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8일 에세이레터- Hands of protest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롯이와 함께 평안한 한 주 되셨나요?

  오롯이의 이번 주 주제는 ‘광화문’입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하나씩은 광화문이라는 장소에 연관된 추억이 있을 것 같아요. 광화문에서 이별을 한 사람도 있겠고, 오히려 첫 데이트 장소일 수도 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입사 초기에 외근을 나가며 광화문 거리를 거닐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 나가보는 외근이라 무척 설레기도 했고, 또 모두가 일하는 시간에 나 혼자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던 그 이질적인 느낌이 아주 새로웠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어릴 때 ‘광장’이라는 단어의 ‘광’자가 광화문에서 온 줄 알았답니다. 항상 ‘광화문광장’이라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광’이라는 흔하지 않은 글자가 반복되어 그런 것 같아요. 물론 둘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광화문(光化門)은 ‘빛 광’자에 ‘될 화’자를 써,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을 갖고 있죠. 이에 반해, 광장(廣場)은 ‘넓을 광’자를 써, 단순히 ‘넓은 빈터’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구분이, 아직도 유효할까요? 한국의 현대사를 비추어보면, 광화문 = 광장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듯도 합니다.

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광장의 사전적 의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제1 의미는 역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廣場)”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로부터 기원합니다.

  그리스의 ‘아고라’는 단순하게는 ‘집합 장소’를 의미하는데요, 초기에 자유민들이 ‘아고라’에 모여 의회의 결정문을 듣던 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아고라의 기능도 약간 변화하여, 경제활동이 벌어지는 시장과 토론장, 그리고 공연장으로써의 기능도 수행했다고 하죠. ‘아고라’라는 이름은 이런 두 가지의 기능을 조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물건을) 구매하다’라는 동사 ἀγοράζω(agorázō)와 ‘공공장소에서 연설하다’라는 동사 ἀγορεύω(agoreúō)가 합쳐져 후대에도 길이 사용될 개념인 ‘아고라’라는 단어가 완성된 것이죠.

  저는 이러한 광장을 생각하면, 최인훈 작가의 중편 소설 <광장>이 떠오릅니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라는 첫 문장으로 유명한 이 소설은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남북한의 이념 대립을 남한의 대학생 ‘이명준’이라는 개인의 여정을 통해 그려냅니다.

  소설 속에서, 명준은 계속해서 ‘광장’을 찾아 헤맵니다. 그에게 남한의 광장은 진정한 광장이 아닙니다. 남한 정치의 광장은 약탈과 폭력, 살인이 자행되며, 모두가 자신의 욕망만을 앞세우는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입니다. 이는 결국 모두가 광장에 대해 불신하며, 자신만의 방, ‘밀실’로 도망치는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의견이 자유로이 공유되며,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져버린 채로, 각각 밀실에 은둔하며, 오로지 자신의 밀실을 더욱 풍족하게 가꾸는 데에만 열중하는 남한의 상황에 절망한 명준은 북으로 향합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그는 북한이야말로 자신이 상상한 ‘광장’이 실현되어있는 곳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념을 앞세운 ‘광장’만이 존재하는, 밀실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사회주의의 위대한 혁명 아래 실제 인민의 삶은 궁핍하기 짝이 없었고, 이러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금지된 곳, 그것이 바로 북한이었습니다. 명준이 상상했던, 민중의 가슴에서 들끓던 “붉은 심장의 설레임”도, “우리 가슴속에서 불타야 할 자랑스러운 정열”도 없는 북한에서, 명준은 결국 자신만의 밀실에 더욱 은둔합니다. 

그는 가슴에서 울리는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 .

무디게 울리는 소리. 광장에서 동상이 넘어지는 소리 같았다

  저는 <광장>이라는 소설을 생각하면, 에콰도르 화가인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Manos de la Protesta>라는 작품이 떠오릅니다. 과야사민 특유의 화풍인 과장되고 입체적인 손과 뒤틀린 얼굴, 어두운 분위기가 여지없이 표현된 이 그림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어쩌면 작품 속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구부러진 손가락들이, 또 크게 벌려진 인물의 입이 명준이 마주한 깊은 절망을 상기시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를 집어삼킬 듯한 푸른 어둠이, 명준이 최후의 안식처로 택한 “푸른 광장”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지도요.

  이 작품의 이름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시위하는 손’ 또는 ‘시위의 손’입니다. 과야사민은 멕시코 벽화운동의 영향을 크게 받아, ‘예술은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는 평생을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사회의 불평등이나 힘없고, 타자화된 토착민들, 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알리는 데에 헌신했습니다. <Manos de la Protesta>는 그중에서도 1952년부터 1993년까지 작가가 만든 작품을 일컫는 "La edad de la ira (분노의 시대)”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여러분, 혹시 광화문광장 정중앙에 서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광장 한가운데 서서 한 바퀴를 돌면 머리가 핑그르르 아득합니다. 이 장소에 쌓인 수많은 역사의 궤적과 분노한 민중의 외침, 그리고 시위하는 손의 물결들이 한 번에 제게 불어오는 느낌입니다. 광장을 둘러싼 고층빌딩들이 저를 향해 쏟아지고, 눈을 감아도 환한 촛불들이 하나둘씩 밝아옵니다.

  결국 광장에 나서는 사람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잔뜩 굽어진 손가락에 촛불을 쥐고, 여러 사람이 만들어낸 소용돌이에 기꺼이 휘말리는 것. 그러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광장에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명준은 이렇게 말합니다. “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물러가는 것”이라고요. 여러분은 동굴 속에 계신가요? 아니면 광장에 계신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이 광화문광장은 과연 명준이 상상한 ‘광장’이 되었던가요?

  저는 이 글을 광장이 최초로 공개된 『새벽』지에 실렸던 1960년 11월의 서문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사람은 명준뿐만이 아니라 용기 있는 모든 이들일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 대한 존경을 이곳에 전합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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