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7일 에세이레터- 서울의 얼굴들

  외국인들이 서울에 오면 흔히 놀라는 점이 도시 하나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서울이 크다는 점이래요. 서울 안에서 놀러 다닐 때 동선을 잘못 짜면 지하철로 엄청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해서 답답했던 때들을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선지 같은 서울 안에서도 서울 구석구석은 다른 얼굴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막연히 그렸던 ‘도시 느낌’에 가장 가까웠던 시끌벅적한 강남, 언덕 위 한옥 찻집에서 달달한 차를 마셨던 북촌, 대학가의 즐거움이 동실거리는 듯한 신촌... 서울의 많은 조각 중 광화문은 여러분에게 어떤 얼굴인가요?

저는 좀 촌스러운 사람이라 서울하면 남산타워가 꼭 생각나요.

  예전엔 광화문 하면 늘 시위가 생각났어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어떤 사람들이 어떤 규모로 어떤 의견을 전하는지는 달랐지만, 신문에서 이야기하는 시위들이 "광화문 광장에서"란 말을 달곤 했으니까요. 이후에 실제로 몇 번 가보니 광화문은 제가 생각한 그 이미지와 들어맞으면서도, 의외로 무심한 이미지가 인상 깊게 다가왔던 기억이 나네요.

  어디까지를 광화문이라고 부를지는 애매하지만, 광화문역 근방의 종각과 종로까지 포함한다면 이름 한 번쯤 들어본 기업들이 즐비한 동네라는 게 직접 가본 광화문에서 느낀 점이었어요. 한참 첫 사회생활을 준비하느라 ‘기업이 저렇게 많은데 내가 갈 곳 한 자리 찾기가 힘드네’란 생각에 더 그렇게 바라본 것 같기도 하고요. 회사들이 가득 들어찬 도시 안에서 모두 다른 얼굴과 이름을 갖고 순간순간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얼핏 보면 비슷한 옷차림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며 왔다 갔다 하는 바쁜 직장인들이 가득해 보였거든요(나중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그 표정과 분위기에 공감하게 되었지만요). 바쁜 발걸음 사이에서 서로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은 별로 없다고 말을 건네는 듯한, 무례함은 없지만 건조한 무심함이 떠다니는구나 생각하곤 했어요.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 수많은 사람들과 서로에게 관심 가질 여유가 많지 않은 직장인들이 한데 모인 동네, 열정과 무관심함이 섞인 얼굴을 가진 동네가 제가 생각하는 광화문인 것 같네요. 그래서인지 ‘광화문 연가’라거나 ‘광화문에서’ 같은 노래를 들으면 ‘광화문하고 사랑을 엮다니 신기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내가 아는 광화문은 그런 분위기가 아닌데, 운치를 따질 거면 북촌 연가가 되어야 하지 않나 같은 유치한 생각을 하곤 했고요. 어쩌면 그 노래가 쓰일 때의 광화문은 좀 달랐거나, 노래를 쓴 사람을 두근거리게 했던 기억이 광화문에 남아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언젠가는 제가 생각하는 광화문의 얼굴이 연가에 어울리게 바뀔지도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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