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409]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고, 세계를 소멸시키는 작은 죽음이다.

이번 글은 듄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고, 세계를 소멸시키는 작은 죽음이다.

 영화 ‘듄’의 등장인물 마고트 펜링이 계속해서 외우는 주문이다. 손이 벌벌 떨려도, 목이 바싹 말라도 그녀의 눈만은 고요하다.

 나에게 듄은 믿음과 두려움에 대한 영화다. 모든 인물들이 각기 저마다의 두려움을 품은 채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 폴의 주인공의 어머니 ‘마고트 펜링’의 두려움과, 이를 이겨내는 방법이 가장 인상 깊었다. 듄은 ‘세계를 구할 선지자가 도래하는 이야기’이다. 그 가운데의 주인공인 폴 (티모시 샬라메)가 있다. 영화에는 마녀집단 ‘베네 게세리트’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세계를 구할 선지자를 잉태한다는 거대한 공통 목표를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마고트 펜링은 아들 폴을 낳았고 그를 선지자로 키우겠다 마음 먹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겐 아들을 언제 잃을지 모른다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녀는 두려움을 담담히 직면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주어진 고통을 이겨낸다. 영화에선 각색되었지만, 원작에 나오는 베네 게세리트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두려움은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나간 길을 살펴 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 있으리라."

 무언가를 믿는다는 건 나의 근육 한 줄기를 그것과 공유하는 것과 비슷하다. 믿음은 나를 구성하는 무언가가 되고 곧이어 내 자신이 된다. 이렇듯 대부분의 믿음은 개인의 너무 깊숙한 곳에 있어 마음대로 욱여넣을 수도, 꺼내어 바꿀 수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여러 가치 중에 믿음이 가장 무섭다.

 베네 게세리트의 기도문이 내게 와닿은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자신을 이루는 뿌리인 사람을 누가 베어낼 수 있을까. 마고트 펜링의 두려움이 상실과 닿아있다는 사실 역시 그녀의 강인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상실의 두려움에 주목하니,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박완서의 소설 <나목>이 떠올랐다.

 <나목>은 전시 소설로, 주인공인 경아는 전쟁으로 인해 오빠들을 잃는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틀니조차 끼지 않으신다. 경아는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혹시 자신의 손으로 오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아닐까 하는 자책에 매일을 휘청인다. 그녀를 지탱해주는 것은 전쟁의 그림자가 자신에게만 드리우지 않으리라는 저주에 가까운 믿음과 자신을 구원해줄 무형의 사랑에 대한 희망이다. 경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을 원하는데, 그 대상인 옥희도는 그녀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며 이런 말을 전한다. “자기가 혼자라는 사실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여. 떳떳하고 용감한 고아로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봐. 사랑도 꿈도 다시 시작해봐.”

 경아는 휘청일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옥희도의 나목 그림을 보며, 봄에 대한 믿음을 되새긴다. 고목이 아닌 나목으로 살게 하는 것은 다가올 계절에 무언가 피워내리라는 믿음이다. 다음은 <나목>을 같이 읽은 독서모임 친구들 모두가 좋아한 구절이다.

 내가 형벌을 받는 동안 조금도 가엾지 않았다는 게 지금도 대견스럽게 회상됐다. 그렇지 나는 결코 나를 가엾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나는 내가 조금씩 소중스러워졌다.

 나를 결코 가엾게 내버려 둘 수 없는 힘, 두려움을 직면하는 힘은 ‘믿음’에서 나온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것들을 마주하고 선택한다. 마고트 펜링과 경아를 보며 나는 나의 선택이 최선임을 믿기로 했다. 모두들 후회없는 선택을 하라고 하지만, 살면서 어떻게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후회스러운 선택일지언정, 잘못됐거나 틀린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선택이 언젠가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때의 내가 했을 최선의 선택을 그저 믿어보는 것뿐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치열히 고민하고 선택하고자 한다. 펜링이 준 두려움이 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안녕하세요! 유영입니다. 첫 개인글인데 발송 지각이라니.. 면목이 없습니다. 조금의 변명을 해보자면 글이 맘에 들지 않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보니.. 조금 늦어졌네요. 어제 밤에 피드백을 해주는 승희에게 저는 바보라고, 첫 글부터 지각이라며 징징거렸습니다. 그런데 승희가 바보 같아보여도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해줬어요. 승희의 도움으로 저는 조금 늦더라도 제 맘에도 들고 내놓기에 그래도 덜 부끄러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다시 한 번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다음주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