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25일 에세이레터- 멸망 앞에서 희망을 노래하기

  제가 첫 주차 글을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라고 마무리 지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계속”이라는 단어와는 반하게, 오늘 글의 주제는 멸망입니다. 세 번째 주제가 멸망이라니, 참 재미있는 조합이죠?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멸망론자’로 불립니다. 제가 틈만 나면 ‘2040년에 지구는 멸망한다’라는 말을 하고 다녀서인데요, 혹자는 제게 ‘그건 너의 희망 사항’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직장 동료들에게도 이러한 주관을 설파했습니다. 미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되었지만,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 행성의 온도는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6차 보고서에는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의 온도가 1.5℃ 상승하는 시나리오가 10년 이상 앞당겨질 것이라는 예측이 담겼습니다. 올해 왕립네덜란드기상연구소(KNMI)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못한다면 2100년에는 네덜란드 해수면이 지금보다 1.2m 상승한다고 발표하기도 했고요. 만약 지구 온도가 3.5℃ 이상 상승하면 세계 식량 공급 시스템이 붕괴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기후 변화가 먼일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수능 한파’를 아시나요? 수능 날이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하나의 지표로 기능해왔기 때문인데요, 이도 옛말입니다. 2021년도 수능 날에는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 15~20℃를 기록하는 이상 고온이 관찰되었기 때문이죠.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작년 수능 날은 유난히 따뜻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후변화가 체감 가능한 지경에 이르며, ‘기후 우울증’이라는 개념이 새로 등장했습니다. 이는 “기후 위기로 미래가 사라졌다는 인식이 슬픔, 상실감,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으로 이어지는 심리 상태”를 일컫는데요, 해외에서는 ‘기후 불안(climate anxiety)’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미국 심리학회(APA)의 2017년 보고서에 공식적으로 등장하기도 했죠. 저명한 청소년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이 기후 우울증을 심하게 앓으며 몇 달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고 합니다.

  눈앞에 다가온 멸망의 징후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까요? 저는 요새 계속 멸망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인이란, 계속해서 멸망에 대해 노래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요즘 기형도 시인과 박인환 시인에 푹 빠져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고요. 이 두 시인은 모두 절망과 허무를 기반으로 한 시 세계를 구축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에 쓰인 박인환 시인의 “검은 신이여”는 전쟁이라는 처참한 풍경 앞에 크게 절망한 시인의 절규를 있는 그대로 나타냅니다.

… 검은 바다에서 연기처럼 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내부에서 사멸된 것은 무엇입니까

일년이 끝나고 그 다음에 시작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참혹한 전쟁 속에서 그는 인류의 종말을 보았습니다. 전쟁 이후의 인간은 전쟁 이전의 사람들과 같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사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앞에서는 시간조차 의미가 없습니다. “일년이 끝나고 그 다음에 시작되는 것,” 다시 말해 ‘미래’가 이미 보이지 않기 때문이며, 그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그 전의 일년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포와 절망의 전염 및 세습은 기형도 시인의 대표작 “입 속의 검은 잎”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쓰인 이 시에는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공포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고, 망자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시대 속에, 택시 운전사로 대표되는 소시민의 긴장은 그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는 모습으로 대변되며, 나 또한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할” 정도로 시 속의 세계는 불신이 팽배한 곳입니다. 종말 앞에서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더이상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 이 두 시인은 종말 앞에 선 인간의 두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멸망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얘기가 한창 유행한 적이 있었죠. 비록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저는 그 당시 정말 지구가 멸망하리라 반쯤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라진다면, 어떤 방식으로 종말을 맞게 될지, 다음날 눈을 뜨면 세상이 사라져있는 것인지 상상을 해보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멸망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점점 실현되어가는 지금, 저는 마침내 기형도와 박인환 시인의 절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멸망이 다가온다고 해서 우리가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에는 기업들이 페트병에 ‘에코 라벨’이라고 하는, 쉽게 벗겨서 버림으로써 재활용이 용이하게 하는 기술을 적용하고 있죠. 빨대가 없는 종이팩들도 나오고 있고, 마트에서는 비닐봉지를 유상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람들은, TV와 뉴스에서 인류는 이미 멸망한다고,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내보낼 때에도 변함없이 제로웨이스트 가게에서 샴푸를 사고, 깨끗이 씻은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기형도 시인이 쓴 “정류장에서의 충고”라는 시의 한 구절을 전합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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