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신화와 문화

켈트 전사들이 입었던 것

파란 쫄쫄이는 아닙니다

2026.03.13 | 조회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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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공방 비둘기

천 년과 만 리의 장막 너머에서 온 이야기를 전해요.

켈트인은 뭘 입었을까?

이걸 논하기 전에 일단 학계를 수십 년 동안 뒤흔들어 온 초대형 폭탄을 하나 던져야 합니다.

 

“켈트인이란 무엇인가?”

 

...그 답은 오늘 말고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해야 할 말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다만 오늘은 이 정도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켈트인 (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 게일인 + 브리튼인 + 갈리아인 + (기타 등등...)

 

그리고 오늘 다루는 "켈트인"이란, 게일인 중에서도 주류인 아일랜드 게일인을 뜻합니다. 여기서부터는 "게일인"이라는 말을 쓰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켈트권이라고 여겨지는 다른 지역과는 매우매우 다를 수 있다는 점! 미리 알려드려요.

 

1. 알몸으로 돌겨어어억!!!!

켈트 전사의 스테레오타입
켈트 전사의 스테레오타입

아마 위 그림처럼 온몸에 파란 문신 하고 알몸으로 돌격! 하는 것이 많은 분들께 켈트 전사의 이미지일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로마의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고 쓴 «갈리아 전기»를 비롯한 책에 묘사되는데요,

브리튼과 갈리아에서는 어느 정도 비슷했다고 합니다만 적어도 아일랜드에서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만 옛 문학에서 알몸 돌격이 아예 묘사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일회성 퍼포먼스로 말이죠.

 

«플리아스의 소 도적(Táin Bó Flidhais)» 에서는 (온갖 정치적으로 치정적인 이유로) 코나흐타 왕성의 전사들이 모여 벽지의 한 요새를 공략합니다.

백전노장인 파라스 막 로이는 적장 알릴 핀과 일대일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요, 파라스가 뽑은 검은 그의 명검인 칼라볼그가 아닌 목검이었습니다.

누군가 파라스의 검을 바꿔치기해 둔 것이었죠.

 

(검이 바꿔치기된 사연 역시 사랑과 전쟁이었는데... 다음에 파라스 특집에서 얘기할게요!)

 

목검을 뽑고 당황해서 얼이 빠진 파라스를 알릴 핀이 한방에 때려눕혀 버립니다.

 

내 칼을 받아라 악당아!!
내 칼을 받아라 악당아!!

파라스가 패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그의 추종자 두하흐이나스가 칼을 쥐고 달려들지만, 두하흐는 창에 맞아 중상을 입고 이나스는 실드 차지에 맞아 데굴데굴 굴러 쓰러집니다.

장군들이 결투에서 패배하여 병상에서 골골대자 코나흐타 군대의 사기가 추락합니다. 적군의 공격에 속절없이 밀려나는 모습을 보며 한탄하던 시인 브리크레가 나섭니다.

 

전장의 서곡
전장의 서곡

“울라의 세 영웅이자 전쟁의 세 기둥이 한 필부에게 쓰러졌거늘,

셋이 합하여 단 한 사람도 쓰러뜨리지 못하다니 두고두고 조롱받을 일이라!

어찌하여 이토록 위대한 영웅들이 이 구석진 땅의 보잘것없는 성주에게 패할 수 있는고?

어찌하여 그 불명예에 그 누구도 복수하지 못하는고?

슬프도다, 슬프도다! 필부와의 싸움에서 쓰러져 땅바닥에 드러누운 나의 지주 파라스여, 슬프도다!”

 

 - «붉은 가지 이야기»에서 인용

 

네, 쓰러진 세 사람을 눈앞에서 디스했습니다.

 

격노한 파라스와 두하흐, 이나스는 알몸으로 벌떡! 일어나 분노를 불태우며 맹공을 펼쳤고, 그날 알릴 핀은 그의 성과 함께 최후를 맞았습니다. 해피 엔드!

