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후]외로운 사람들

'추후'의 뉴스레터

2021.05.05 | 조회 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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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

우리는 서른살이 됐고,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외로움은 왜 우리를 찾아올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보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에게 외로움은 늘 나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난 내가 홀로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활동적인 취미보다 독서나 영화를 즐기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외로움에 대해 친구가 물을 때면 난 늘 이렇게 대답했다. 난 이제 외로움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스스로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다. 거리를 거닐고, 영화를 보고,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글을 쓰는 삶을 즐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혼자 있는 건 즐거운 건데 왜 이렇게 외롭다고 말을 할까?

 L이라는 형은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그 형은 내게 하루에 한 번꼴로 전화를 했다. 통화를 마칠 때쯤이면 형은 왜 별일도 없는데 내게 전화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형은 별거 아닌 자기 일과 감정에 대해 나에게 말했는데 그건 때론 지겨운 일이었다. 그다지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이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내게 형은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동안 털어놓고 이제 됐다 싶으면 가버리는 사람. 날 감정을 쏟아내는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 사람.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온통 지배했을 때쯤, 나는 형과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그렇게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다가 다시 만난 형은 변해 있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예전과 달리 침묵이 흐르는 때가 생겼다. 그 이유는 형이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덜 하기 때문이었다. 나와 형은 오랜 세월 한 명은 듣고 한 명은 말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한 명이 말하지 않기를 선택하자 우리 사이에 남은 건 침묵이었다.

 그 후에, 우연히 형이 나에 관한 얘기를 한 것을 친구를 통해 전해 듣게 됐다.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변했고, 나도 예전처럼 그런 관계를 지속하고 싶진 않았다. 형은 종종 내게 전화를 걸었지만, 우리의 통화는 늘 긴 침묵으로 메워지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형은 내게 늘 전화를 걸어 별거 아닌 말들을 했다.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형과 날을 잡고 형이 사는 집 근처에서 맥주 한잔을 했다. 형은 새로 일을 얻은 곳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을 했다. 잠이 오지 않아 낮이면 홀로 거리를 거닐고, 밤에는 지인을 만난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됐다. 난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형이 나를 따라왔다. 왜 여기로 오냐고 묻자, 형은 광화문까지 같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먼 길을 가는 나를 신경 써주는 것 같아 괜찮다고 말하자, 형은 자신이 가고 싶어서 가는 거라고 말했다. 난 그 말을 하는 형의 표정을 살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마치 부서질 것 같은 그 미소를. 난 차마 오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형은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는 나를 배웅하고 시청역으로 걸어가겠다고 했다. 버스가 도착하고, 조심히 들어가라는 나의 말에 손을 흔들고 떠나는 형의 뒷모습을 봤다. 그 순간 느껴진 그 감정은 이상했다. 마음 한쪽이 울렁거리는 그 건 도대체 뭐였을까.

 난 버스에 올라타 친구와 통화를 하고, 창문을 물끄러미 보다가 노래 한 곡을 찾기 시작했다. 강허달림의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최근 친구가 외로움을 모르는 것 같던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며 추천해준 노래였다. 어느 때보다 바쁘게 사는 지금 내가 외롭다니. 노래를 틀고 노래의 가사에 마음을 맡긴 채 창문 밖을 물끄러미 봤다. 난 그 노래를 들으며 내가 볼 수 없었던 홀로 걸어 집으로 돌아갔던 형의 뒷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아 우린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구나.

© 2015. 미러볼뮤직(강허달림)Inc. all rights reserved.
© 2015. 미러볼뮤직(강허달림)Inc. all rights reserved.

 

어쩌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

만나면 행복하여도

헤어지면 다시 혼자 남은 시간이

못 견디게 가슴 저리네

비라도 내리는 쓸쓸한 밤에는

남몰래 울기도 하고

누구라도 행여 찾아오지 않을까

마음 설레어보네

거리를 거닐고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

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

어쩌다 어렵게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서 우린 사랑을 하네.

- <외로운 사람들>, 강허달림


 외로움은 사람을 만나도 해소되지 않는다. 그건 그저 자신의 것이기에. 사실 우린 모두 알고 있다. 외로움은 그저 우리와 함께 가는 거라는 걸. 하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으니 누구라도 옆에 있어 주길 원한다. 형은 내가 아닌 누구와도 함께 있고 싶었을 거다.

 ‘형, 외로운 건 형뿐만이 아니야. 우리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야. 나도 요즘은 참 외롭다.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얘기를 나누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밀려오는 그게 난 뭔지 몰랐던 것뿐이었어. 그건 외로움이었구나. 형도 외로웠던 거지?’ 강허달림의 소울풀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난 버스 밖 풍경을 물끄러미 보며 형에게 하지 못할 이런 말을 홀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난 내일 날이 밝으면 형에게 전화를 걸어 별거 아닌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외로운 사람들이니까.

<참고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1sHBEdOASs


글쓴이: 순환선

소개: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월/수/금]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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