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퇴근길. 퇴근길. 이 말이 나에겐 참 생경하다.
‘무슨 일 하세요?’
신용카드가 만들고 싶다거나, 전세 대출을 알아볼 때, 상담원들이 했던 질문에 나는 늘 프리랜서라고 나를 소개했다. 말이 프리랜서지, 나는 오랫동안 백수였다. 몇 달 일하고 목돈을 벌면 몇 달 쉬고를 반복하는, 어찌 보면(어쩌면) 프리랜서가 맞긴 했지만 어쨌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 (대출은) 어려워요’
상담원들의 대답은 거기서 거기였다. 어렵단다 내가.
퇴근길의 감성은 내일 또 출근해야 하는 그 정해진 루틴 속에서 만들어진다. 퇴근한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내가 루틴 안에 갇혀 있고 이 루틴이 어쩌면 영원할 것만 같다는, 안정감과 비통함. 그래서 괜히 더 센치해진다. 내가 괜히 불쌍해지거든. 그럼에도 그 루틴에서 벗어날 수는 없거든. 어쨌든 먹고살아야 하니까.
앞자리가 바뀌는 불안함 때문일까. 알 수 없는 마음의 변화로 정해진 시간에 일해서 매달 고정적인 수입을 규칙적으로 받는 일을 구했다. 나의 삶에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정해진 시간에 일을 나가고 정해진 시간에 집에 돌아온다는 것. 나에게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들이 규칙적으로 생긴 셈이다. 그런 시간들을 참 잘 보내는 나인데, 퇴근길엔 괜히 혹은 역시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외 롭 다.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자동으로 재생된 음악, 강허달림 선생님이 부른 <외로운 사람들>. 너 무 너 무 외 로 워. 애인이 없어서도 있겠지만, 주변에 사람도 많이 없어졌다. 일 하다가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마음을 터놓는 사람들이 점점 줄 거나 점점 멀어진다. 내가 가장 외로울 때는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다. 혹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고 느낄 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내가 되려 생각하고 있고, 그런 나를 발견할 때. 지금 같을 때 말이야. 그니까 스스로 나약해지는 것이다. 내가 남한테 관심이 줄어든 것처럼 남들도 그럴 것 같기도 하고. 그 혈기왕성했던 나는 어디로 갔지? 내 말을 듣게 하려고 남의 귀를 내 입 앞에 가져다 댔던 그때의 나는 어디로?
이렇게 살 수는 없어. 결국은 여기에 도달한다. 당장 때려치울 거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야지. 돈이 나를 지배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엄마한테 보내야 하는 돈과 다음 달에 사려고 참았던 에코백 같은 것들이 머리를 스친다. 이렇게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 나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 거지. 얻고 있기는 한 건가? 왜 포기만 하는 것 같지. 우리 아빠도 그랬나.
어릴 때.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아빠 차에서 들었는데. 카세트로. 그 음악을 요즘도 들을 때면 문득 신기해. 내가 알던 아빠라는 사람이 그 카세트를 차에서 틀었다는 게. 아빠 세대니까 그 음악을 좋아했을 수도 있는 건가. 그래서 그 음악이 나온 지 한참 지나서 자기 차에서 들으려고 그 카세트를 사러 간 건가. 자기가 직접? 뭔가 신기해.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아빠를 아빠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해하게 된다. 매일 퇴근길에서 아빠도 많은 번뇌를 겪었을까. 혹은 어떤 것들을 포기했을까. 당신이 포기했던 것은 어떤 것인가. 보고 싶네, 오늘따라.
오늘 퇴근길에 당신은 어떤 음악을 듣나요.
오늘 퇴근길에 그 음악이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나요.
오늘 퇴근길에 당신은 누가 보고 싶나요.
오늘 퇴근길에 당신은 어떤 것을 포기하고 있나요.
당신은 내일 또 출근하시나요?
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단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 당신들은 퇴근의 전문가. 그것은 곧 포기의 전문가이기도 하고, 번뇌의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견디기의 전문가이며, 성숙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럼에도, 대단하게도, 당연하게도, 내일도 다시 루틴을 반복할 당신 혹은 그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이라고 한다. 누가 그랬지. 내가 그랬나.
정말 지긋지긋한 나의 동갑내기 친구가 다 같이 글을 써서 잡지를 만들어보자고 카톡을 보낸다. 1달 전만 해도 “그럴 시간이 어딨냐”라는 생각을 하며 읽고 씹었을 카톡에 답장을 보낸다. 갈대 같은 마음. 이 갈대가 또 언제 바람에 흔들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 친구의 카톡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든다.
“나쁠 건 없지 뭐. 뭔가를 한다는 건. 재밌을 수도 있으니까”
글쓴이: 유브로
소개: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나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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