 

이것이 바로 «플리아스의 소 도적»에 기록된 알몸 돌격의 비화입니다. 보시다시피 퍼포먼스성이 짙고, 무엇보다 현실이 아니라 문학입니다.

 

 

2. 일단 속옷부터 입으시죠

 

문학 얘기는 제쳐 두고, 그럼 실제 게일인은 도대체 뭘 입었느냐?

여성 남성 가리지 않고, 왕족 귀족 평민 노예 가리지 않고 모든 복식은 다음 국민 조합에서 출발합니다.

 

속옷 + 외투

 

네... 지극히 심플합니다. 다른 모든 복식은 위 조합에 실용적이거나 장식적인 요소를 더할 뿐입니다.

 

게일 복식의 알파이자 오메가, 레네
게일 복식의 알파이자 오메가, 레네

그럼 속옷부터 알아볼까요?

레네(léine)는 주로 리넨(돈이 썩어넘치면 비단)으로 만드는 통옷입니다. "속옷"보다 더 와닿는 말로는 셔츠, 튜닉 같은 말이 있겠네요. 실제로 현대 게일어로는 티셔츠를 뜻한답니다.

 

레네에는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아주 넉넉하고 널찍한 소매를 꿰매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여성의 레네는 드레스처럼 길었고, 상류층 여성의 레네는 (노동을 안 해도 된다는 증거로) 훨씬 더 길고 장식적이었습니다.

한편 남성의 레네는 길이가 다양한데, 실용성을 위하여 기장이 짧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세 유럽 대륙의 속옷(셔츠, 블라우스)은 단독으로 입고 내보여서는 안 되는, 현대의 메리야스나 난닝구 정도의 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레네는 단독으로 입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만능 의복이었답니다.

 

 

게일 상류층 남성의 모범적인 복식! 출처: https://www.gaelicattire.com/
게일 상류층 남성의 모범적인 복식! 출처: https://www.gaelicattire.com/

브라트(brat)는 외투 겸 망토 겸 모포입니다. 거의 100% 양털로 만들죠. 레네를 입은 뒤에 그 위에 브라트를 걸치면 완성입니다.

평소에는 저걸 코트처럼 걸치고 다니다가, 야외에서 숙박하는 등의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 이불처럼 덮고 잘 수도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생각보다 춥기 때문에 필수품이었지요.

 

브라트는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식적 요소이기도 합니다. 가문에 따라 온갖 다양한 색상과 도안을 사용했지요.

유럽 대륙 전장에서 깃발을 보면 어느 가문인지 알 수 있듯, 아일랜드에서는 브라트를 보면 어느 가문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한편 게일 관습법에 따라 브라트에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의 개수는 철저히 규정되었습니다. 왕과 왕비는 6색, 귀족은 5색 같은 식이죠.

특이하게도 시인과 학자는 왕과 마찬가지로 6색의 브라트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색상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단연 최고급 염료인 사프란색이었습니다. 위 사진의 아저씨가 입은 노란색이 바로 사프란색입니다.

 

 

3. 장식을 주렁주렁

 

게일인의 복식은 이렇게 간단합니다. 그러나 수백만 게일인이 천 년 동안 속옷이랑 외투만 걸치고 다닌 건 물론 아닙니다.

 

첨부 이미지

신분이 높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외투의 가슴 부분에 댤러그(dealg)를 달았습니다. "댤러그"는 "가시"를 뜻하며, 쉽게 말하자면 브로치입니다.

브로치의 재질은 귀금속이었으며, 물론 금이 가장 뛰어나고 그 다음이 은, 청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핀드리네(fiondruine)라는 정체불명의 흰색 합금이 있었는데, 이것은 금과 은 사이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난 바지만 입고 돌격하지!! Angus McBride 作
난 바지만 입고 돌격하지!! Angus McBride 作

트류스(triubhas)는 바지입니다. 앞서 남성용 레네는 기장이 짧은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요, 하체를 보강하기 위해서 바로 이 바지를 입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지는 따뜻한 남쪽에 살아 바지 따위 필요 없는 로마인(또는 "문명인")과 대비되는 추운 북쪽 "야만" 세계의 상징이었습니다. 아일랜드보다 더 추운 북유럽의 노르드인도 바지를 만들어 입었지요.

