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지인의 작은 부탁을 들어준 일이 있었다. 일을 끝낸 후 지인의 집에 놀러 갔다가 작은 선물을 받았다.(받게 됐다) ‘Dragon’s Bood’라고 적혀 있는 손바닥만 한 작은 상자였다. 내용물의 정체는 ‘인센스’였다.
인센스는 마음을 안정시켜주며 공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향초의 일종인데, 용의 피라는 그 인센스는 작은 원뿔 모양의 총알처럼 생겼다. 긴 막대처럼 생긴 스틱형의 인센스는 예전에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이런 형태의 인센스는 처음이었다.
그날의 분위기는 인센스 때문이었을까, 그리 친하지 않은 지인이었음에도 즐거웠다. 꽤 오래전부터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였다.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느낀 건 어쩌면 그 용의 피라는 인센스의 향 때문이지 않을까? 은은하게 감도는 인센스의 향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술. 그날의 분위기가 나의 어떤 점을 자극한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향기는 사람의 관계를, 본능을 자극하는 감각이다.
인간에게 오감이 있지만 난 유독 후각이 본능과 연결되는 감각처럼 느껴진다. 어떤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생김새로 구분할 수도 있지만, 우린 때로 그 사람을 냄새로 기억하기도 한다. 진한 향수 냄새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고, 은은한 비누 세정제의 냄새로 기억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알 수 없는 악취로 기억되는 사람도 있다. 그 냄새가 좋든 싫든, 악취라고 생각하게 되는 때도 있다. 지나치게 주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기억되는 냄새는 그 사람과 닮아있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나는 어떤 냄새로 다른 이들에게 기억될까. 악취일까, 향기일까?
향수나 섬유유연제가 사람의 향기를 만드는 것이라면 인센스는 공간의 향기를 만든다. 실내용 탈취제가 향수라면 인센스는 섬유유연제를 닮았다. 향수보다는 은은한 섬유유연제 향을 좋아하는 내게 인센스는 분명 취향 저격이다. 얼마 후, 집에서 선물 받은 그 상자를 꺼내 인센스를 피워봤다. 작은 접시에 총알처럼 생긴 콘을 올려두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갈색의 아몬드처럼 생긴 콘에 불이 붙자, 연기가 피어났다. 연기와 함께 은은한 향이 방 안으로 퍼졌다.
그렇게 타들어 가는 인센스를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와 함께 어떤 물체가 탈 때 나는 재의 냄새가 섞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태워서 내는 향기라니. 또 그렇게 태우는 게 내게 안정을 준다니. 심지어 이름은 용의 피다. 용의 피를 태워서 나는 향이 좋다니.
타들어 가는 인센스를 보며 울적해지는 건 너무 감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조그만 씨앗 같은 것이 뭐라고 나를 돌아보게 하나. 문득 내 모습이 우스워졌다. 때론 우울해지고 싶은 날이 있는데 그날이 그랬나 보다.
인센스를 켜둔 채, 글을 썼다.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날은 뭔가를 적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인센스가 내게 준 안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총알 형태를 띠고 있던 인센스는 어느새 작은 씨앗 모양만큼 작아졌다. 작아진 만큼 불꽃은 커졌다. 연기구름이 점점 많이 피어올랐다.
문득 내가 놀러 갔던 집들을 생각한다. 날 환영해주던 사람들. 그 공간의 분위기와 향기, 자신이 즐기던 것을 아낌없이 내주던 그 마음을. 어쩌면 내가 지인에게 선물 받은 건 인센스가 아니라, 그런 환영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내게 안정을 주는 걸 당신에게도 주고 싶다는 그 마음. 어쩌면 내가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은 향에서 피어 나왔던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센스는 환영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느새 인센스가 다 타서 없어졌다. 나는 방안을 돌아봤다.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홀아비 냄새가 난다고 놀린 적이 있었다. 인센스와 함께라면 이젠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또 내 방에 온다면, 이 인센스의 향처럼 은은하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나의 공간이, 나라는 사람이 이 인센스의 향처럼 누군가에게 편안할 수 있다면 좋겠다.
글쓴이: 순환선
소개: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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