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 가는 버스 안에서 핸드폰에 있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쭉 한 번 훑어봤다. 나는 ‘멜론’ 앱을 통해 음악을 듣는데, 월별로 내가 자주 들었던 음악 리스트를 보는 기능이 있었다. 쭉 목록을 살펴보니 비슷한 장르의 음악이나 기존에 자주 듣던 음악으로 채워져 있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음악을 들어보긴 했지만, 대부분은 기존에 내가 좋아했던 음악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음악들이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확고한 취향이 생긴다고 들 한다. 아무래도 살면서 여러 가지를 겪고 경험해보면서, 나에게 맞는 게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된다는 거겠지 싶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가령 나이가 들면 먹는 일에 대해서는 확실한 취향이 생긴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 아직도 딱히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메뉴를 골라야 할 때, 뭐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보면 종종 ‘아무거나’를 외쳐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곤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야 당연히 좋아하지만(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누군들 싫어하겠는가), 그렇다고 인기 있는 맛집을 찾아보거나 어딘가를 갈 때 꼭 먹어보고 싶은 무언가를 검색해서 따로 찾아보고 먹으려고 하진 않는다. 평소에도 자주 찾아가는 단골 맛집 같은 것도 없고 그냥 눈에 보이는 곳, 괜찮아 보이는 곳에 가서 아무거나, 되도록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먹어보려 한다.
아마도 음식은 내 삶에 있어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히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마음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음악의 경우엔 조금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어딜 가나 음악을 꼭 듣는다. 20대 초반에 내 대부분의 활동범위는 서울이었다. 하지만 내 집은 용인이었고, 그 먼 거리를 대중교통을 타고 왕복하느라 허구한 날 진이 빠지기 일쑤였다. 그 고된 여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음악이 꼭 필요했다.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지만, 눈이 피로해져서 오랫동안 켜놓고 보진 못했다.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눈을 감고 있는 게 좋았다.
가끔 음악이 너무 좋을 때면 그 음악 속에 빠져 가사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이런저런 상상을 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정말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대중음악부터 펑크락, 팝송, 힙합까지. 20대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잘 몰랐고, 그래서 여러 종류의 음악을 들었다. 반면, 지금은 음악만큼은 호불호가 명확하다.
누군가 무슨 음악을 자주 듣는지 물어볼 때, 특정 장르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답하는 건 ‘나는 이런 (이런 감성을 지닌) 사람입니다’라는 의미다. 그래서 확고한 음악적 취향이 생겼다는 건 꽤 슬픈 일이다. 확고한 취향이 생겼다는 건 변화를 두려워하게 됐다는 것,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한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나는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어느 한 음악을 고르고 눈을 감았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샤프, <연극이 끝난 후> 中
서른 즈음에는 무엇이든 해내지 않았을까 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별 볼일 없었던 내 20대를 뒤돌아보며 20대가 끝나갈 무렵부터 이 노래를 자주 들었다. 어쩌면 연극처럼 내 인생도 1막이 끝나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래서 이렇게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관객 하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새롭게 시작될 2막은 좀 더 재미있는 연극이 되길 기대하면서.
글쓴이: 유령 K
소개: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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