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콩행 비행기에서 만난 옆좌석 형제

너희 한국을 제대로 즐기고 왔구나

2022.09.04 | 조회 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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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비행기 타

100명의 외국인 친구들을 (간접) 경험하게 해드립니다.

홍콩행 비행기를 타던 그 날 밤이었다. 나는 창가 좌석에 앉았다. 

내 뒤로 사람이 계속 들어오는 걸 구경했다. 허리춤에 찬 힙백을 느끼며 나는 긴장해있었다. 힙백에는 여권과 100만원의 홍콩 달러가 있었다. 오로지 내가 지켜야 하는 것들이었다. 현금과 여권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나자신을 책임진다는 게 한층 더 현실로 느껴졌다. 

내 옆 자리는 두 좌석이나 비어있었다. 곧, 그 자리에는 정승같이 큰 두 명의 형제가 앉았다. 

일단 나는 그 친구들을 보며 긴장이 풀렸다. 밤에 하는 비행인데다가 안 그래도 긴장해 있는 나였지만. 그 친구들은 너무 해맑고 설레보였다. 그리고, 손에 쥔 투명 파일과 각종 서류들이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나만 바리바리 비자, 호텔서류, 학교 합격서류 가져온 거 아니구나 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며 설레는 건 엄마아빠랑 하는 여행 한정이었다. 그러나, 그 옆좌석 형제 덕분에 나는 한층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곧 드는 생각은 말을 걸어봐야 하나 라는 생각이었다. 이 에세이를 쓰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었다. 힐긋 옆을 쳐다봤다. 바로 제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옆좌석 승객들은 너무 키가 컸다. 그렇다고 키가 작으면 친해질 수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반전이었던 친구들은 두번째도 반전이었다. 두 명이 비슷하게 생긴 얼굴이었는데, 손목에 비즈 팔찌가 있던 것이다. 속으로 너무 귀여워했다. 저렇게 큰 내 또래 남자애들이 비즈 팔찌를 찼다. 너네는 참 반전이 많구나. 그랬는데, 뭔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한글 모음과 자음이 써져있는 비즈들이 주르륵 팔찌에 자리잡은 것이었다. 그 순간 바로 알았다. 저건 자기 이름이구나. 한글 이름으로 팔찌를 만들었네. 놀랐다. 너네 한국에 놀러왔었어? 너희 한국을 제대로 즐기고 왔구나. 나는 속으로 뿌듯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난 스스로 깨달았다. 비행기에 들리는 승무원의 한국말이 날 깨웠다. 

맞다. 난 한국에 있다. 몇 분이면 곧 떠날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면 이 사람들도 다 한국에서 가는 것이겠구나. 난 비행기만 탔다고 이미 마음이 외국인의 마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비행을 하는 동안은 난 자국민이었다. 그리고 그 이득을 톡톡히 누렸다. 비행기가 또 연착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게 옆 형제와 말을 트게 되는 계기였다. 대뜸 옆에서 영어로 내게 물어봤다. 

비행기 연착된 거야? 그때는 비행기 기장님이 한국말로 공지를 했던 때였다. 분명 영어로도 한 것 같은데. 일단 질문이 들어오길래 나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나도 몰라. 그 뒤로 나는 조금 벙쪘다. 일단, 첫마디는 "안녕, 미안한데." 로 시작되는 게 보통 아냐? 마스크 뒤로 벌게진 얼굴을 했다. 그러나 여러 번 화장실을 가게 되며 그런 마음은 싹 사라졌다. 4시간의 비행 동안 옆 자리 사람들을 지나가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들의 다리가 너무 길었다. 내 다리에 비해 한참 길었다. 내 무릎은 앞 좌석에 닿지도 않았다. 그러나 옆을 스윽 보면 형제는 다리로 또 다른 문을 만드는 듯 했다. 그들을 지나서 화장실로 가는 건 내게 꽤 앞이 캄캄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내가 화장실을 가도록 비켜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일을 4시간 동안 세 번 정도 할 줄도 몰랐다. 되게 미안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는 밥을 서로에게 전달하고, 내가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하며 약간 익숙해졌다. 그리고 비행기가 거의 홍콩에 도착한 때였다. 

어쩌다가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자, 질문이 내게로 쏟아졌다. 나는 놀랐다. 

너희가 나를 궁금해 한다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내리기 10분 전에 이렇게 질문이 쏟아진다니. 

홍콩 왜 가냐. 학생이냐. 어디 학교냐. 무슨 학과냐. 혼자 가냐. 

이런 질문들에 나는 차근 차근 대답했다.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앞 좌석에 있던 한국 학생은 그 이야기를 듣고 나를 알게 되었단다. 이걸 들으면 알 수 있다. 그 형제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고, 그 목소리가 꽤나 컸다는 걸. 아니, 우리의 목소리는 꽤나 컸다.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을 향해서 모순되지만 최대한을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질문을 했다. 

너희 한국은 여행 온 거야?

그러자 둘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팔찌를 수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한명이 말했다. 사실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한국을 지나 홍콩으로 온 것 같았다. 중간에 한국에 들린 것 뿐인 것 같았다. 그 와중에 팔찌를 만들었구나. 웃으며 나는 너네 팔찌 멋있다고 칭찬했다. 둘은 역시나 이건 자기 이름이라며 들떠있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형제가 쓰는 언어였다. 저건 분명 광둥어가 아니었다.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홍콩 공항에 도착하고 다른 광둥어 사용자를 보니 더 확실해졌다. 대체 그들이 쓰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언어가 궁금해서 국적을 물어봤지만, 홍콩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소리는 광둥어가 아니었는데. 정말 아니었는데.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

홍콩에 도착하기도 전에 비행기에서 첫번째 친구를 만났다. 전화번호도 없어, 인스타그램도 없어서 머쓱하게 헤어졌다. 그러나, 처음 만난 친구들은 꽤 재밌었다. 얼어있던 나를 녹여준 첫번째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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