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친구의 기일이 다가온다. 그럴 때면 종종 기분이 착잡해지곤 한다. 그와는 중학교 때 게임을 통해 친해졌다. 조용한 성격이었던 나와는 달리 사교적이었던 친구는 여러 사람을 소개해줬다. 그렇게 친해진 우리는 종종 그룹으로 모여 얘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만날 일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우리는 채팅방을 통해서 계속 연결돼 있었다.
처음에는 버디버디, 네이트온,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난 후 카카오톡까지. 학교나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 채팅방을 통해 쓸데없는 유머나 공상을 얘기했고, 유일하게 속마음을 풀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춘기 소년이 그러겠지만, 사춘기를 겪고 있던 우리는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들처럼 방황하고 유영했다. 아마도 항상 어딘가에 소속돼 있어도 소속돼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마음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 채팅방은 우리가 유일하게 소속감을 느끼는 장소였다.
그렇게 이상한 사춘기 소년들 사이에서 그는 유일하게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항상 우리들 사이의 중심이었고, 이상하게 엇나간 톱니바퀴를 이어주는 존재였다. 공부를 꽤나 잘했고, 성실했다. 그는 서울 소재 한 대학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친화력이 좋았던 친구는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그랬다. 동아리 연합회 회장부터 시작해서 각종 인턴이나 대외활동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활동을 했다. 성인이 된 우리는 각자의 상황이 생겼고, 만날 시간이 줄어들어 가끔 몇 달에 한번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결돼 있다고 느꼈고 중학교 때 이후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계속됐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살고 싶다던 그는 돈을 많이 주지만 힘들기로 유명한 금융권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금융권의 문턱은 꽤 높았고, 번번이 떨어졌던 그는 종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떻게든 돕고는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고 그냥 가끔 술이나 마시자며 보는 게 전부였다. 그런 와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항상 열심히 했기에 언젠간 해낼 거라는 걸 은연중에 믿고 있었다.
그는 여러 번의 인턴을 거쳐 결국 졸업하고 여의도에 있는 금융권 회사에 취직했다. 그렇게 원했던 기업에 들어갔지만 밤낮 없는 야근에 시달렸고, 거의 맨날 열 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그는 회사 생활이 맞지 않는다는 것 같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그렇게 사교적인 친구가 저렇게 말하니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공감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처럼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늦은 밤 열 시에 평소처럼 채팅방에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의미심장하거나 특별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Let's go to the mall!' 그리고 동영상 링크 하나. 그가 남긴 메시지는 그때 우리가 좋아했던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 흑역사 에피소드가 담긴 노래와 영상이었다. 하지만 늦은 밤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건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됐다. 다음날 아침, 그의 부고 문자를 받았을 때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사인(死因)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처음에는 눈앞에 마주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만약 어제 잠깐 얼굴이나 보자고 붙잡았다면, 다른 현실이었을까 자책하기도 했다. 장례식장에서 웃고 있는 그의 영정사진을 마주할 때는 고개를 들기가 힘들었다. 그는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도 우리는 여전했지만, 당연하게도 아주 예전 같지는 않았다. 매년 그의 SNS에는 안부를 묻는 글들이 올라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SNS에는 점점 그를 찾는 글이 줄어들었다. 그는 점점 우리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죽으면 누구나 그렇게 다 잊혀지는 걸까? 기일이 다가올 무렵에는 마음이 착잡해지곤 한다. 너를 잊고 살았다는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 그러다 문득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기록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던 것 같다. 어딘가에 기록하고 또 누군가가 나를 계속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 나에 대한 네 마지막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나는 너에 대한 얘기를 기록한다. 네가 원치 않는 일인지 이제는 알 수 없게 됐지만, 너를 잊지 않았다는 마음을 기록하고 싶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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