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군에는 항공우세 개념이 없습니다. 다만 구소련 시절 해상전에 적용되었던 A2/AD 즉 접근거부전략은 존재합니다. 러시아 공군에게 제공권이라는 개념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과는 그 궤가 완벽하게 다릅니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항공우세에 기반한 제공권 개념은, 모든 전역 내의 작전지역 내에서 공중우세를 기반으로 적의 항공 세력을 제압하고 지상군의 작전을 지원해주는 역할이 강하지만 러시아의 제공권 개념은 '공중거부' 를 기반으로 하여 작전 구역 내의 적 항공 전력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에 기반을 둡니다.
즉 항공전력으로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게 절대적으로 열세하다보니, 항공력 투사를 방해하고 지상군의 방공지원을 받으며 '일단 존재하는' 항공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주력합니다. 얼핏 들으면 연못 안의 함대 전략과 매우 유사한, 공군판 현존함대 전략이기도 합니다.
굉장히 방어적인 측면이 강한데, 이는 미 공군 등의 공중우세에 맞서서 러시아 공군이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적의 공중우세 하에서 일단 살아남기만 한다면, 일단 공중거부전략이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견 장점도 있습니다. 공중우세전략에 기반한 공군은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하면 매우 곤란해지지만, 공중거부전략은 전술기체들이 피해를 입을지언정 숨쉬고 살아만 있어도 성공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기지 못하면 지는 군대와, 지지만 않아도 되는 군대의 차이로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공중거부전략은 공중우세전략으로부터 버틸 수 있을지언정, 승리를 가져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뿐만이 아닙니다. 공중우세전략과는 달리, 공중거부전략은 전력 누수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가 없습니다.
공중우세전략을 펼치는 적을 상대로, 자기가 공세 주도권을 잡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히는데, 개전 초기 러시아 공군이 상당한 손실을 입었던 것도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그동안 공중거부전략을 고수해오던 러시아 공군이, 시리아 등 방공전력이 약한 지역에서 무유도 항공폭탄 투하 등 짧은 경험만을 가진 채 우크라이나 전역 상공에 들어선 것 자체가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공중거부전략을 고수하는 공군의 문제점은, 전투기와 전폭기, 폭격기와 조기경보기 및 전자전기 등으로 구성된 2~40기 가량의 스트라이크 패키지 운용을 거의 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며, 당연하게도 전구 단위의 규모 있는 항공력 운용 자체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차피 적 항공기는 전투기가 아니라 방공망이 상대해주니까요. 문제는 러시아 공군이 맞선 우크라이나 공군은, 거의 미러전이라고 해도 무방한 상대였다는 점입니다. 우크라이나 공군 역시 항공거부전략을 고수하고 있었고, 자국군 방공망 내에서 주로 전술기들을 출격시켜 상대의 항공전력을 갉아먹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문제는 러시아 공군이 이러한 항공거부전략을 쓰는 적을 상대로, 항공우세전략을 통해 박살낼 수 있느냐가 문제였는데...항공기 요격, 미사일 방어, 미사일 타격 등에만 집중하던 러시아 공군이 적 방공망 제압과 지휘통제시설 파괴, 공군시설 폭격 등 기존에 수행해보지도, 운영해보지도 않은 전략을 써야하다보니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기 동원한 75~80기의 전술기들은 개전 1주일 내로 전체 전력의 6%의 손실을 입었고, 미사일 등 지대공 및 공대공 전투 과정에서 입은 손실을 추산한다면 15~20%까지 초기 가용 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3월부터 부랴부랴 미국 및 NATO와의 대결을 위하여 후방에 전개해둔 전술기 200기를 동원해 나섰을 때는 이미 늦었죠.
애초에 항공우세전략을 써본 적도 없는 공군이, 자기들과 똑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공군을 상대로 무얼 할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전쟁의 장기화에 일조를 한 셈이며, 더 나아가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의 교리 연구 및 발전이 더욱 뛰어나다는 점으로도 이어집니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1991년 걸프전을 거치면서 공지 전투 개념을 실증하였으며, 이 때 성공을 기반으로 최근에는 공해전 및 다영역작전, 합동작전접근개념, 전영역작전 등으로 작전개념을 계속해서 발전시켜왔습니다. 또한 이에 맞는 공대지/공대공 정밀타격장비 등을 수요에 맞춰서 개발도 해왔습니다.
결국 러시아 공군의 실패는 단시간 내에 벌어진 사건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차곡차곡 쌓여온 개념의 문제와 공군의 질적인 하락, 시대의 조류에 거스른 방만한 운영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문제이며 그만큼 우리 역시 많은 것을 배우고 고쳐야 할 시간일 것입니다.
출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공중우세의 재고찰, 김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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