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2022.06.01~02

매주 아트트립: 에피소드1. 바우하우스, 미술관 여행의 서막

2022.06.05 | 조회 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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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보내는 편지

경험주의자 독일 교환학생의 해외 생활 일지입니다.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채은입니다. 벌써 세 번째 편지네요. 갈수록 시간이 빠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어서 무작정 시작한 메일링이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이 읽어주고 계신 건 여전히 신기하고 감사하네요.

 

예상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플랫폼에서 세련된 형식으로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메일링 첫 달은 변화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이제껏 구독자로서 메일을 받아보기만 했지,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건 처음이라서요. 모쪼록 우당탕탕 메일링 모험의 여정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 2회 글을 써서 보내드리면서 매일 글을 보내는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쉽진 않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커서 나름 즐기는 중입니다. 이번 편도 편안하게 즐겨주세요. 항상 고맙습니다. 


 

(독일의 예술 종합학교 바우하우스의 포스터. 출처: ⓒbauhaus100.com)
(독일의 예술 종합학교 바우하우스의 포스터. 출처: ⓒbauhaus100.com)

"바우하우스"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명칭. 바우하우스를 제대로 인식하게 된 건 대학교에 입학하고 미술사 수업을 몇 개 들은 이후부터였다. 그때까지도 '현대 미술의 시초이자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꾀했던 독일의 유명한 조형 학교' 정도로 이해했다.

 

어느덧 독일에서의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고, 지난 학기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감당할 수 있는 양의 수업만 듣기로 했다.

 

이 학과의 좋은 점은 1주일만 하는 워크숍이나 3일만 참여하면 되는 여행같이 다양한 형식의 수업이 있다는 점이다. 창작자를 양성하는 곳인 만큼 수업의 형식도 전형적인 것 없이 꽤 자유로웠다.

더군다나 학점은 한 학기 내내 듣는 수업과 똑같이 주는데 수강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선택한 수업 중 하나가 <Science of Design A: The German Bauhaus>, 바우하우스로의 23일 여행 이었다.

 

교환학생을 담당하는 학과장 교수님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수업이자 지난 학기 이 수업을 수강한 교환학생 친구들 모두가 꼭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수업이었다. 역시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었다. 또 디자인을 배우러 독일에 왔는데 바우하우스에 가지 않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하는 바우하우스 전시 말고, 직접 그곳에 가서 바우하우스 예술가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경유하는 역 밖으로 나와서 햇살을 즐기던, 함께 여행한 친구들)
(경유하는 역 밖으로 나와서 햇살을 즐기던, 함께 여행한 친구들)

57, 설레는 바우하우스 여행의 첫날이 밝았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자연스레 일어나는 상쾌한 아침을 꿈꿨건만..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 그리고 교수님과 만나기로 한 기차 시간의 15분 전에 기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꿈이길 바라면서 2분간 멍을 때렸지만, 당연히 현실이었다.

 

미친 늦잠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수업을 위해 준비할 것은 바우하우스의 예술가 세명을 골라서 그들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뿐이었다. 마음 놓고 미루다가 전날 11시쯤 조사를 시작했다. 분명 요약만 하고 1~2시간 내로 취침할 생각이었다.

 

이게 웬걸 갑자기 당일 새벽 3시가 되어있었다가볍게 시작한 검색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 것이다.

시대적 배경과 바우하우스의 역사, 차별 대우 속에서도 텍스타일 공방을 바우하우스의 주축으로 만든 멋진 여성 예술가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위대한 업적을 세운 많은 여성 예술가들(군타 슈퇼츨, 마리안네 브란트 등)..

 

잠을 자려야 잘 수가 없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이어졌다. 지난 학기에 뼈 빠져라 논 덕분에, 이번 학기에는 지식과 배움에의 갈망이 최고조로 달해있기도 했다. 그렇게 잘 시간도 잊은 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집중적으로 조사했던 바우하우스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 마리안네 브란트. 출처: https://artpil.com/)
(집중적으로 조사했던 바우하우스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 마리안네 브란트. 출처: https://artpil.com/)

다시 여행 당일 아침, 일단 내 상황을 알려야 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른 채 왓츠앱 채팅방에 들어갔다. 같이 여행을 가는 스페인 교환학생 친구 비올레따에게 온 음성 메시지에서 ‘Where are you Chaeeeun?’이 들렸고...

 

이게 현실인가 너털웃음이 났다.

비올레따에게 연락한 뒤 정차하는 다음 역에 최대한 빨리 가보기로 했다. 택시비 70유로(한화로 약 9만 원..)를 날리고 무사히 탑승 완료.

 

신나는 여행의 첫 시작, 처음 보는 친구들과 교수님을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모든 것이 신났다. 스펙타클한 아침마저 여행의 일부였으니까.

 

 

( 교수님이 보여주신 사진 속에 있던 바우하우스 건물의 옛날 모습)
( 교수님이 보여주신 사진 속에 있던 바우하우스 건물의 옛날 모습)

데자우(Dessau)로 가는 기차 안.

아침의 격정적 불안은 설렘과 피로에 금방 잠식되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모두가 무사히 모이고, 기차 안에서 작은 자기소개가 시작됐다. 교수님 눈에도 정신없어 보였을 내가 첫 주자로 지목됐다.

 

나는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이야. 다들 알다시피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자서 기차를 놓칠 뻔한 사람이야. 하지만 다행히 난 지금 여기에 있어. Anyway now I'm happy, nice to meet you :) ..”

 

이후 8명의 학생과 교수님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이번 여행의 구성원이 모두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밤, 바우하우스의 여성 예술가들이 차별 속에서도 일궈낸 위대한 업적에 큰 감명을 받았었다.

마침 이번 여행을 함께 하는 이들이 모두 여자라니, 이것은 대단한 운명이 아닌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여행은 나에게 신비롭게 느껴졌다.

 

 

(바우하우스의 여성 예술가들(Alexa von Porewski, Lena Amsel, Rut Landshoff, unknown), 1929년 이전. Berlinische Galerie, Photographic Collection. 출처: https://www.artspace.com/)
(바우하우스의 여성 예술가들(Alexa von Porewski, Lena Amsel, Rut Landshoff, unknown), 1929년 이전. Berlinische Galerie, Photographic Collection. 출처: https://www.artspace.com/)

바우하우스는 미술과 공예, 건축 등 다양한 종합 예술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교육하겠다는 교육관을 내걸었던 곳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당시에 진보적인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성차별적인 현실은 여전했다.

 

바우하우스의 여성 예술가들은 '텍스타일(이하 직조) 공방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바우하우스에 건축을 배우고 싶어서 입학했더라도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조가 아닌 다른 분야는 배울 수 없던 것이다.

 

당시 직조는 회화보다 못한 것, 여자들이 하는 공예 정도로 치부됐다. 이러한 인식의 영향으로 아마 바우하우스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중 남성들의 선호도가 가장 낮은 학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직조 공방은 그렇게 여성들을 위한 학과라는 포장지를 두른 채 시작됐다. 실은 차별이라는 큰 씨앗을 품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여태껏 배운 것 중에 텍스타일이 가장 재밌는 나에게는 텍스타일이 하위 미술 개념으로 인식됐던 과거가 신기하고 안타까웠다.

 

문득 텍스타일디자인학과에서 배운 것들의 기틀은 바우하우스 직조 공방 예술가들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 맞춰서 우연히 쓴 텍스타일디자인학과가 적성에 잘 맞는 것도, 독일에 온 것도, 이 수업을 이 시기에 듣게 된 것도 모두 운명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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