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 <밈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를 보고
혹시 슬픈 눈을 가진 개구리 ‘페페’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 페페는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의 감정 표현을 위해 자주 사용된 캐릭터의 이름이다. 페페란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슬픈 눈을 한 채로 눈을 내리깔고 있는 개구리 사진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다가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페페는 분명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밈’ 중 하나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짤’ 혹은 ‘짤방’이라고 부르는 밈이란 리처드 도킨스가 문화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용어이다. 이와 별개로 일종의 인터넷 용어로써 이모티콘처럼 사용되는 사진이나 짧은 영상 클립을 밈이라고 부른다. 이런 밈들은 대개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다. 슬픈 눈을 가진 개구리 페페가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건 커뮤니티의 사용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유난히 자주 사용됐기 때문이다.
<밈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이하 밈전쟁) 페페라는 캐릭터의 탄생부터 그가 대표적인 밈이 되는 과정을 서술하며 페페의 역사에 대해 훑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다. 이 다큐멘터리가 내게 흥미로웠던 점은 그저 인터넷상에서 농담을 위해 사용되는 밈 이면의 모습이었다. 커뮤니티를 들여다볼 때 종종 보던 슬픈 눈을 가진 개구리 페페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
‘튀어나온 눈알과 기쁜지 슬픈지 모를 표정을 가진 개구리 캐릭터 페페. 만화 잡지 속에서 우연히 커뮤니티로 흘러 들어가 혐오의 상징물이 되기까지 페페가 겪었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왓챠 <밈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설명 中 -
다큐멘터리 <밈전쟁>은 미국의 인디 만화가 ‘맷 퓨리’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진 개구리로 페페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보이즈 클럽’이라는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맷 퓨리는 자신의 만화를 스캔해 마이스페이스라는 SNS에 공유했고, 개구리 페페는 우리가 아는 유명한 밈이 된다.
나아가 페페는 우연히 미국의 익명 기반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포챈(4chan)으로 흘러들어 간다. 포챈은 니트족(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함)들이 주로 이용하던 사이트였는데, 이용자들이 누가 더 ‘루저’인지 경쟁하며 즐기는 공간이었다. 포챈에서 개구리 페페는 끊임없이 복제되고 변형되며 커뮤니티 사용자들에 의해 이용되기 시작했다.
<밈전쟁>에서 핵심으로 다루는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개구리 페페는 포챈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고, 나아가 포챈 커뮤니티 밖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한다. 페페를 팀으로 키워낸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은 페페를 자신들만 갖기 위해 페페를 혐오 표현의 상징물로 변형시키기 시작한다. 그렇게 변형된 개구리 페페는 미국 ‘대안 우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을 거쳐 처음엔 그저 관망하던 만화가 맷 퓨리는 페페를 구하기 위해 행동하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밈전쟁>에서 페페의 이야기를 보면서 느낀 건 놀라움이었다. 하나의 팀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정치, 심지어 대선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인터넷 정보의 영향을 받으며 사는 건 이미 우리에겐 당연한 일이다. 이미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그것이 정치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란 법이 없다. 어쩌면 그 당연함 때문에 그 이면을 보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페의 사례를 보면 인터넷 커뮤니티 속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정보들은 이미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쓴 채 현실에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분명 인터넷의 익명성은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익명성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쪽과 익명성 뒤에 숨어 혐오 표현을 은폐하는 다른 쪽, 두 가지 모두 인터넷이 가진 얼굴이다. 이미 인터넷 실명제를 비롯한 여러 논의가 오간 지 오래지만, 사실 인터넷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빛의 공간이자 범죄와 혐오 표현이 보호되는 어둠의 공간이기도 하다.
다행히 슬픈 눈을 가진 개구리 페페는 그저 혐오 표현의 상징에서 멈추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밈전쟁>의 결말 부에선 페페가 홍콩 민주화 시위의 상징이 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우리가 당연히 사용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끊임없이 복제되고 변형된 개구리 페페가 상징하는 건 이젠 모든 게 어떤 의도에 따라 복제되고 변형될 수도 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끼는 주변의 모습들을 담은 캐릭터가 어느새 혐오 표현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우리가 끊임없이 당연히 여기는 주변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글쓴이: 순환선
소개: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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