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409] 사랑하는 나에게 생일 축하를 건네다!

 나의 탄생화는 벚꽃이다. 누군가는 낭만있다 할지라도 어렸을 땐 그게 참 싫었다. 너무 흔히 보이는 꽃이라서 싫었고, 한 때 아름다웠다 금새 져서 싫었다. 무엇보다 빛나는 봄의 절정인 벚꽃을 가지고 태어났는데도, 나 혼자 봄에 어울리지 못하는 것만 같아 싫었다. 흔히들 가을 탄다고 하는데, 나는 봄을 탄다. 한 해의 시작인 1월을 지나, 음력의 시작인 2월도 건너, 한 학기의 시작인 3월마저 지난 4월의 시작은 거짓말이다. 모두가 가벼운 농담으로 즐겁게 웃고 떠드는 4월의 첫 날에, 나는 제발 오늘이 4월인 게 거짓말이라고 해달라 빌고만 싶었다.

 4월엔 곧 새로운 시작이라는 핑계로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미룰 수가 없다. 또 1년의 두 번째 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어떤 성취가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어쩐지 내 손 안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에 축축 쳐지곤 했다. 흩날리는 꽃잎을 잡으려는 시도처럼 나의 노력 역시 결과로 남지 않고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실은 꽤나 열심히 살았지만.

 이런 복잡한 생각들은 대부분 3월의 마지막에서 4월 초에 극에 치닫는데, 다행히도 나의 생일 역시 4월 초입이라는 점이다. 침대에 누워 해파리처럼 둥둥 널브러져 있는 나를 건져 주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이 건네주는 축하의 말이다. 나의 모교는 기숙사형 학교였다. 모든 순간이 행복하진 않았지만 좋은 기억이 참 많다. 그 중에서도 정말 좋은 기억은 생일날, 12시 땡. 하면 좁은 면학실에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던 친구들이 모두 생일 축하 노래를 속삭여준 것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긴 손편지를, 대면대면 인사만 하는 친구들은 자그만 쪽지를, 모두들 적어도 축하한다는 말은 꼭꼭 해주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특별한 하루이길 바라는 기대와는 다른 똑같은 하루라는 사실에 조금은 실망도 하지만, 생일은 여지없이 좋은 날이다. 올해의 생일은 조용하고 소소하게,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와인을 마셔서 즐거웠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승희와 전화할 수 있어 감사했다. 중학교 친구에게 축하 연락이 와 반가웠다. 어느 날엔 오늘이 생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생일엔 내가 받는 사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는 내가 무섭도록 무던하다고 한다. 나에겐 삶을 지탱할 만한 무거운 욕심이나 강렬한 마음 같은 게 부족하다. 그래서 늘 뜨거운 열정으로 스스로를 태워 무언가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생일에는 나의 미지근한 온도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내가 언젠가 건넸던 따스함이 돌아온다. 비록 뜨겁고 강렬하진 않을지 언정, 축축한 밤에 꺼내보아 내 구김살이 드린 그림자를 덮어볼 만 한 정도의 따듯함. 그래서 가끔 생일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보다.

 비록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닐지언정 나는 살아있고, 계속해서 살아간다. 이번 생일의 다짐. 살아가는 동안 받은 사랑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나눌 수 있길 바란다. 미지근한 사람이지만 지니고 있는 사랑의 총량 만큼은 자신 있다. 아끼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헤프게 사랑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순간의 나를 사랑하고, 피어오르는 나의 감정을 아껴주고, 내가 마주하는 남을 거리낌 없이 사랑해야지. 올해의 생일도 어김없이 즐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