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판교 IT 노동자로 일하면서, 무서울 정도로 수준 높은 결과물을 선보이는 재능 보유자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수준에는 닿을 수 없었기에 저는 한동안 이런저런 주제들로 글을 발행하면서 저만의 측면 승부를 감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더군요. 새로운 글을 쓰지 않고 해를 넘기게 되면서 꾸준하다는 것 또한 재능의 영역임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Product Makers Note] 뉴스레터에 객원 작가로 초대를 받게 되어 약간의 반가움과 약간의 오기로 덥썩 참여를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이 꾸준함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무슨 내용을 써야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제가 잘 모르는 것들을 억지스레 꾸며내기보다는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을 조근조근 풀어내는 것이 글을 쓰는 저에게도 읽는 구독자분들에게도 편안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는 부디 어려워 마시고 무심히 보아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사실 글감에 대한 고민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마주하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AI가 쏟아내는 정답들 속에서 나의 고유한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지, 급변하는 시대에 노동의 가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책상 서랍 속에 늘 질문을 넣어 두고 틈틈이 꺼내 봅니다. 우리가 마주한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어떤 태도로 일하고, 또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 나름의 생각들을 저의 언어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AI가 다 하면 나는 무얼 하나요
역시 이 얘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이바닥에서 일하는 분들은 이미 AI와 함께하고 있거나, 함께할 예정이거나, 혹은 이별(?)을 결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AI는 애증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여름이 봄 날을 밀어내듯 훅 하고 들어와서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습니다.
직원들의 의견보다 AI의 답변을 신뢰한다거나, 그럴듯한 프로토타입을 자랑스레 들이밀며 실무진들을 독촉하는 관리자의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들려옵니다. 최대한 되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 내는 탓에 점점 더 불어나는 지시사항을 듣고 있노라면, 탑다운의 진원지가 관리자인지 AI인지도 헷갈릴 지경입니다. 하지만 반격도 만만치 않지요. AI의 지시는 AI의 도움으로 쳐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핵심을 파악하고, 나의 결과물에 빈 틈을 든든하게 채워주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일을 시키는 저 사람이나, 일을 하고 있는 나 조차 ‘이 회사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인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사장님과 AI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게다가 오랜 세월 연마한 나의 역량이 하루아침에 따라잡힐 것만 같은 불안함도 시시각각 엄습합니다. 자유자재로 AI 도구들을 활용하는 인턴, 주니어 친구들은 마치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한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후초기부터 5-6세 정도까지는 뇌의 신경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빠르게 주변 환경을 익히고 적응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마치 새하얀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처럼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이 친구들은 새로운 시냅스 연결을 무섭게 만들어내며 생산성을 키워나가는 반면, 나의 뇌는 새로운 연결은 커녕 기존의 연결도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암담합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생각해 보고 싶은 몇 가지 장면들이 있습니다. AI의 도움으로 엄청난 일들을 해내는 동료들의 틈에서도 유독 나에게 질문이 쏟아지는 상황은 없었나요? 회의록과 기획안과 디자인과 개발 스펙 등을 AI가 훌륭하게 문서로 정리했지만, 매번 나에게 확인을 받는 동료는 없었나요? 그들은 왜 AI가 아니라 나를 찾은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가 ‘맥락과 서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AI는 (설령 그것이 오답이라 할지라도 망설임 없이 답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정답을 가지고 있지만 무수한 시행착오와 회의실의 시간들과 그때의 감정과 감각을 아직 재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대부분 완벽한 답을 찾을 수 없고, 맥락과 서사로 얽혀있는 관계 속에서 조금씩 결과를 깎아내는 작업이기에, 우리들 각자가 회사와 조직이라고 하는 커다란 두뇌 속의 시냅스로서 서로의 의견을 끊임없이 주고 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AI가 아무리 위협적이라 하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장기 기억’으로서의 나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꼼꼼하고 정교한 MD 파일, 완벽한 하네스를 통해 맥락과 서사마저 포괄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면,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그정도로 꼼꼼하고 정교한 가이드가 있다면, 인간 동료들이 이미 더 훌륭한 결과물을 낼 수 있지 않았겠느냐구요.
벼락거지가 된 것 같아요
수억원을 상회하는 어느 회사의 성과급 소식부터 그 회사의 주식에 투자해서 재산을 몇 배로 불렸다는 이름 모를 개미들 소식까지, 돈 얘기가 이렇게까지 공공연하고 일상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정보를 접하는 경로가 워낙 다양해지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사실인듯 아닌듯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경험담이 뒤섞여,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희망을 너무나 쉽게 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는 요즘입니다.
손에 닿을 것만 같은 느낌, 혹은 잡았다 놓친 것 같은 상실감. 이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각종 매체에 오르내리는 그들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노동자이자 시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저들이 가지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기하기도 하는가 하면, ‘저게 맞아? 저게 공정해?’ 라며 익명 뒤에 숨어 끝없는 공방을 벌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부러움에 한동안 주식앱을 기웃거리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소심한 저는 코스피가 8000을 넘어가는 동안 상승장에 탑승하지 못한 채 주식앱을 닫았고… 그런 망설임이 반복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결국 다 행운 아닌가?’
