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 나와 사랑

나의 사랑

2023.12.10 | 조회 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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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

 

 

마음이 어지러울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에는 이전에 썼던 글들을 들춰본다. 치열하게 앓았던 흉터, 잊고 싶지 않은 마음, 분명히 존재했던 사랑의 흔적들이 뒤엉켜 있다. 그 속에서 뜻밖의 위로 혹은 이정표를 발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새롭게 알게 된 이가 말했다. "''라는 자아가 있고 나서 타인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대답했다. "난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모습이 내 자아 그 자체라고 생각해."

자아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철학적 탐구를 차치하고서라도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사랑으로 움직이는 인간인 걸까. 이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답을 번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사실이니까. 나에게는 수많은 ''들이 있고,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면서 오직 그만이 아는 ''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그를 사랑하는 '' ''의 일부이면서 전부일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듯 사랑은 태도이자 의지일 수밖에 없다. 한 순간의 설렘은 개인의 의지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있으나, 그 감정을 내일로, 다시 내일로 이끌고 가 '사랑'이라고 명명하는 데에는 명백한 ''가 관여한다. 인간을 사랑의 숙주로 보는 관점에서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이 ''에게 찾아온 것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와 의지가 사랑을 사랑으로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하는 자는 모두 ''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 나는 온전히 나여서 너를 사랑했다.

그래서 너를 잃는 게 나를 잃는 것처럼 힘겨웠다.

그뿐이야.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날 것이다. 네가 그러할 것처럼.

 

누군가는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랑을 두고 자신을 잃은 사랑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렇게 일컬어지는 사랑을 자주 하는 나의 생각은 달랐다. 낮은 곳에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이루어진 마음이었다. 상대방의 발치에 돌부리 하나 없기를 바라는 마음. 세상의 나쁜 날씨로부터 그를 지키고 싶은 의지. 마음대로 되는 것들을 찾기 어려운 이 삶 속에서 나 하나만큼은 그 사람의 마음 같기를 바랐다. 그런 진심을 자신의 권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참 많이도 만났고,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사랑에 대한 나의 이 태도만큼은 고쳐지지가 않았다. 양보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선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는 너의 믿음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양안다 악보가 육체라면, 음악이 영혼이라면 中) 나는 그런 믿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선善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며, 출발지 또한 모두 같았으리라는 믿음. 사실 이건 나를 위한 믿음이기도 한데, 그렇게 믿지 않으면 도저히 이 세상을,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버티게 해 줄 이상 혹은 이상적 믿음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선함이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나에게 하게 되었을까생각하다 보면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미움도 이해도 똑같이 마음이 깎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이해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그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 또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당신이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도 (그것이 사람을 해치는 등의 범죄가 아니라면) 언젠가 이해 받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이가 알았으면 했다.

고백하자면, 이런 태도는 모두 나의 바람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의 나는 어디에 있어도 겉도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너무 외로웠다. 그 작은 아이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살아 있어서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같다. 간절하게 이해 받고 싶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수용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해서는 사람을 먼저 밀어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든 이해하고 보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내가 그런 사람이어서 스스로를 슬프거나 힘들게 만들 때도 있긴 하지만, 나는 아마도 영영 이런 사람인 채로 살 것이다. 그게 니까. 내가 선택한 사랑이니까.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선인장도 안아 주는 '미지'와 고양이처럼 나뒹구는 비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주연'이 함께합니다.

· 미지: poem.aboutyou@gmail.com / 마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 주연: micoks2@naver.com / 답장에 답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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