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첫 번째ㅣ내 안의 자유 #트리키네코

안녕하세요, 트리키네코입니다.

구독자님은 그동안 잘 지냈나요? 저는 계속 새 음원 준비와 일을 병행하면서 한 달을 보냈어요. 얼마 전엔 보컬 녹음을 했고 이제 믹싱을 앞두고 있고 앨범 커버도 수정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일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저는 마침 기다리는 중이라 뭔가 붕 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오늘은 제가 세 번째로 편지를 보내는 날입니다. 찬찬한 사이 시즌 1에서는 각자 3편씩 글을 쓰기로 했는데 저로서는 오늘이 마무리 타이밍인데요, 얼마 전 살짝 언급했던 새 프로필 촬영을 물어봐 주신 분이 있어서 그 얘기도 조금 더 들려드릴까 합니다.

내 안의 자유

제가  첫 레터에서 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계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스스로에 대한 어떤 기준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계속 나를 자유롭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려면 나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꾸 위축되는 마음이 있었어요. 나는 왜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일까? 그리고 갑자기 춤을 추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춤 자체보다 자유로움에 대해 갈망을 했던 것 같은데 Aurora도 그렇고…영혼이 자유로워 보이는 모습들에 유독 마음이 갔던 것 같아요.

오래전 중학교 단체여행 사진에 레크리에이션 타임에 앞에 나가 친구들과 춤추는 사진이 있어요(음?)…꼬맹이 때는 그런 게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댄스음악에 관심이 전혀 없고 다른 음악에만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똑같은 춤을 추는 상황에서는 잘 모르는 게 싫어서 피했고 그러다 보니 아예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잊었어요. 

스스로 잘 하지 못한다 생각하면 저는 종종 얼어버리는데 머리 속에선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막상 제 동작은 어색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막상 마음의 빗장을 풀어보려 하니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던 제가 지금 이 시기에 하필 댄스 강좌에 관심을 가지고 몸을 움직여보고 약간 다른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원래 처음 배울 때가 제일 용감하고 말이 많다죠. 제가 딱 그 단계인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제 마음의 빗장을 푸는데 많이 도움이 됐어요. 

구독자님은 지금은 하지 않게 된 것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어릴 때는 쉽게 춤추고 그림을 그리고 몸을 다양하게 썼던 것 같은데, 하지 않으면서 방법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잘하고 못하는 것을 떠나 그냥 하면 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놓아버린 것들이 가끔은 허전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마음이 생긴 것도 올해 들어서 부쩍 그런 거 같은데 가능하다면 세월을 받아들이는 길을 나를 해방시켜 나가는 것으로 찾아가고 싶어요. 이젠 그냥 좀 더 내려놓고 흐느적대도 좋지 않을까. 

춤추는 프로필

그런 의미에서 이번 프로필 촬영은 특별했습니다. 자유를 실천하는 첫 걸음이었어요.

곧 싱글 음원을 낼 예정이라 프로필 사진을 오랜만에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소속사가 없는 인디펜던트라서 이런 게 필요한지 아닌지도 넋 놓고 있으면 챙기지 못합니다. 올해는 좀 바짝 준비해보고자 지난번에도 프로필 사진을 함께 했던 마가렛필름 미유 씨에게 연락했어요. 

그리고 뜬금없이 춤을 추면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얘기했지요. 

사진을 보고 놀란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생각조차 나를 한번 가두는 것이에요. 그냥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이상하게 용기가 났어요. 

춤을 못 추는 사람이라도 사진에서는 뭔가 동작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가만히 있으면 더 어색한 사람이란 걸 아니까 이번엔 다르게 해보고 싶었어요. 

아무튼 그래서 장소 검색을 시작했지요. 아무도 없는 텅 빈 스튜디오라면 뭔가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출 수 있지 않을까(정확하게는 동작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함)? 하지만 생각보다 장소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괜찮은 곳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거나 시간 간격이 촘촘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좀 불안하기도 해서 저흰 결국 야외를 선택하게 됩니다.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흐느적거리다 보니 많은 사진을 찍었어요. 거의 200장쯤 찍고 나서야 촬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날의 의상인 원피스는 길고 치렁치렁하다고 걱정했는데 막상 카메라에 담긴 걸 보니 원하던 느낌으로 나온 것 같아요.

