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 뜨개방 현상소

두 번째 이야기. 우리의 마음을 흔든 것들

2022.08.28 | 조회 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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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방의 이모저모

실 말고도 뜰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많더라구요. S와 J가 매주 글을 뜹니다.

J.

 할아버지가 된 폴매카트니는 비틀즈 노래를 부르며 리버풀을 휘젓는다. 작곡을 시작한 14살부터 데뷔 이후까지 살았던 집에 가고, 페니레인을 들으며 페니레인을 지난다. ‘잘해야하는데!’로 고민하던 시절 그의 엄마는 그냥 흘러가게 두라고 말했고, 음악으로 만들어 Let it be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이야기를 재잘댄다.

펍에서 시작했던 음악은 다시 펍으로 되돌아온다. 젊은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카운터 옆 게임기 같은 쥬크박스가 보인다. 맥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손님이 노래를 고른다. 커튼이 쳐지고 그녀가 골랐던 A Hard Day’s Night은 스피커가 아니라 무대에서 나온다. 모두의 입이 벌어지고, 시공간은 금세 1960년대 어느 작은 리버풀의 펍으로 바뀐다. 비틀즈의 시대로.

 
 

나이 든 70대의 여성이, 몇 초 만에 20대로 돌아가는 이 장면에서 뜬금없이 눈물이 났다. 놀라서 활짝 웃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도 정신과 느낌은 변함이 없는데, 시간만 야속하게 흘러가는구나 하는 허무한 마음도 들었더랬다.

어제는 엄마랑 쇼파에 앉아 스페이스공감 15주년 방송을 봤다. 윤복희가 나왔고, 나는 그가 미국 무대에 선 방송을 유튜브로 본 적이 있지만 잘은 알지 못한다. 지금도 무지 세련된 그녀를 보면서 엄마는 “윤복희가 옛날에 입국해서 비행기에서 딱 내렸는데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거든, 그게 난리가 난거야.”로 시작해서 너무 멋지지, 이쁘지, 저 나이에 몸매는 어떻게 저렇게 좋아? 하며 무대 내내 쫑알쫑알 속삭였다. 윤복희를 처음 봤을 때로 돌아간 것마냥. 이렇게 재밌어하는 엄마를 보며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는데, 그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세월이 지나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 저 속에 담아두었던 어린 모습을 꺼낸다는게 나는 너무 좋은 거다. 그 감정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뻐서, 그리고 그 감정을 갖고 언젠간 세상에서 떠나갈 걸 알아서. 그런 반가움과 두려움에 눈물이 조금 났다.

- 2019 일기에서 발췌


S.

코딩 스터디가 마무리될 즈음이면 최근에 경험했던 가장 좋은 것을 나누곤 한다. 뮤직 페스티벌을 다녀온 언니는 공연의 좋은 감정을 누리고 싶어서 sns에 뮤지션을 태그 했는데, 바로 그 뮤지션이 언니의 스토리를 정말로 들어와 봤다는 어메이징한 경험을 얘기해주었다.

언니만큼 특별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나는 최근 새롭게 눈을 뜬 영역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로 자전거.

뚜벅이 생활에 익숙했던 나에게 자전거는 더 넓은 삶의 공간을 선사했다. 자전거를 타면 걸어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었다. 더불어 환경에도 좋았다. 내가 자전거를 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서울에 돌아와서 나는 곧장 따릉이 정기권을 끊었다. 걸어서 25분 거리에 있는 운동장에 가기 위해, 혹은 외출했다 집에 가는 길에 나에게는 “자전거”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니 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은 정말이지, 자전거 도로가 없다. 자전거를 타는 순간부터 나는 서울의 도로 어디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었다. 자전거는 과연 차도로 가야 할까, 인도로 가야 할까. 이제 막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내게 차도는 어나더 레벨이었고 인도는 욕먹기 아주 좋았다. 생각해보니 자전거인이 되기 전의 나도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면 욕을 했던 것 같다. 왜 이 좁은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느냐고. 보행자와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지날 때면 가뜩이나 작은 심장이 더 쪼그라들었다. 그래서 익숙한 동네에서는 웬만하면 골목으로 다녔고, 피치 못하게 좁은 인도를 지날 때에는 내려서 자전거를 끌었다.

자라니라는 말이 있다. 자전거와 고라니의 합성어로, 고라니처럼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전거를 지칭한다. 나는 자라니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종종 자라니가 된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자라니를 면하려다 보도블록에 두 무릎을 인사시켰다. 덕분에 반강제로 이제 막 사랑하기로 한 자전거와 잠시 이별하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나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시선이 보인다. 걷는 것보다 조금 더 바람결을 느끼면서, 차보다는 사람 속도에 머물 수 있는 새로운 길. 그러나 아직은 개척할 것이 많은 영역. 자전거인이 되어서 나는 운전자와 보행자의 파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되었지만 덕분에 대중교통을 타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자전거인을 배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저들도 어딘가 스스로를 보호해주는 길로 가고 싶은 거야, 하고 이해하게 되는 마음의 공간이 생겼다.


*

뜨개방은 코딩의 ㅋ도 모르지만 배움이 궁금한 J와 S가 모여 시작한 스터디입니다. 맨땅에 곡괭이도 없이 손으로 흙을 고르는 정도지만, 하나씩 배우다 보니 코딩도 엄청난 수작업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코드를 짜는 일이 한 땀 한 땀 바늘 코에 실을 꿰는 뜨개질과 비슷하다고 느껴 뜨개방이라 이름 짓게 되었습니다.

뜨개방은 한 주 동안 작업물을 만들거나 각자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만나, 그 주에 짠 성과만큼 공유해요. 능력자들이 보기엔 작디작은 코드 한 줄이지만 저희는 꽤 만족하면서 서로 으샤 으샤 하고 있습니다. 코딩 결과물을 나눈 이후에는 이런저런 스몰 토크를 시작합니다. 그 주에 읽은 책, 영화부터 요즘 가장 깊이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도 나눕니다.

뜨개방 현상소에서는 스몰 토크에서 나온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합니다.

- 2022 여름의 마지막 주, 한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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