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을까? 얘기하자면 길어지겠지만, 20대, 30대 아니 대부분은 서울 아니면 최소한 수도권에서 살고 싶다고 할 것이다. 인프라니 교통이니 교육이니 좋은 것들은 죄다 수도권에 몰려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모든 것들을 제외하더라도 ‘집값’, ‘땅값’ 하나만으로도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싶은 이유는 충분하다.
예전에 한 대학교 재무 수업에서 교수님이 여러분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냐? 는 질문을 했다. 질문은 ‘공기 좋은 땅에서 살고 싶은가?’와 ‘(집값이 오를)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살고 싶은가?’였다. 재무행정 수업이었고, 효율성을 중시하던 교수님의 성향을 생각하면 당연히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게 정답이었다. (교수님은 전형적인 ‘답정너’였다..)
*답정너 :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준말.
하지만 나는 그만 ‘공기 좋은 땅에서 살고 싶다’에 손을 번쩍 들어버렸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공기 좋은 땅에 살고 싶다고 손을 들지 않았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교수님은 나의 선택을 비웃었고, 그렇게 나는 ‘공기 좋은 땅에 살고 싶은 태평한 소리를 하는 놈’이 돼버렸다. 하지만, 이게 ‘진짜 내가 살고 싶은 도시일까?’에 대해서는 조금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마음만) 있었다. 서울이 진짜 살고 싶은 도시일까? 진짜 그럴까? 내가 돈이 (많이.. 아주 많이) 있으면 살고 싶은 도시가 서울이라고?
얀 겔의 건축 다큐멘터리 <위대한 실험(원제:The Human Scale)>에서는 이런 고민에 ‘처음에는 사람이 도시를 만들지만, 이후에는 도시가 사람을 만든다’는 멋진 말로 속 시원하게 대답해준다. 우리는 멋진 고층빌딩과 4차선 도로, 화려한 야경으로 가득한 서울이라는 도시를 만들었지만, 서울은 우리가 어떻게 살지를 규정한다. 이 다큐에 따르면, 자동차가 도시에 계속해서 늘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차를 타고 싶어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도로를 짓고 확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서울에 살면서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가끔 대중교통을 탈 때면, 왜 이렇게 짧은 거리를 지하철로 연결해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역도 있었다. 만약 이 짧은 거리가, 걷고 싶은 도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로가 된다면 정말 대중교통이나 차를 타고 이 짧은 거리를 이동할까?
얀 겔의 <위대한 실험>에서는 실제로 이런 실험을 진행한다.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뉴욕에서 걷고 싶게 하는 거리, 의자를 놓고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거리를 조성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정말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사람이 도시를 만들지만, 이후에는 도시가 사람을 만든다’를 증명한 셈이다.
얀 겔은 도시 설계는 한번 만들면 100년, 1000년이 가는 복잡한 문제여서 정치인이나 도시 설계 전문가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치인은 단기적인 이익을 내기 위한 도시 계획에만 집중하며, 그렇기에 우리가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지 논의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LH 토지공사의 직원의 투기 이슈만 봐도 ‘땅값’과 ‘집값’의 차이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은 어느 순간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규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진짜 살고 싶은 도시는 순전히 우리의 욕망일까? 아니면 도시가 만들어낸 욕망일까? 하나 확실한 건, 돈이 많다면(정말 많다면..) 나의 ‘드림하우스’는 서울에는 없다. 그러니까, 제목에 답을 하자면, ‘나는 돈 있으면 서울에서는 안 살래요’는 확실하다. 이건 정말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 얘기를 하면서 집값과 땅값이 오르는 게 마냥 싫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면, 영화를 참고해보시길. (영화는 스트리밍 사이트 ‘왓챠’에서 감상 가능하다)
글쓴이: 유령K
소개: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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