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시작은 다른 사람들 못지 않았다.
01. 야간 진료실
주연에게 이헌의 첫이상은 그냥 미친여자였다. 어쩌다가 그에게 그런 그녀의 이미지가 박혔나하면은….
얽힌 사연이 많다.
주연은 대한민국 국민의 남성이었고, 건장한 체격에 외모와 못가진 것이 없는 인기와 인맥을 가졌지만 단 한가지 가지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재력이었다. 자수성가 타입도 아니었고, 집안은 흙수저에 가까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를 갔고,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이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포털사이트에서 정신과 병동보호사가 꽤 많은 돈을 주고 채용을 한단 사실을 알고 지원했다.
홍이헌은 재벌3세에 틈만 나면 트리거 트리거 쟁이였다. 아버지가 무슨 말만 꺼내면 유리잔을 쳐깨부수는, 그런 무서운 악마라고들 불렀다. 이헌의 정신과 병명은 조울증 양극성정동장애 1형이었다. 입원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빠지기에 폐쇄병동으로 응급 이송이 되었다.
박주연과 홍이헌 두사람은 그렇게 CR 안정실에서 처음 만났다. 주연은 날리치는 이헌을 보고 사실 처음 겁을 먹었다. 성우같은 점잖은 목소리로 그녀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해보았지만, 그 좋은 목소리는 이헌을 더 자극시키기만 할뿐이었다.
“씨발쌔끼야 너 죽을래?!”
깨깽, 주연은 연차가 얼마 쌓이진 않은 병동보호사로서 자격을 완전히 묵살당했다. 하지만 주연은 굴하지 않았다. 이틀차 그녀가 진정이 된 것인지, 꽤꼬리 같은 목소리로 최신가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수준은 본 가수보다 더 잘불러, 안정실 밖 간호사실에서는 몰래몰래 감탄을 자아내기 일수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헌은 얼마가지 않아 실증이 낫는지 곡의 분위기를 락으로 바꿔부르더니 머리를 푸르고 미친듯이 흔들어대기 십상이었다. 그리고는 30분후 그녀에게 주연이 친절하게 밥을 가져다주고 또 30분후 그녀가 응변기구에 앉아 변을 보고, 쑥스러운듯 잠겨있는 문쪽으로 와 똑똑 두번 노크를 했다. 그 노크는 분명 이헌의 것이었다.
“선생님 저… “
CCTV로 이미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이헌은 알고 들어왔기 때문에, 주연이 자신의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쯤은 너무 쉬운 사실이었다. 곧 문이 열리고 주연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스크를 쓴 채 이헌을 바라봤다. 이헌이 조금 귀여운 얼굴로 민망하다는 듯 똥을 치워달라고 제스처 하자 그제야 주연은 알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웅변이 3번정도가 더 치워지고 나서야 본격적인 이헌의 병동생활이 시작되었다. 안정실에서 나와서 이헌은 새로운 환우들을 보면서 탐색을 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병동이 1인실이 아닌 4인실인 것에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 두분, 엄마또래 아줌마 하나. 그리고 이헌. 이렇게 방을 배정받았고 모두들 이헌을 예뻐하는 눈치였다. 이런 예쁨을 처음 받아봐서 이헌은 어리둥절 놀라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처음에는 그런 멍한 이헌을 데려다가 예쁘게 머리를 땋아주시는 순자할머니, 같이 마실나가자면서 간이의자로 같이가서 물을 떠다 마시자는 은옥할머니, 21세 아들을 밖에 두고 강제 입원당한 현숙언니 지금 이헌의 밖의 삶보다 더 괜찮은 삶과 사람들을 만났다 싶었다.
그럼에도 약이 듣지 않아, 이헌은 계속해서 잠을 설쳤다. 그때마다 야간진료실이라고 써있는 면회실로 가서 주연을 찾았다. 주연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신경치 않았다. 그냥 그를 볼 수만 있다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아서였다. 이헌을 그를 보자마자 약의 취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간호사 선생님….”
“홍이헌님 밖으로 나오세요.”
“네에”
“간호사 선생니임…”
“저는 간호사가 아니고 보호사입니다.”
“아아, 보호사…”
정신병동에 잘생긴 보호사가 왔다는 이야기를 이헌또한 못들어본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1주일 있으면 나가는 이헌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달까? 이슬의 관심은 병동 밖에 있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재벌 3세였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아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저 조선시대였다면 양반집 딸래미가 총을 가지고 놀거나 칼을 가지고 노는 것을 반대했을 뿐이었다. 그렇듯 이헌은 살면서 내내 호기심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런 이헌에게 잘생긴 보호사가 왔다는 이야기는 가십거리 축에 못 끼었다.
'안녕하세요. 박주연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담백한 인사말을 병동식구들 앞에 내뱉었던 주연이었다. 여자이름같아서 주현? 주연? 헷갈려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연은 연날리기 할 때 연입니다. 하고 넉살스럽게 말을 해주는 바른 청년이었다.
그런 주연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이곳 정신병동에서는 그닥 많지 않았다. 다가가고 싶을 때마다 이헌은 야간진료실이라는 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가면 늘 주연을 만날 수 있었다.
"음..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해봤는데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땅히 돈 쓰는 일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혹시 선생님이 같이 찾아주실 수 있으세요? 저는 집에서는 골치덩어리고요. 잘하는 것도 없고. 그냥... 머저리에요. 근데 떡볶이는 먹고싶고.."
"그럼 같이 먹어요 떡볶이. 먹어줄 수 있어요."
그말에 이헌의 볼이 붉그스레 밝아졌다.
"꼭 삼겹살도 같이 먹는 사이도 됐으면 좋겠어요."
삼겹살을 같이 먹는 사이 라는 말이, 얼마나 그들에게는 금기어 같은 말이었을까? 외부와 접촉이 금지된 그곳에서 이헌이 한 말은 next 를 의미했다. 하지만, 주연은 철저히 외부와 접촉이 금지된 이곳에서의 그 어떤 것도 세상에 나가서 발설하면 안됐고 병동에서 환자들과 철저히 선을 지켜야만 했다. 야간진료실이라고 써져있는 이곳도 면회실이 열약한 이곳에 간이로 급히 만들어진 공간인데, 이공간을 환자들은 정말 야간진료실인줄 알고 찾아왔다. 그중에 대부분은 야간진료실이 야간진료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되돌아갔지만, 이헌만을 달랐다. 그리고, 주연만이 이헌을 다르게 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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