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첫 학기가 끝이 났다. 난 영상 제작 학과를 다니고 있는데, 대부분 영화과에선 종강 시기에 맞춰 졸업 작품과 워크숍 작품을 트는 시사회가 열리곤 한다. 코로나 시국 이후엔 좀처럼 시사회를 열기가 쉽지 않았는데, 최근 백신 접종을 비롯한 분위기 때문인지 우리 대학원에선 소규모로 워크숍 작품을 볼 수 있는 시사회를 재개하는 결정을 내렸다. 학부에선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던 내게 시사회라는 건 꽤 긴장되는 일이었다. 학교 내부에 있는 작은 시사실일 뿐이었지만,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담겨있는 게 아닌 스크린에 상영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랬다. 작품 촬영이 다른 팀보다 늦었기에 완성된 편집본이 아닌 버전을 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스크린 상영과 모니터 상영이 주는 감흥은 분명 다르다. 모니터는 개인적이지만, 스크린은 다수의 경험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 스크린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그 순간을 여러 명이 함께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영화가 대중 예술이 된다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린으로 내가 만든 영화를 틀고 여러 명이 함께 본다는 건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흥분되는 일이었다.
워크숍 지도 교수님에 따라 상영 시간이 나뉘었고, 난 우리 팀의 영화가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하자 최근엔 느낄 수 없는 활력이 느껴지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워크숍 영화 팀별로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은 올해 대학원에 다니면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서로의 영화를 본 건너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 너머로 어떤 긴장과 흥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내 영화 시사 시간이 다가왔고, 난 내 영화를 도와준 대학원 팀원들과 함께 시사실로 향했다. 길게 뻗은 학교 복도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시사실 위치를 알아내 걸어가는데 이상하게도 그 복도가 낯설게 느껴졌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 복도를 지나 저 끝에 있는 시사실로 들어가는 순간, 어쩌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세계엔 각자의 생각이 담겨있는 때론 지루하고 조악하지만 설레게 하는 영화들이 날 기다리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시사실의 문을 열었다. 어두운 시사실 안에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고, 그 위로 빛이 사람들의 얼굴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이드에 위치한 계단으로 걸어가 빈자리에 팀원들과 함께 앉았다.
두 편 정도의 다른 사람들의 단편영화를 봤다. 내 영화의 순서가 다가왔고, 옆자리에 앉은 팀원은 내게 이제 우리 차례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해주곤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스크린을 응시했다. 내가 연출한 영화가 시작됐고, 난 사운드 출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바로 느꼈다. 상영하는 기술팀에서 영화별로 사운드 조절을 하지 않았다는 건 이전 영화들을 보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유독 우리 팀의 영화 사운드가 작게 느껴졌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테스트 성격이 강한 시사이니까 그러려니 넘기려 했지만 마음 한쪽에 자리 잡은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관객들을 보기 시작했다. 지루해하진 않을까? 소리가 작아서 대사를 구별 못 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저 사람은 왜 핸드폰을 하는 거야? 소리 때문인가? 왜 저 사람들은 나가는 거지? 이런 온갖 잡생각을 하며 영화에서 보완해야 할 점들을 생각하던 중에 영화는 어느새 엔딩에 접어들었다. 내가 찍고 싶었던 그 춤이 스크린에 나오기 시작했고, 난 어쩌면 이거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의 얼굴에서 컷이 이뤄지고 영화가 끝이 났다. 난 그제야 긴장이 풀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작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이전 영화들에선 듣지 못했기에 난 순간 움찔했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팀원이 말을 걸어왔다.
“형 박수를 쳐주네요.”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고마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흥분이 뒤섞인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 작은 박수 소리가 무언의 응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응원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조용히 울렁거렸다. 그 뒤로 몇 편의 영화를 더 본 뒤 시사실에서 나왔다. 어두운 시사실에서 벗어나 밝은 복도로 나온 순간 느껴진 감정은 뭔가 짧은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난 이 짧은 꿈에 매혹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뤄낸 건 그래 봤자 이 짧은 꿈을 무사히 꾸고 나왔다는 것뿐이겠지만 어쩌면 이런 꿈이라면 몇 번 더 꿔도 괜찮지 않을까. 때론 작은 응원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 앞으로 갈 수만 있다면. 시사실에서 몇 명이 내게 선의로 베푼 그 응원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난 다시 현실로, 긴 복도로 걸어 나갔다.
글쓴이: 순환선
소개: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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