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소원

안녕, 나의 이십대

2022.12.27 | 조회 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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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

 

서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스물. 직접 고른 옷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스물하나.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넓어졌다.

스물둘. 시를 읽기 시작했다.

스물셋. 엄마에 대한 기대를 모두 내려놓았다.

스물넷. 타인의 내일이 간절했다.

스물다섯. 도쿄에서 사계절을 보냈다.

스물여섯. 나의 내일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스물일곱. 시를 쓰기 시작했다.

스물여덟. 첫 직장 생활을 경험했다.

스물아홉. 등단을 했다. 

서른, 뒤에는 어떤 문장이 적히게 될까.

 

 


 

 

시린 바람이 불면 바로 손이 꽁꽁 얼어 생채기가 나기도 하는 계절이다. 주치의 교수님이 18년 째 장갑 잘 끼고 다니라고 하시는 말씀을 18년 째 듣지 않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상하게 고집이 센 편이다. 내가 하고 싶어야 한다.

사랑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 타령이 지겨운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나는 연애 감정이든, 아가페적으로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완전히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대부분의 사회적인 존재들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유독 더 그런 것 같다.

다시, 사랑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을 할 때 가장 부지런해진다. 디폴트 값이 무기력인 나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동력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의미로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런 마음은 나를 더 잘 돌보게 만든다. 여기에서 '누군가'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사랑의 대상은 인간, 넓게 보면 생명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행위일 수도 있고, 추상적인 대상일 수도 있다. 나는 사랑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 그 마음이 향하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모두 똑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모두들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늘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의 바뀌지 않는 소원 중 하나를 이곳에 남기며, 언젠가 (늘 그랬듯) 사랑에 관해 썼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한 달 간의 여정을 마치고 싶다.

[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혁명이 아니고 무엇일까.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걸어 들어가는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고, 그러므로 길을 잃지도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전진, 오로지 전진뿐이다. 그가 허락하는 위치까지 행진곡을 울리며 걷는 것이다.

혁명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목표에 대한 믿음, 가능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사랑을 넘은 추앙에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추앙은 혁명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신을 발명하는, 지극히 종교적인 혁명과 말이다.

나는 취미가 사랑인 사람이다. 특기는 순종이고, 타고난 습성처럼 누군가를 추앙한다. 혁명이 끊이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혁명을 꿈꾸거나, 혁명을 일으키면서 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꿘―운동가. 여기에서 운동이라 함은 exercise가 아닌 movement다―인 것이다.

구호와 노래와 행진이 멈추지 않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혁명의 불씨를 지키는 것은 언제나 사랑이다. 사랑만이 우리를 스스로 구원하게 할 테니까. 그리하여 지상의 신을 창조해낼 테니까.

그러니 오늘도 무한히 사랑하고, 뜨겁게 혁명하라. ]

 

 


 

 

<미지(정이)가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하고 싶은 말>

12/19: [ 내가 정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니까 정이가 계속 슬프지… 라고 확정지어 단언할 정도로 정이를 사랑해 ]

12/20: [ 정이 보면 나도 더 살아도 될 거 같애 ]

12/21: [ 난 정이 언니나 주연이 언니가 길 가다 철푸덕 주저앉아도 웃으면서 옆에 앉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

12/22: [ 갑자기 생각났는데 내년 생일이 기다려지는 나를 발견했어 정이 덕분인 것 같아 ]

12/23: [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워 예전에 언니가 해 줬던 말들이 나한텐 여전히 아름다워 계속 멋있어 줘서 고마워 나중에 내가 좀 더 용기 있어지면 언니 만나서 어리광부리고 싶어 ]

12/24: [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은 것 ]

12/25: [ 올려 주신 시가 너무 좋아 바로 사러 가려 했는데 검색해도 없어서 찾아보니 미지 님이 쓰신 시인 것 같아요 미지 님의 시를 읽을 수 있어서 참 행복해요 ]

 

 


 

 

여름의 예각

채미지

 

올이 풀린 소맷부리가 슬픔을 토한다

나는 성냥에 불을 붙여 초저녁 하늘에 혁명을 뿌리고

구불거리는 도화선의 끄트머리

만조 위에 피어난 연꽃

이별의 내력은 그렇게 남는다

당신은 나의 별자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나는 당신이 처음 울었던 시각을 살아 본 적이 없다

불멸의 고독이 낭만으로 자리잡은 청춘을

오래도록 동경해 온 삶에서는

지울 수 없는 종이 냄새가 난다

삶과 같아질 수 없는 생활을

손에 쥘 수도 버릴 수도 없을 때

여자는 서른의 문턱을 넘어

순수에의 장례를 시작한다

 

 


 

 

미지와 주연의 흑심은 이제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미지에게, 혹은 흑심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선인장도 안아 주는 '미지'와 고양이처럼 나뒹구는 비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주연'이 함께합니다.

· 미지: poem.aboutyou@gmail.com / 마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 주연: micoks2@naver.com / 답장에 답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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