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9일 에세이레터- 광장에 서 있는 남자

  광화문에 관해 쓰게 됐다. 뭘 쓰면 좋을까? 광화문광장에 가본 게 너무 오래전이라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나마 작년에 읽었던 윤대녕 작가의 소설에서 주연 캐릭터가 일갈했던 게 떠오르긴 하다만. “빌어먹을! 광화문에 누가 있게요. 무거운 갑옷에 칼자루를 들고 날마다 소음공해에 시달리는 이순신이라는 사내뿐이지.”라고. 그렇다. 광장에는 이순신이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영웅 충무공 이순신. 충무공에 관한 내 기억을 써보면 어떨까 싶다.

  사람들은 충무공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이순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떠올릴까? 04년에 방영했던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14년에 개봉한 영화 <명량> 등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내 경우는 『난중일기』다. 나는 『난중일기』로 이순신을 처음 만났는데, 영상매체 이상으로 충무공의 매력을 소상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에는 그의 생생한 목소리가 가득 담겨있기 때문이다.

  『난중일기』를 통해 살펴본 충무공은 소탈하고 무난했다. 운동과 여흥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자, 동료·상사가 벌이는 사내정치에 시달리는 직장인이었고, 과로로 스트레스받다 못해 걸핏하면 앓아눕는 환자이기도 했다. 또한 아들과 어머니의 부고에 눈물짓는 가장이었으며, 그럼에도 단 하루도 칼을 놓지 않는 충직한 군인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 건지 궁금했다.

  나는 명량해전을 기록한 일기가 중요한 단서라고 보았다. 칠천량의 패배로 조선 수군이 풍비박산 난 지 얼마 안 되던 때, 백의종군하던 충무공은 수군을 수습하라는 왕명을 받고 해남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불과 열세 척의 함선으로 백여 척의 일본 함대를 저지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겁에 질린 조선군 장병들은 대열을 이탈해 슬금슬금 뒤로 빠지기 시작한다. 1597년 9월 16일 명량해협은 절망이 지배하는 악마의 바다였다.

  대장선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충무공은 도망갈 준비하던 배를 불러 질책했다. “네가 내 손에 죽고 싶으냐? 여기서 도망가면 어디 가서 살 것이냐?” 나는 이 말에 많은 것이 함축돼있다고 느꼈다. 정치공작만 일삼던 직장동료(원균)는 없어졌지만 질투의 화신 직장오너(선조)는 건재했다. 이순신의 유일한 선택지는 눈앞의 일본 함대를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앞서 9월 15일 이순신은 장수들을 모아놓고 오기의 말을 인용한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 충무공은 배수진으로 전투에 임했고, 목표를 달성했다. 그날 명량은 구원의 바다가 되었다.

  광장의 이순신에 관한 기억을 더듬었다. 한반도의 삼라만상이 교차하는 광화문광장. 충무공은 그곳에 서 있다. 마치 또 다른 전쟁을 지휘하는 것처럼 늠름하게. 동상을 보고 있자니 궁금한 게 생겼다. 광장의 이순신에게도 전설이 있을까? 밤 12시가 되면 교통경찰 대신 음주운전 단속을 한다든가, 옛 직장오너의 조상인 세종대왕 동상과 싸운다든가 하는. 아쉽게도 이순신 동상은 침묵 중이었다. 50년 넘게 침묵 중이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러나 『난중일기』 애독자만은 예외인 거 같다. 나는 충무공의 잔소리―도망갈 곳은 없으며 매 순간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를 잔뜩 들을 수 있었다. 소음공해에 아랑곳없이 광장을 지키는 충무공에게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대구 동구 망우당공원의 영남제일문

망우당 곽재우 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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