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군은 신뢰할 만한 전투력이 없다. 그저 해외 판매를 위해 보여주기식 광고용으로 쓸 뿐이다.'
이건 2018년 러시아 공군의 현실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논조가 강한 지적이었는데, 꽤나 신랄한 비판임.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국내외의 많은 매니아나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항공력에 대해서 상당히 고평가를 해왔고, 2022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러시아가 압도적인 항공력으로 전역을 종결할 것이라는 예측이 다수였음.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는 달랐고, 러시아 공군은 압도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매우 쩔쩔메고 있는 상황임.
이에 대해서 KIDA에서 나온 우크라이나 전쟁 항공전 관련한 흥미로운 자료를 올해 초에 내놓았음. 이 자료의 재밌는 부분 중에 하나는, 러시아 공군은 어떠한 전쟁에서도 전략적인 항공작전을 구상하거나 실행한 적이 없으며 이에 따라 대규모 항공작전을 전혀 수행한 적이 없었다는 점임.
미국의 경우 베트남 전쟁 당시 항공력 운영의 실패를 교훈 삼아 1991년 걸프전에서부터 각 군을 통합한 항공작전 계획을 수립하여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이것을 발판으로 아프간전과 이라크 전에서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하였음.
그러나 러시아는 1990년대 2차례에 걸친 체첸전쟁과 2008년 조지아 전쟁, 2015년 시리아 내전에서 찔끔찔끔 공군을 운용하는 정도에 불과했으며, 6기 이상의 스트라이크 패키지는 개념만 있을 뿐 실전은 커녕 훈련에서조차 시도하지 않아본 것이었음.
그렇기에 러시아 공군은 2022년 전쟁 시작부터 6기 이상의 공격 편대군 임무는 전혀 수행하지 못했고, 75% 이상의 작전에서 전술기 단독으로 공습을 가하거나 공대공 전투를 치르는 것에 국한되었음.
즉 20~30기 가량의 공격 편대군을 구성하여 전술기+공격기+호위기+전자전기+통제기 등 다양한 기종과 임무들이 부여된 고난이도의 임무 자체를 그 누구도 수행해보지 못했다는 점임. 물론 개념이야 존재한다지만.
이러한 문제는 교육 및 훈련의 미비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는 부분임. 러시아 공군의 연간 비행시간은 연간 100시간 미만이며 1990년대에 비해서 2배 가량 늘어난 수준이지만 여전히 부족함. NATO 국가들의 평균 비행시간은 연간 180~240시간으로 러시아 공군의 2배를 넘어서는 것임.
구소련 붕괴 이후 베테랑 조종사들 대부분이 공군을 떠나버렸고, 경제력이 점차 개선될 수록 더 많은 조종사가 높은 급여와 좋은 근무 여건을 위하여 민간 항공사로 대거 떠나면서 러시아 공군에는 숙련된 조종사 수요가 매우 부족해졌음.
그러다보니 이러한 질적인 부족을 채우기 위하여 러시아는 양적인 팽창을 꾀함. 여러 곳에 고등비행학교를 세워 대량의 젊은 조종사들을 양성했지만, 이는 질적인 개선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단순히 양적인 팽창이었기에 방만한 공군 운용이 지적되었음.
보통 쓸만한 조종사 양성에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도 볼 수 있지만 러시아 공군은 양적인 팽창에 급급하다보니 훈련 프로그램이나 조종사 양성 커리큘럼이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음.
질떨어지는 조종사의 기량은 필연적으로 위에서 지적한 대규모 항공작전의 수행을 방해하였음. 여기에는 조금 지엽적이지만 질적인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 중에 하나가 존재했음. 그것은 신형 고등훈련기 YAK-130의 생산과 인수가 러시아 군 내에 만연한 비리로 인하여 도입이 늦어졌기 때문임.
노후화된 L-39 고등훈련기를 대체할 만한 신형 고등훈련기 소요는 이미 1980년대 말부터 제기되었음. 소련 붕괴 이후 국가적 혼란과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1996년부터 초도비행에 들어갔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실질적인 생산은 2010년에 시작되었음. 그나마도 해당 훈련기에 공급될 엔진이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는 제품인지라 추가 생산은 어려운 실정임.
이러다보니 러시아 공군의 질적인 하락은 점차 가속화되어 갔음. 훈련량이 부족하다보니 장거리 임무 및 장시간 작전이 제한되고 고등훈련기 인도가 늦어지면서 신형 기체를 운용할 수 있는 경험이 부족하여 자주 사고를 터뜨리는 일이 잧아진 셈임.
