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굳은살

지속적인 압박과 마찰을 받아 딱딱하고 두껍게 변하는 것.

2023.04.06 | 조회 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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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어둑한 그 밤에, 적어둔 글을 들고 방문할게요.

주말 농장을 가꾸던 우리집은 

주말마다 밭을 매러 다녔다.

 

봄이 오면 갈퀴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흙을 갈아엎고,  

누구도 좋아하지않을 냄새인 비료를 코를 막고 섞어주었다.

목에는 수건 하나를 걸치고 송골 송골 이마에 맺히는 땀을 닦아내었다.

햇빛을 잘 받으라고 검은 비닐을 흙에게 덮어주고서는 구멍을 뚫어

오이, 고추, 가지, 고구마, 감자, 깨, 수박 과 같은 여러가지 모종을 심었다.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의 힘을 실어 꾹 꾹 다져눌러주었다.

그렇게 다져진 땅에선 식물들은 뿌리를 내려 

새로운 잎들을 틔어내었다.

틔어낸 잎들이 너무 예뻐보였고, 

아빠, 엄마가 보지 않는 틈에 몰래 잎을 뜯어다가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었었다.

 

 

무더운 여름이 오면, 내 몸보다 긴 호스를 끌어다가

굳은 땅에 물을 흠뻑 뿌려주었다.

그때 나의 꿈은 소방관이었다.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물같은 도움을 듬뿍 뿌려주고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듣는 소방관이 멋져 보였다.

나는 흙들의 소방관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마른 흙이 다시 말랑해져 식물들이 더 크게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루에도 수 차례를 뿌려댔다.

비록 식물들에겐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지못하지만,

무럭무럭 자라주는 모습이 그 말을 대신 해주는 것 같았기에 물 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촉촉해진 땅에서 자라난 식물들은 본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열매들을 뽐내주었고,

 

가을이 오면 그 열매들을 열심히 수확하고

조금의 채소들은 남겨 흙에게 영양분을 주고선

손을 모아 내년에도 부디 잘 부탁한다고 땅에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세찬 바람을 맞고, 비는 눈으로 바뀌는 계절인

겨울이면 조금 시렵더라도, 습기가 없어 조금은 메마를지라도

땅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보지않는 '땅' 의 시간이 주어졌으니 편히 푹 쉬다가 

봄이 오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굳은 땅은 푹 쉬다 그렇게 봄이 오면 다시 생기가 생길테니까.

그리 아쉽지만은 않았다.

 

 

어쩔땐 흙에게 한탄을 하기도, 

흙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의 초등학교 시절

우리가족은 5년 내내 주말농장을 일궜었다. 

나는 그 5년이라는 스무번의 계절을 땅과 함께 겪으며

평생 메마른 땅 이거나 평생 생기가 넘치는 땅은 있을 수 없단걸 

그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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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흙과 우리의 살은 비슷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생명의 기초라고 부를 만큼 우리 삶의 중요한 흙은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선 굳었다가 다시 말랑해져서 우리들에게 생기를 주기도 하니까.

우리네의 고된 삶의 결과물인 굳은살.

굳은 살이 생기면서 딱딱하고 두껍게 변한 것은 아마 '살'만이 아니라

생각,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험에 따른 굳은 살이 생각에도, 마음에도 생기다보면

'생기'와는 거리가 멀어진다고 느껴졌다.

학생일때 부터 자주 들리던 이야기인 "나이가 무기야", "그 젊음이 부러워"는 

사실 머릿속의 굳은 살 아닐까.

나는 30대가 되어도 40대가 되어도 아니 70대가 되어도 

생기있는 사람이고 싶다. 아마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의 굳은살을 조금은 말랑하게 변화시켜보지않겠냐는 제안을 해보고 싶었다.

삶을 살다 굳은살이 생기더라도 그걸 다시 어루어만지고, 필요없는 부분은 잘라내어가면서

그렇게 새 살이 나기를 기다려보자. 우리의 삶은 아직 한창이니까.

 

 

 

 

 

 

 

 

 

늦은 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안온한 밤 보내세요. 

 

+인스타그램 계정도 활성화하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만 올라가는 글도 생길 터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instagram: @knock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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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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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영

    0
    about 1 year 전

    우와 저희집도 밭이 있는데 땅콩 맛있어요! 어쩔 댄 멧돼지가 와서 고구마 먹고 갔어요.. 내일도 생기있게 출근해볼게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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