영어로 "바지"를 뜻하는 트라우저(trousers)가 바로 이 트류스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크리스를 두른 아저씨. 출처: https://www.gaelicattire.com/
크리스를 두른 아저씨. 출처: https://www.gaelicattire.com/

크리스(crios)는 허리띠입니다. 허리띠는 원한다면 착용하고 필요 없다면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부가적인 요소였습니다.

그러나 전사들은 거의 반드시 크리스를 착용했습니다. 허리에 칼을 차야 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노동자들도 크리스를 착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레네 위에 이나르를 입은 마네킹. 출처: https://www.gaelicattire.com/
레네 위에 이나르를 입은 마네킹. 출처: https://www.gaelicattire.com/

레네와 브라트 사이에 이나르(ionar)라는 조끼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필수는 아니지만 전사들은 대체로 착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투에서 추가 방호는 언제나 중요하죠.

 

현대적인 운동화에 비하면 심각하게 불편할 것 같네요.
현대적인 운동화에 비하면 심각하게 불편할 것 같네요.

게일인이 가장 흔하게 신던 신발은 위 사진과 같은 형태의 쿠아란(cuarán)이었습니다. 널찍한 가죽을 조이고 끈으로 묶기만 하면 완성되는, 원시적인 재봉 기술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죠.

아일랜드에서 신발은 복식의 필수품이 아니었습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맨발은 일반적이었지요.

다만 돈이 많은 사람들은 좋은 쿠아란이나 샌들, 혹은 금속 신발을 신었습니다. 명가의 영애들이 핀드리네 신발을 신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4. 켈트 전사 스타터키트

 

근세 아일랜드의 경무장 정예보병 케하른
근세 아일랜드의 경무장 정예보병 케하른

그럼 게일인 전사들은 뭘 입고 다녔을까요?

전사들의 복식을 파악하려면 먼저 아일랜드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메타를 파악해야 합니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형태의 전쟁은 소 약탈(táin)이었습니다. 소수의 정예 전사들이 몰래 습격해서 적 몇 명을 썰어 버리고 가축을 약탈해서 후다닥 달아나는, 이른바 히트 앤 런이죠.

이런 메타는 당연하게도 극단적인 기동성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요구는 게일 전사들의 극단적인 경무장을 낳았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전신 판금 갑옷이 개발될 때에도 게일 전사들은 레네와 브라트를 고집했습니다. 전장에서 상식이라는 투구조차 대체로 거부했습니다. 소수의 중무장 귀족들은 사슬갑옷이나 가죽갑옷으로 무장했지만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위 그림은 근세 아일랜드의 자유민으로 구성된 경무장 정예 보병 케하른(ceithearn)을 묘사하는데, 아마도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복식을 가장 훌륭하게 요약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명한 클레이모어가 게일어로
유명한 클레이모어가 게일어로 "큰 칼"을 뜻해요

이런 전장 메타는 전사들의 무기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는 중갑이 발전하자 베는 무기가 도태되고 찌르는 무기가 널리 쓰였는데, 아일랜드에서는 천옷만 격파하면 되었기에 베는 데에 특화된 널찍한 장검, 클리우(claíomh)가 대세를 점했습니다.

 

 

5. 킬트는 말고요

 

킬트 입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더들의 상징, 하이랜드 차지
킬트 입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더들의 상징, 하이랜드 차지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사실은, 팬티 없이 입는 것으로 유명한 킬트(kilt)는 아일랜드 복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킬트는 근세 스코틀랜드에서 발달한 독특한 의복으로, 근현대 이전 아일랜드에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입는 분들은 근대 이후 켈트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읽어 주신 구독자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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