당연한 소리지만, 이러한 문제는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하나씩 터지고 있음. 특히 개전 초기부터 이어진 항공작전에서 러시아 공군은 우크라이나 공군에 비하여 15:2로 수적 우세를 보였고, 당연하게도 전술기체의 성능상 우위도 누리고 있었음.
우크라이나 공군이라고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노후화된 공군 기체 문제로 연간 훈련시간은 50시만 미만까지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임. 그럼에도 러시아 공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질적으로 수준 떨어지는 조종사 기량 때문임.
훈련량이 떨어지다보니 전투기의 AESA 레이더 및 공대공 미사일 투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뿐더러, 특유의 기동력으로 근접전, 즉 도그파이팅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을 믿고 수적 열세인 우크라이나 공군 전술기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음.
문제는 우크라이나 공군은 독립 이래로 NATO 및 미국과 정기적으로 훈련을 받기도 했고, 돈바스 전쟁을 계기로 아예 항공작전까지 같이 뛰어보면서 나름대로 서방에 가까운 교리를 이식하였는데, 이거에 러시아 공군이 제대로 대응하지를 못했음.
BVR 시도도 없이 도그파이팅을 위해 달려드는 러시아 공군을 상대로, 우크라이나 공군은 아웃레인지에서부터 BVR 교전을 시도하며 수적으로 우세한 러시아 공군을 차근차근 내쫓기 시작했음. 결국 러시아 공군은 접근은 커녕 두들겨 맞으면서 국지적 항공우세조차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음.
물론 러시아가 너무 낙관적으로 접근한 면도 있었음. 개전 초기 80기의 전술기 소티를 할당하면서, 1~3회 정도 출격하면 알아서 붕괴할 것이라고 봤다는 것임. 그러나 생각 이상의 저항은 격렬했고, 전자전으로 침묵한 줄 알았던 방공망이 살아남으면서 예상된 수순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도 패인임.
그나마 작년 말부터 MiG-31 가져와서 BVR 비슷하게라도 시도하는 것이지, 그 전까지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던 것이 현실임. 개전 초기 할당된 80기의 전술기 소티로도 절절메자, 러시아 공군은 당초 NATO와의 확전 가능성에 대비하여 예비로 빼둔 항공전력까지 투사하기 시작했음.
2022년 봄, 러시아 공군은 전술기 소티를 200기까지 늘리며(폭격기, 헬리본을 합치면 600여 기) 우크라이나 공군을 제거하고 항공 우세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음. 이는 러시아 공군 전력의 60% 이상에 달하는 전력이었음에도 말임.
오히려 미국처럼 대규모 스트라이크 패키지 운영해본 적도 없고, 전구 단위의 항공 작전 경험도 없어서 마구잡이식 전술기 운용이 이루어지다가 피해만 입는 상황이 전개된 것임. 또한 정밀타격장비가 없어서 무리하게 저고도에서 무유도폭탄을 투하하다가 맨패드 등에 손실을 입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1980년대 이란 공군보다도 못한 실정이 2023년의 러시아 공군의 현 주소임. 이란 공군조차도 스트라이크 패키지 운용 경험이 존재하고, 적진 종심 깊숙히까지 들어가서 타격작전을 해봤기 때문임.
결과적으로 러시아 공군의 실패는, 정말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임. 교육 및 훈련을 중시하기보다는,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전술기 성능과 양적인 팽창에 전념하면서 벌어진 사태라는 것임. 우리에게도 주는 시사점이 많은데, 단순히 장비의 물량과 성능만으로는 전투력을 끌어낼 수 없음.
무기라는 것은 단순한 기계가 아닐 뿐더러, 그 안에는 해당 국가의 교리와 사상 등이 복합적으로 담겨있는 정수 그 자체임. 이것을 제대로 연구하면서 효율을 극대화해야 비로소 전투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임.
러시아 공군은 그러한 점에서 실패했고, 중국 공군도 이러한 점에서 충격을 받아 독일이나 영국에서 퇴역한 전투기 조종사들을 고액으로 스카우트해서 자국 공군을 가르치려고 시도하는 것임.
결국 글의 첫 번째에서 시작한 비아냥 가득한 지적이 러시아 공군의 문제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함.
'러시아 공군은 신뢰할 만한 전투력이 없다. 그저 해외 판매를 위해 보여주기식 광고용으로 쓸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지적도 가능함.
'러시아의 ‘부패’ 는 체계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체계로 당연시 여겨지기 때문이다.'
뭐 이건 러시아 공군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 자체 및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지적이기는 하지만.
출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공중우세의 재고찰. 김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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