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요즘 볼 거 없지 않나요?
이게 비단 요즘만의 문제는 아닌듯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넷플릭스에서 볼 게 없던 느낌이 듭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했던 저는 비행기에서 짧게 볼만한 컨텐츠를 뒤적거리고 있었는데요, 아니 백금발에 제복을 입은 한 남성이 벚꽃이 흩날리는 배경에 서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로 저장을 누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화를 시작했습니다. 제목처럼 따사로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대하며...!
그럼 그렇지, 세상 우울한 신데렐라의 등장
어디 만만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겠습니까. <나의 행복한 결혼>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계모 밑에서 팍팍하게 자란 미요. 하녀 취급 + 잔심부름은 기본에 신체 + 정신적 학대 얹고, 친아버지도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특히 이 세계관에는 집안에 따라 특별한 초능력, 이능이라 불리는 초특급 리소스가 등장하는데요. 하필 미요는 이 이능이 발현되지 않아 이 집에서는 거의 밥만 축내는 존재로 여겨지고, 계모 모녀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만을 해냅니다. 신분을 초월한 (원래는 귀족) 하대를 감내하며 작은 행복을 찾으려고 겨우 버티는 미요 앞에 등장한 첫사랑. 미요와의 혼인을 원했지만 아니나다를까 이복 여동생이 낼름 채갑니다. 하지만 이미 저는 고일 대로 고여버렸기에 전혀 슬프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초반에 힘들수록 달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법!
냉혹한 쿠도 가문,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지
세상을 다 잃은 듯 슬픈 미요 앞으로 달달한 북부대공 클리셰가 도착합니다. 그 어떤 규수도 4일을 못버티고 도망나온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의 냉혹한 쿠도 가문으로 결혼을 위해 보내지는데요, (아, 물론 간소한 짐 하나에 주먹밥 하나 정도만 들려보내는 거 국룰이잖아요?) 처음엔 데면데면 차갑게 굴던 쿠도 키요카 (그래봤자 밥상 한번 엎는 정도). 귀족 집안의 여식답지 않은 행색이 신경쓰여 미요의 집안을 조사하게 되고, 미요의 가슴 아픈 사연에 마음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합니다. 키요카는 순수한 미요에 대한 애정과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이 똘똘 뭉쳐 그 누구보다 그녀의 편이 되어줍니다. 무뚝뚝하던 장발 남편이 부인이 손수 만들어 준 머리끈을 직접 묶어달라 할때의 짜릿한 희열이란! 아무튼 미요의 남편이 집안도 명문가에 본인 능력도 세계관 최강자 급으로 잘나가는 최고의 남편감으로 밝혀지며 미요 앞에 꽃길을 사악 깔아주기 시작합니다.
이봐,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무시하지 말라구!
바로 소박을 맞을 줄 알았던 언니가 어째 좋은 옷을 입고 사용인과 함께 읍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자 이복 여동생은 열등감이 폭발합니다. 심지어 언니 약혼자가 내 약혼자보다 잘 생겼다? 이거 못참죠. 결국 이복동생과 계모는 힘을 합쳐 미요를 데리고 와 약혼을 포기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 고문 부분이 조금 불편할 정도로 깊고 어두운데요. 미요의 어린시절 트라우마가 겹쳐지며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미요가 납치된 걸 알게 된 우리의 남편!! 계속 차갑고 냉정하게 그려지던 캐릭터가 이성을 잃고 처음으로 화가 나 날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결과적으로 그 집안을 손가락 하나로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고 악인을 확실하게 처단해버리고는 미요를 구출하는데 성공합니다. 망설임 없이 처단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통쾌하고 또 멋있는지! 악인들에 대한 용서 없이 모든 걸 잃고 나락으로 확실하게 보내주니 스토리적 쾌감도 아주 좋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거대한 흑막
이 작품이 단순히 사랑 이야기에만 그쳤다면 굳이 이렇게 글을 남기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미요가 자신의 친어머니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본인이 굉장히 특별한 이능을 타고 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성하게 되면서 작품 장르가 로맨스에서 서서히 히어로물로 바뀌는 느낌을 줍니다. 이능을 둘러싼 집안 간의 세력 다툼, 특별한 이능을 두려워하는 황제의 어두운 음모까지 갑자기 스토리의 장이 확 넓어지면서 매우 흥미롭게 흘러갑니다. 다양한 이능 능력자의 등장, 여주인공이 모든 봉인을 해제하고 잠재력을 각성하여 한방 날려줄 때의 그 즐거움까지. 다음 시즌이 너무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당신이 원한 딱 그 정도의 고구마와 사이다
이 작품의 매력이 뭘까라고 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황금 비율로 사용된 클리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물들의 성장 서사를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거대한 이야기의 소용돌이까지 넓혀가며 보여주는데 그 맛이 상당합니다. 작화도 이정도면 볼만하고, 악인도 악인답고, 의인도 의인답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멋있어야 할때는 놓치지 않고 계속 멋있으며, 여주인공은 이제 이정도 했으면 좀 각성해라 할때쯤에 멋있게 각성해줍니다. 이 사람 못됐잖아? 하면 그에 맞는 처벌이 바로 칼 같이 들어오고, 그 사람이 왜 잘못했는지도 명확하게 대사로 집어주니 시청자로서는 그저 흐뭇하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정도를 지키며 재미를 깨알같이 선사하는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아직 실사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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