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 뜨개방의 현상소

세 번째 이야기. 인스타그램 ‘저장됨’ 폴더에 있는 것들

2022.10.02 | 조회 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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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방의 이모저모

실 말고도 뜰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많더라구요. S와 J가 매주 글을 뜹니다.

J.

무엇을 저장하고 무엇을 지나칠 것인가는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중 내 옆에 붙들어 두고 싶은 사람이 있듯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건져내어 옆에 두고 싶은 것들.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면 하는 것들. 대개 우리는 그것을 영감이라고 부른다. 글, 사진, 영화, 책, 음악 등 여러 카테고리 중 오늘은 이미지, 정확히는 인스타그램에 나만 볼 수 있게 저장해둔 것들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해보고자 한다.

인스타그램에는 ‘저장’ 아이콘이 있다. 말 그대로 마음에 드는 포스트를 저장해두고 추후 꺼내볼 수 있는 기능이다. 아주 유용한 기능으로 보이지만, 핸드폰 사진첩 관리조차 쉽지 않은 나에게 이 기능은 마치 일단 원하는 건 다 담아둔 장바구니 같았다. 마음에 들어 쌓아는 두었지만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몰라 방치해두었던 날들. 포스트들을 이 기회에 정리해보자 싶었다. 사진들을 크게 세 카테고리로 나누었다.

  • 가구 / 인테리어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비율로 따지자면 안과 밖이 70:30 정도로. 나에게 집은 가장 편안한 공간이자 게으름의 공간인 동시에 실험실이자 부지런의 장이기도 하다. 드러누워 있다가 일을 하다가 옷도 만들어보다 책을 읽기도 하는. 그래서 마냥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보다는 좀 재밌고 실용적이기도 한 그런 인테리어를 좋아한다. 다방면에서 미니멀함 제로, 확실한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편인데 가구 취향도 아니나 다를까 따라간다. 모아보니 컬러풀하고 장식적인 것들이 많았다.

 

  • 패션

옷을 맛있고 재밌게 입은 사람들을 보면 즐겁다. 브랜드들에서 시즌마다 새롭게 내보이는 옷들을 보는 일도 물론 재밌지만, 나는 새 옷이든 아니든 그 옷 원래의 쓰임을 살짝 비틀어 입는 스타일이 좋다. 예를 들면 포멀한 자켓에 트레이닝 쇼츠에 플립플랍이라든지. 드레스에 정말 투박한 신발에 양말이라든지. 자기 멋대로 입는 사람들을 보는 만족감은 분명 크다. 재작년부터 즐겁게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몇 있다. @blancamiro @leandramcohen @prosenkilde 이들에게서 받는 자연스럽고 활기찬 에너지가 난 너무 좋다.

 

  • 포스터

아름다운 포스터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한 장으로 모든 게 표현되는 단순함이 신기하다. 사진과 타이포와 일러스트가 뭉쳐졌다 떨어졌다 하며 어떤 느낌을 만드는데 어느 하나가 뛰어나다고 해서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알맞게 잘 조화된 포스터가 내 눈에는 가장 아름다운데, 이 조화로움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참 어렵다. 궁극적으로 멋진 어떤 것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왜 좋은가?’에 대한 답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S.

취향 수집하기.

취향은 명료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영역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종종 나는 내 취향이 모호하다고 생각했다. 좋다는 감각은 남아있지만, 좋음 그 이상으로 더욱 풍요롭게 표현할 수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표현력의 부족일 수도 있겠다.

표현할 충분한 어휘를 갖추는 대신, 나는 좋다고 느끼는 것들을 종종 모은다. 전세계, 각 시대의 우표를 모으는 수집가처럼 나는 인스타 저장하기 기능으로 디지털 콜렉팅을 시작했다. 물성의 것을 모으기엔 공간의 한계가 있으니 대신 디지털 영역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들을 카테고리별로 수집하고 나면 하나의 결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서.

디지털 콜렉팅을 시작하고 가장 활발하게 쓰는 두 가지 카테고리를 들여다보았다.

  • Like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득 나게 만드는 일러스트 작품을 모은 카테고리다.

모아두고 나니 나는, 면보다 선으로 표현한 작품, 정형미가 있는 작품, 동물이나 식물을 주제로 한 작품, 마지막으로 글자와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한 작품에 눈이 자주 가나보다.

하나씩 그 이유를 따져보다가, 그림 그리기에 진심이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어릴 적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딴짓은 그리기였다. 공책 끄트머리에 하던 낙서부터 시작해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뭐라도 그렸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건, 기름종이를 대고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따라 그리는 일이었다. 반투명의 기름종이로 선을 따고, 검정색 펜으로 선을 그려 영구히 그림을 남기는 과정을 하나의 의식처럼 치렀다.

단순한 선일 뿐인데 그것이 모여 만들어내는 재치가 좋다. 요즘엔 공간으로 그린 그림에도 시선이 간다. 선을 완벽히 채우지 않아도 그린 것 이상의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게 신기하다.

귀여운 그림은 최고다!
귀여운 그림은 최고다!
비어있어서 그림이 되는 것들
비어있어서 그림이 되는 것들

 

  • 🏡

앞으로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 만든 카테고리

올해 초, 친구들과 집에 대해 책을 쓰기로 하면서(물론 이 계획은 무기한 보류했지만)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집은 취향과 지난 삶을 담아내는 아주 큰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은 집의 형태를 크기, 주변 경관, 함께 살고 싶은 사람 등 다양한 기준으로 나눠 인터뷰 하면서 느꼈다. 과거 내가 살았던 집들, 혹은 내가 동네와 교감했던 부분들이 결국 내가 살고 싶은 집의 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아주 애기 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주택에서 살았다. 나무바닥이 끼익 소리를 내고 종종 비가 새는 오랜 연식의 집, 하지만 마당이 있어 사계절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집이었다. 앞으로 살고 싶은 집은 아주 옛날의 그 집에서의 경험을 고스란히 닮아있었다.

딱 쓸 만큼의 물건만 챙기고, 그만큼 생긴 공간과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

뜨개방은 코딩의 ㅋ도 모르지만 배움이 궁금한 J와 S가 모여 시작한 스터디입니다. 맨땅에 곡괭이도 없이 손으로 흙을 고르는 정도지만, 하나씩 배우다 보니 코딩도 엄청난 수작업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코드를 짜는 일이 한 땀 한 땀 바늘 코에 실을 꿰는 뜨개질과 비슷하다고 느껴 뜨개방이라 이름 짓게 되었습니다.

뜨개방은 한 주 동안 작업물을 만들거나 각자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만나, 그 주에 짠 성과만큼 공유해요. 능력자들이 보기엔 작디작은 코드 한 줄이지만 저희는 꽤 만족하면서 서로 으샤 으샤 하고 있습니다. 코딩 결과물을 나눈 이후에는 이런저런 스몰 토크를 시작합니다. 그 주에 읽은 책, 영화부터 요즘 가장 깊이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도 나눕니다.

뜨개방 현상소에서는 스몰 토크에서 나온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합니다.

- 2022 가을의 초입에서, 한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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