미유 씨와는 예전에도 시네마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날은 거의 DSLR로 찍고 일부만 필카로 찍었어요. 그런데 그 질감이 너무 좋아서 더 많이 찍을 걸 하고 아쉬워했어요. 이렇게 맘에 드는 사진들이 많은 걸 보니 얼마나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었나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저 흐느적거렸을 뿐인데 좋은 사진으로 남겨주어서 이 글을 빌려 다시 한번 고마워요!

waves from trickyneko_vol.3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 덕분에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나의 사랑 뮤지션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 같아요.

쉽게 음악을 찾아들을 수 있다는 점이 소중함을 저버리게 되는 건 안타깝지만 구하기 힘든 앨범 때문에 해외직구까지 하며 수소문하던 사람들에겐 유일하게 좋은 점이긴 해요.

지난 리스트에도 넣었던 A fine frenzy는 제가 예전에 참 좋아하던 뮤지션이에요. 음악으로 대성할 줄 알았는데 활동 소식이 들리지 않아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찾아보니 영화배우가 되어 있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느슨하게 음악을 발표하기 시작했더라고요. 그중에 좋아하는 곡이 생겨서 여기서도 소개해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땐 내가 알던 A fine frenzy의 Alison Sudol이 맞나 싶었어요. 음악 커리어를 다른 이름으로 이어가는 것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전혀 다른 새로운 이름이나 옷을 입는 것도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방법 중 하나인 거 같아요.

Morcheeba가 얼마 전에 새 싱글을 낸 걸 보고 놀랐었는데 어느새 정규 음반이 올라왔어요. 사운드가 너무 좋다…ㅠ-ㅠ 제대로 작정하고 나오신 것 같아 반가웠어요. 트립합을 좋아하지만 morcheeba는 제겐 좀 가볍게 느껴져서 가끔 듣던 정도였는데, 오히려 저는 예전 사운드보다 이번 앨범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목소리에 관록이 붙었는데 느슨한 여유가 느껴져요.

마지막으로 제가 요즘 들은 곡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곡을 소개할게요.

Jónsi의 Cannibal입니다!! 피처링은 Elizabeth Fraser! teardrop을 부른 그분 맞아요. 너무 환상의 조합이라 눈물을 흘리며 들었습니다.

#맺음말

노래는 은유로 도망갈 구석이 있는데 이런 글은 저를 투명하게 내비치네요.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저를 단정 짓는 모든 걸 거부하고 싶어서 약간 상상의 여지가 있는 게 좋거든요. 수많은 요소 중에 몇 개를 길어 올려서 나열하면 그것만 이유로 보일 수 있다는 건 별로지만, 편지로 글을 쓴 덕분에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조금 정리되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지난 편지에서 playlist를 두 번 정도 길게 보냈었는데요, 저는 제가 쭉 듣는 음악들로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피드백을 듣고 이번엔 방식을 바꿔봤어요🍭

그럼 저는 자유롭게 모든 걸 털어버리기 위한 의식 같은 마음으로 계속 허우적대면서 음원을 준비할게요. 오늘 밤도 편안한 밤 되기를.

📮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

모호 mohho
기타치고 노래하는 사람. 솔로프로젝트인 ‘모호프로젝트(Mohho Project)’와 일렉트로닉 포크 밴드 ‘호와호(howaho)’로 활동 중이다.

이호 eeeho
인문학을 사랑하는 이과 출신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이호(eeeho)’, 일렉트로닉 포크 밴드 ‘호와호(howaho)’로 활동 중. 항상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 때의 마음을 좇다보니 현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트리키네코 trickyneko
싱어 송라이터.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듯한 감정의 세계를 소리로 맞바꾼다. 2011년 EP ‘꿈의 통로’, 2015년 1집 ‘모든 계절의 밤’, 2019년 2집 ‘수면 아래’. 마포FM 게릴라디오 DJ로도 활동했다.

홍한나 annaHong
시각예술분야 종사자. 비 가시적인것과 가시적인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작업과 생활을 병행한다. 아트랩반 개인전 Circuit Mode(2018), REC Mode(2018), 별관 개인전 General Error(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