 먹는다. 딱히 그렇다 할 이유는 없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으니까. 그리고 말을 건네는 편이 내 마음을 더 밝고 편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아니까.
내 책상 위에는 꽃시장에서 데려 온 장미허브와 남편이 선물한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한 이파리를 가진 식물이 있다. 이름을 분명 지어줘놓고 까먹은 나는 여전히 진정한 식물 집사가 되기는 그른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확실히 식물에게 애정이 깃드는 건 사실이다. 아무 말없이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기분이 든다. 식물은 어느새 내게 책과 요가 같은 것들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나의 삶 한 부분에 자리 잡아 오래토록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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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무리하는 다정함, 공감 가고 좋네요.!
작가자까이자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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