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24일 에세이레터- 이야기꾼의 낭만

  오늘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제 나이가 슬쩍 드러날 텐데, 이참에 구독자분들이 제 나이를 알게 되어도 뭐 어때?란 생각이 들어요. 00살의 무화과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하고 뉴스레터를 읽어 주셔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

  저는 ‘멸망’이란 키워드와 나름 가까운 편인 것 같아요. 제가 태어난 해에는 ‘올해가 바로 위대한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멸망의 해다’라는 이야기로 떠들썩했다고 하네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순간 전산 시스템이 엄청난 오류를 일으켜 문명이 붕괴할 거라는 둥… 무언가 난해하고 급진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보고 흔히들 ‘세기말 감성’이라고 하는데, 그때의 세기말은 멸망 가득한 감성이었다니. 이만한 세기말 감성은 앞으로도 찾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리고 떠들썩했던 또 다른 멸망론이 있었어요. 이번엔 ‘고대 마야인들이 예언한 종말이 바로 이번 해에 일어난다. 마야인들이 만든 달력의 끝이 올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고요. 믿거나 말거나 마야인들이 예언했다는 그 멸망의 해는 제가 첫 교복을 입게 되는 해였는데, 그때 정말 지구가 사라지나?란 생각에 종종 불안해하면서 엄마를 붙잡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거란 증거를 알려줘!”라고 말하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전 어릴 때부터 로망이 참 많은 편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교복 입고 00 하기’ 시리즈였거든요. 만약 종말론이 사실이라면 교복을 딱 1년밖에 입지 못하고 사라지는 건데, 그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더라고요. 제 걱정 가득한 마음에 불을 지를 기세로 그 해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까지 개봉했었는데, 종말론이 진짜일까 봐 무서워서 한참 뒤에 지구가 아직 망하지 않은 걸 확인하고 그 영화를 봤던 기억도 있어요. (여담으로 ‘교복 입고 00 하기’ 시리즈에는 교복 입고 서울 어딘가로 놀러 가기, 교복 데이트하기, 교복 입고 친구들이랑 이미지 사진 찍기, 야자 하기가 있었어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로망이란 거창한 이름 치곤 정말 별거 아닌 것들이 많고, 로망이라 치기엔 애매한 야자 같은 것들도 껴 있어서 좀 우습긴 한데, 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감상도 남길 수 있는 거겠죠? 지구가 그때 망하지 않아서 참 다행!)

  처음 교복을 입던 그해 제가 종말론이 틀렸다고 이야기해달라고 졸랐을 때 엄마는 “종말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란 말은 해줄 수 없지만, 만약 종말론이 진짜라면 다 같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거니까 혼자 남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을 거야.”라고 답해 주셨어요. 처음엔 이게 무슨 위로냐고 투덜거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엄마가 해준 말씀을 곱씹게 되더라고요. 어쩌면 정말로 무서운 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멸망의 두려움보다도 온전히 혼자가 되어 오직 나뿐인 고독을 견뎌야 하는 시간일지도요.

  아무튼 멸망론도 유행의 일종인지, 두 멸망론이 나왔을 땐 이런저런 음모론과 상상들로 시끌시끌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거대한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멸망론을 이야기하며 두려워하는 것도 조금 더 순진한 시절에나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마야인들이 만든 달력이 끝이 났으니 이제 종말이 올 거라는 주장보다는, 우리가 만든 쓰레기가 너무 많아져서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고 사라지는 동물들이 많아질 거란 예측이 훨씬 설득력 있고 피부로 와 닿는 두려움이니까요. 환경 보호를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포장재를 바꾸고 있다고 말하는 기업들이 늘어가고 다양한 비건 식당과 레시피가 인기를 끄는 걸 보면, 이제 우리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다는 거대한 멸망보다는 우리에게 슬금슬금 다가오는 진짜 ‘나쁜’ 변화를 더 걱정하는 사람들, 전설 같은 멸망론보다는 진짜 벌어지는 현상들에 예민한 어른들이 되었나 봐요. 어쩌면 멸망론도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좀 더 순진한 이야기꾼의 극단적인 낭만(?) 일지도요.

✨구독자 님의 코멘트로 오롯이를 완성해주세요

오늘의 에세이를 읽고 든 생각을 오롯이 남겨주세요!

짧아도, 길어도 좋아요. 개인적 경험? TMI? 대환영이죠🥰

남겨주신 코멘트는 필진에게 전달돼요.

다음 주 레터에 실릴 기회까지💌

▶ 지난 주 무화과님의 에세이를 읽고 구독자님들이 남겨주신 감상이에요✉

▶ 무화과님의 지난 에세이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