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동 세탁기 앞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친구

신입생은 아무것도 몰라요 너도? 야 나두

2022.09.05 | 조회 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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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비행기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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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친구를 만난 장소는 기숙사 꼭대기층 세탁실이었다. 

그때쯤 나는 홍콩 격리를 마치고, 기숙사로 입실했던 때였다. 홍콩의 더위에 지쳐 늘어져 있고는 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기웃기웃 생활을 챙기고 있었다. 예를 들면, 장을 보고 온다던지 아니면 세탁을 하려고 찾아본다던지.

세탁실이 꼭대기층에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호텔에서 빨지 못한 옷가지들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세제도 안 들고 가고, 세탁기를 어떻게 돌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보아하니 그렇게 모든 게 처음인 사람은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쟤도 우물쭈물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예전 같았으면 먼저 말을 걸고, 통성명을 했을텐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서로가 다 처음이라는 것을 마음으로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홍콩 더위에 지쳐서 그냥 가만히 두고 보았다. 

그 여자 아이는 내 또래처럼 보였다. 당돌한 분위기에 동양인처럼 생겼다. 내 말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아니면 동남아시아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그 아이가 하는 걸 보고 있었다. 왜 나는 그렇게 보고만 있었냐 하면, 이미 나는 그 아이처럼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는 걸 40분 전에 마쳤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를 세탁실에서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세탁기를 돌리고 다시 건조시키려고 올라왔었다. 

1분 차이로도 쌍둥이 사이에서는 형과 아우가 정해지는 마당에, 40분 세탁실 선배였기에 나는 조금만 보다가 도와줄 생각이었다. 진심으로 말이다. 그랬는데 귓가에 당당하고 힘찬 말투가 들렸다. 

이거 어떻게 하는 지 알아?

나는 은은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나도 신입생이야. 

일단 속으로 기뻤다. 네 눈에 내가 약간은 더 능숙하고 경험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에 들떴다. 그건 내가 가장 되고 싶고 바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 둘을 친하게 만든 건 서로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이라는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대화의 물꼬는 빠르게 터졌다. 

일단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이 아닌 곳에서 다른 이를 만난다는 건 물어볼 질문이 하나 더 는다는 것과 같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바로 이 질문이 불가피하게 나온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한 질문을 목구멍에서 삼킨다. 한국에서 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이를 물어보는 건 괜히 신경쓰인다. 이건 사실 역발상이긴 하다. 나이를 너무 당연히 물어봐서, 혹시나 상대방이 그걸 불편해할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기 때문이다. 

신입생인 걸 확인하고 그 친구는 편안하게 웃었다. 웃는 모습이 굉장히 예뻤다. 일단 당당한 말투와 태도. 도움을 요청하는 중심잡힌 모습. 그런 성격이 내가 갖고 싶은 모습이었다. 

맨날 하는 질문으로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인도네시아라고 친구가 말했다.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많이 이 학교에 온다더니 맞구만.

무슨 학과냐. 몇 살이냐. 어디서 왔냐. 여러 당연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왜 이 학교에 왔는지 대화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뜻밖에 이야기를 꺼냈다. 약간 아쉬운 얼굴이었지만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다. 우리는 둘 다 신입생으로 왔지만 아직도 다른 기회들이 아까운 사람들이었다. 영국인가 캐나다인가 거기서 들어본 유명한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고 한다. 왜 못 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다들 그렇듯 학비나 장학금 때문에 그랬겠지. 

나는 곧바로 내 이야기를 꺼냈다. 꺼내기 너무 좋은 타이밍이었다. 왜냐면 나는 홍콩에 있지만 마음이 홍콩에 있질 않았다. 축약해서 내 상황을 설명했다. 나도 진짜 어쩌다가 홍콩에 왔다고. 

정말 많은 점이 공통점에 있었다. 나는 더 반갑게 "홍콩은 혼자 온 거야?" 라고 물었다. 그리고 내 표정은 살짝 굳었다. 왜냐면 그 아이는 나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신입생에, 외국인이고, 학교도 고민하다가 왔지만 그 친구는 부모님과 함께 홍콩에 왔다고 했다. 그 한마디가 왜 그렇게 상처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혼자인데 너는 그렇지 않구나. 나는 다 처음이고 힘든데 너는 기댈 구석이 있구나 하며 열등감이 폭발했다. 

그리고 다른 인도네시아 친구가 세탁실로 왔다.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했다. 오랜만에 외향성 E 성향이 돌아와서 활발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마음이 차지가 않았다. 훅 가까워진 만큼 다른 점 하나에 한번에 마음이 토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로부터 받은 가벼운 호의는 즐거웠다. 왓츠앱을 다운받고, 그 아이의 전화번호를 받으며 나는 느꼈다. 그래. 진짜 이제 학교가 시작되는구나. 

한국은 카카오톡, 중국은 위챗, 홍콩은 왓츠앱. 

이렇게 메신저앱이 바뀌면서 실감이 난다. 정말 나는 홍콩에 왔다는 게.

 

 

 

#알아두면 좋은 것

나의 친구의 기준은 이것이다.

1. 서로 눈을 마주보고 대화를 했을 것.

2. 서로 통성명을 했을 것. 

굉장히 미흡한 기준이긴 한데, 이게 내 기준이라 어쩔 수 없다. 가벼운 사이에서 오는 기쁨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사람들도 친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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