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운동을 통해 습관을 바꾸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쓴 전자책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에요>을 통해 알려드리고 싶었던 게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운동을 중도에 포기하는 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뇌가 설계된 방식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 뇌의 본능 =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
우리 뇌는 '항상성'이라는 아주 강력한 프로그램이 세팅되어 있습니다. 과거 인류의 뇌에게 변화는 곧 '위험'이었습니다. 수만 년 전 사바나 초원을 누비던 원시 인류의 상태 처럼요. 당시 인류에게 '새로운 도전'이나 '급격한 변화'는 곧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 신호였습니다.
- 에너지 보존의 법칙: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뇌의 지상 과제는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살 수 있는데, 굳이 에너지를 써서 달리는 행위는 뇌 입장에서 '미친 짓'이거나 '자살 행위'에 가까웠죠.
- '항상성(Homeostasis)'의 공포: 뇌는 '어제 살아남았다면, 오늘은 어제와 똑같이 행동해야 함'이라는 항상성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뇌에게 변화는 단순히 귀찮은 일이 아니라, 눈 앞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과 같은 수준의 비상사태로 인식되기 때문이죠.
720일 동안 술을 마시던 시절, 제 뇌는 무기력하고 고통스러운 상태조차 '어쨌든 어제 살아남았던 상태'로 인식했던 걸지 모릅니다. 그런 뇌에게 갑자기 '오늘부터 운동할 거야!'라고 선언하는 건, 평온한 마을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는 '날 좀 막아줘'라고 저항을 부추기는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뇌가 운동하려는 당신을 막아서는 건, 당신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당신을 죽지 않게 보호하려는 뇌의 처절한 방어 기제입니다.

2. 뇌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세요'
많은 분이 의지력으로 뇌와 정면 승부를 펼칩니다. 하지만 뇌는 지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력 배터리가 다 닳아도 뇌는 변화가 없습니다. 이걸 보고 우리는 '정신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보면 운동 습관이라는 것은 우리 뇌 안에서 벌어지는 전두엽(이성)과 기저핵(본능)의 권력 다툼입니다.
- 전두엽의 도전: "오늘부터 1시간 헬스!"라고 외치는 건 이성적인 전두엽입니다. 전두엽은 에너지를 많이 쓰고 금방 지칩니다.
- 기저핵의 거절: 본능과 습관을 관장하는 기저핵은 변화를 감지하는 즉시 저항합니다. 1시간이라는 거창한 목표는 기저핵의 레이더망에 정면으로 걸리는 '대규모 군사행동'과 같습니다.
결국, 의지력(전두엽)이 바닥나는 퇴근길에는 항상 본능(기저핵)이 승리합니다. 뇌를 이기려 하는 모든 시도는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거죠.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는 '뇌의 감시 체계를 우회하는 전술'이 필요합니다.
3. [의지 탈출 시스템] 최소 저항 설계
뇌가 '어? 이게 운동인가?'라고 의심조차 하지 못할 만큼 적은 마찰력의 운동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 5분 법칙: "매일 1시간씩 운동하면 한 달 뒤에 살이 빠져있겠지?"라는 생각은 뇌에게 너무 먼 이야기입니다. 대신 "딱 5분만 하고 바로 샤워하고 쉴 거야."라고 속이세요. 5분이라는 짧은 시간은 기저핵이 '그 정도 에너지는 써도 생존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라고 허락해주는 티켓과 같습니다.
- 의사결정 최소화: 뇌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선택'입니다. '어디서 할까? 무슨 옷 입지?'라고 고민하는 순간 뇌는 이미 지쳐버립니다. 고민의 여지를 없애세요. 헬스장을 등록할 필요도 없고, 요즘 트렌드에 맞는 운동복을 고르느라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5분으로 시작할 건데, 그런 고민은 대표적인 에너지 낭비입니다. 그냥 아무 편한 옷을 입고, 거실에서 시작해도 됩니다. 오래된 트레이닝 복 한 벌 걸치고 집 앞 공터로 나가보세요.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 뇌의 보상 회로 가로채기: 처음에 운동 자체가 고통이라면 뇌는 절대 협조하지 않습니다. 운동할 때만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나 음악을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는 운동을 할 때 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나 노래에 전혀 집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뇌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해도 다 듣고 있습니다. 무의식 중에 '운동하는 것=음악 듣는 것'이라는 착각을 심어주는 것이죠. 저는 운동하러 가는 것에 저항이 느껴질 때마다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나는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10년 전의 나로 돌아가는 중이야." 뇌에게 고통에 합당한 보상을 제안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4. 뇌가 '운동하는 나'를 의식하지 못할 때까지
결국 시스템의 종착역은 의지력을 전혀 쓰지 않고도 몸이 움직이는 '무의식의 영역'에 도달하는 겁니다.
뇌과학적으로 습관이 형성된다는 것은, 어떤 행동의 주체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전두엽'에서 자동 실행 장치인 '기저핵'으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고민하지 않고 양치질을 하듯, 밥을 먹기 전에 물로 입을 축이듯, 운동 역시 뇌가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실행하고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 관성의 힘: 뉴스레터 0호에서 말씀드린 '타임머신'은 처음 이륙할 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하지만 일단 궤도에 오르면 관성에 의해 저절로 흘러가죠. 뇌를 속이며 보내는 아주 작은 5분이 일주일, 한 달, 100일이 쌓이면 뇌는 더 이상 운동을 '도전' 또는 '변화'로 보지 않고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입니다.
- 혹시 하루를 빼먹었나요? 괜찮습니다. 뇌를 속이고,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겪는 작은 시행착오는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만들 뿐입니다. 720일의 술독에서 빠져나온 저 역시 수없이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저를 탓하는 대신, 뇌가 눈치채지 못할 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억하세요. 당신이 오늘 5분만이라도 움직였다면, 당신의 뇌는 이미 속기 시작한 겁니다. 뇌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지만 꾸준하게 당신의 신체 나이를 되돌리는 타임머신을 궤도에 올려보세요. 뇌가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이고 한 마디만 하세요.
"몰랐지? 나 운동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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