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높고 푸른 하늘, 굽이치는 새하얀 파도와 검은 몽돌이 펼쳐진 해변. 수많은 자동차와 배가 만들어지는 곳. 서울보다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인구 100만의 도시. 북적이지 않는 한가로운 도시이자 논과 밭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울산'이다.
울산에 살면서 딱히 불평할만한 것도 없었으나, 그렇게 좋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울 명동에 발을 딛게 되었고 화려하고 북적이는 모습에 이끌린 나는 반드시 서울로 가리라 결심하게 되었다. 정확히 올해가 서울'인'으로 산지 12년째다.
고향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면 극심한 그리움을 느끼다가도, 막상 고향에 가면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올라온다. 부모님과 친구들을 만나서 행복한 기분을 느끼다가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야 마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본다. 왜 고향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지, 왜 그토록 그리움을 느끼는 것인가에 관하여.
내 유년기는 사실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은 덕분인지 지금 겪는 일들은 사실 상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오히려 그점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으나, 고향에 가면 종종 불행했던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그 뿐 아니라 나의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의 모습이 내게는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그때는 정말로 감정적인데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많이 받기도 했다. 거기다 나 자신을 위한 관리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고향에 살던 나는 그 누구보다 남탓을 많이 했고, 시기와 질투에 절여져 있었으며 투정부리는데 익숙한 한 인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나는 고향에만 가면 과거의 부족한 내가 떠오르면서 한순간 주눅이 든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더 과장된 유쾌함으로 타인과 스스로를 속이려 든다.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그 마음은 고향을 완전히 사랑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고, 현재 '나'를 만든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려고만 한다. 떠올리는 것 자체가 두렵고 힘들어서, 내가 겪어온 모든 사실과 기억을 회피하려고만 드는 것이다. 사실은 고향이 싫은 게 아니라 고향에 살던 과거의 '나'가 싫었음을 고백한다. 나약하고 비틀린 한 인간상을 마주하기 싫은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가 있었기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올 때면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과 허탈함, 혹은 쓸쓸한 감정들이 나를 감싼다. 그 감정은 나이가 들수록 옅어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여전한 걸 보니 완전히 사라지는데는 얼마 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나는 과거의 나를 싫어하고 회피하지만, 실은 그 아이를 누구보다 걱정하며, 연민의 마음으로 본다. 과거와 현재는 어쩔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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