누군가는 그 회사에 입사하고 직원으로서 묵묵히 업무를 수행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그날부터 믿음을 지켰을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은 거기까지. 마침 회사의 방향과 시장의 상황이 우연히 맞아떨어져서 큰 수익이 발생했고 그것은 노력과는 다른 ‘운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회사의 전략과 그에 따른 장기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큰 수고가 필요했음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노력해서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노력이 배신을 하기도 하더라는 것이 우리가 마주한 냉정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최근의 일련의 소식들을 마냥 부러워하기보다는, 그냥 그들이 복권에 당첨된 셈 치면 어떨까요? 그저 축하해주고 그러려니 하는 겁니다.
십억, 이십억 하는 금액이 아무렇지 않게 언급되다보니 나의 노동 소득이 참 보잘 것 없어 보이기도 하지요. 일론머스크는 AI와 로봇 기술의 발달로 인해 ‘보편적 고소득 (Universal High Income, UHI)’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개인들에게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할 만큼의 현금을 지급하고, AI와 로봇은 화폐 공급분을 상회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어떨까요? 노동의 가치는 더 떨어지게 될까요?

2003년에 발간된 마셜 브레인의 소설 <Manna>에서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작중에서는 기술의 발전으로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해진 미국, 기술의 혜택을 공동체와 공유하여 유토피아가 된 호주를 대비하여 조명하는데, AI와 생산성의 시대에 살다보니 초반의 암울한 세계보다는 후반부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유토피아가 된 미래의 호주에서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비용이 0에 수렴합니다. 노동은 더 이상 생계의 수단이 아니며, 자아를 실현하고 세계를 탐구하기 위한 활동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 높은 수준의 몰입을 경험하고 전보다 더 큰 성과를 달성합니다.
앞서 말한 장밋빛 미래가 온다면 비록 생계 수단으로서 노동의 의미는 옅어질지라도 내 존재의 의미를 찾고, 세상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인식하고, ‘살아있다’는 감각을 환기시키는 수단으로서의 노동은 여전히 빛날 것이라 믿습니다. 하물며 노동이 생계 수단으로서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지금, 그 가치의 경중을 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완수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다 보면, 어느날 불쑥 행운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AI에 대한 두려움과 소득 격차의 상실감 속에서 모두 잘 지내고 계신가요?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고개를 저으며 오늘도 여운 없는 토막 콘텐츠에 위로받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게라도 쉴 수 있다면, 도파민의 호수에 잠시 발을 담근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요.
뜬금없는 고백을 하자면 저는 요즘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 있습니다. 미디어는 늘 그렇듯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공략합니다. 저렴하고 좋은 집을 구해주거나, 많은 것들이 갖춰진 환경에서 육아를 하거나, 대기업의 직원이 되거나, 좀처럼 가기 힘든 곳으로 해외 여행을 하거나 하는 콘텐츠들이 대개 그런 식입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며 살아가는 요즘, 연애 예능 역시 그런 대리 경험의 연장선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한 만큼 프로그램별로 컨셉도 조금씩 차별화 되어 있습니다. 연예인에 준하는 준수한 용모와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배경을 지닌 출연자들이 영화같은 배경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출연자들이 등장해서 매번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비록 컨셉이 다를지라도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끝은 항상 ‘몇 커플이 탄생했는가?’로 귀결됩니다. 시청자들은 방송 말미에 커플이 된 출연자들이 현실에서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지켜보며 안도하거나 실망하기도 합니다.
일과 일상 역시 매 순간 관계 맺기의 연속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삶이라는 연애 예능의 출연자 1번이 되어, 늘 치열하게 탐색하고 대화하고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두려운 AI와도, 불안한 소득 격차와도 인정하고 타협하며 공존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혼자서는 어렵다면 주변에 조난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당신을 응원하는 출연자 2, 3, 4, 5번이 곁에서 조언해 줄 테니까요.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 다음 호 예고
[19호] "사샤는 왜 상위기획은 AI로 똑똑하게 잘 짜놓고, 상세기획은 손으로 노가다 하고 있어요?"
'하네스(Harness)', 개발자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하셨죠? 하지만 기획자가 이 하네스를 직접 짜서 AI에게 작업 환경을 깔아주면 실무의 판도가 완전히 바뀝니다. 흔히 AI는 '서비스 초안 짜줘' 같은 큼직한 상위기획은 그럴싸하게 잘 뽑아내지만, 구체적인 상세 기획 단계로 들어가면 귀신같이 앞의 흐름을 까먹고 탈주하곤 하잖아요. 이 단계에서는 반복적인 노가다 작업도 많고요. 하네스를 사용하면 내 기획 워크플로우를 통째로 자동화하는 '파이프라인'이 생기거든요.
기획자 관점에서 하네스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하네스를 만들면 좋을지, 비개발자 기획자도 10분 만에 내 노트북에 뚝딱 심을 수 있는 기획자용 하네스 만드는 법부터 상세기획 실무 적용법까지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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