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7일 에세이레터- 앉아, 기다려

  기다림의 달인이 있다. 바로 우리 집 강아지 볼트. 내가 “기다려!”하면 눈앞에 간식이 있어도 꾹 참고 잘 기다리는 멋진 일곱 살 골든 리트리버다. 누가 리트리버 아니랄까 봐 사람이라면 다 좋아하는 우리 볼트지만, 나를 보면 유독 더 반가워하는 것 같은 기분은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겠지?

  하지만 볼트는 청주에, 나는 서울에 산다. 그래서 우리 볼트는 내가 “기다려!” 하지 않아도 늘 나를 기다린다. 그나마 대학생일 땐 어차피 비대면 수업이니까 평일에도 자주 보러 갔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좀처럼 짬이 안 난다. 평일엔 하루종일 일하고, 주말에는 약속도 많고 취미생활도 해야하고. 아, 최근에는 오롯이 원고도 내야 했다 (정보: 오롯이 원고 마감은 매주 월요일 오후 12시이다). 그러다 보면 주말은 어느새 눈 깜짝할 새 없이 지나가고, ‘이번 주에는 진짜 볼트 보러 가야하는데…’ 하는 나의 다짐은 실현되지 못한 채 또 한 주 유예된다. 

  솔직히 말하면 별 하는 일 없이 쉬기만 하는 주말에도 볼트를 보러 가는 건 꽤 큰 결심이 필요하다.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짐을 싸고, 4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역까지 가서 또 한 시간 반 동안 청주 터미널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탄 다음, 마지막으로 차를 타고 30분 정도를 더 가야 비로소 볼트가 있는 청주 집에 도착한다. 사실상 거의 국내 당일치기 여행 급 코스라서,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몸이 안 따라줄 때가 많다. 조금 밍기적거리는 새 시간은 또 벌써 일요일 오후. ‘이번 주에도 또 못 갔네…’ 하면서 주말 저녁이 저물기 일쑤다.

  결국 이런저런 핑계로 내가 볼트를 보게 되는 건 3, 4주에 한 번꼴이다. 그러면서 나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지, 누굴 만날 때마다 “이번 주엔 진짜 볼트 보러 가려고 했는데 나온 거다”라며 농담인지 아쉬움 섞인 넋두리인지를 한다. 그래서 행복하기만 해야 할 나의 황금 같은 주말은 온전히 신나지 못하고 온전히 게으르지 못하다. 늘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아쉽고 미안하고, 가슴 한구석이 저릿저릿 뭉클하다. 머릿속에 볼트의 그 커다랗고 해맑은 얼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프로펠러 치는 꼬리, 놀아달라고 목줄을 입에 물고 달려오는 모습이 떠오르면, 나는 행복하다가도 꼭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런 미안함과 아련함이 무색하게 볼트는 나만 보면 신나서 난리다. 기껏해야 한 달에 며칠, 아니 다 합치면 몇 시간 못 놀아주는 내가 뭐가 그리 좋다고. 자고 있다가도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기다렸다는 듯 깨서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긴다. 빠질 듯이 세차게 꼬리를 흔들고, 얼른 장난감을 물어오고, 내 다리에 몸을 부비고, 산책하러 가자고 작게 낑낑댄다. 볼트는 말을 한마디도 못 하지만, “나 너 엄청 그리웠어! 너무너무 반가워!”를 온몸으로 쩌렁쩌렁 외친다. 

  그리고 기다림의 크기는 곧 간절함의 크기와도 같기에 나는 그 순수하고 커다란 사랑 앞에서 행복한 죄인이 된다. 매번 ‘더 자주 올게’,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게', ‘더 사랑할게' 하고 작게 다짐할 뿐이다. 볼트라는 강아지를 통해 배운 기다리는 일의 숭고함은 다른 방식으로는 영영 깨닫지 못했을 종류의 깨달음이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아주 외롭고 간절할 수 있다는 것도, 볼트가 아니었으면 모를 일이었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줘서일까, 볼트는 나에게도 매일 조금씩 간절한 존재가 되어간다.

  나도 항상 볼트를 기다린다. 볼트가 나를 기다리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많이. 그리고 그 ‘아주 많이'는 매일 더 커지고 있어서, 언젠가는 나도 볼트가 나를 기다리는 만큼 볼트를 기다리게 될 것만 같다. 그보다도 시간이 더 지나면 그땐 내가 더 많이 기다리게 될까? 볼트는 대답해주지 못하겠지만, 나는 또 그냥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구독자 님의 코멘트로 오롯이를 완성해주세요

에세이 감상 남기기

이번 주 '기다리는 일'을 끝으로 <오롯이 프로젝트 시즌 1>은 마무리됩니다.

오늘의 에세이 혹은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감상을 공유해주세요!🥰

남겨주신 코멘트는 필진에게 전달됩니다.

▶ 지난 주 상어님의 에세이를 읽고 구독자님들이 남겨주신 감상이에요✉

▶ 상어님의 지난 에세이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